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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14. 2022

빡세게 더럽게 미친듯이

매일 한 문장 12

2022-06-11

34. 정기사, 순수이성비판을 읽다.

주중에는 직장인 생활이다. 초치기로 일할 때가 많다. 주말에 휴식으로 보상받느냐 하면 그건 아직 멀다. 부모의 '세컨잡'은 기사 생활. 운전을 해야 한다. 아들 등산 동아리 활동(종로구)과 테니스 레슨(고양시 덕양구) 때문에 운전대 잡고 왔다갔다 하면서 토요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일요일에는 딸이 도서관에 간다. 그러면 데려다 주면서 몇 시간이라도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 이게 다 최근 이삼 개월 전에 생긴 일. 나는 언제 쉬는 거지?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인간은 또 어떤 상황이든 적응한다. 지금 나는 이 루틴한 주말에 적응해 버렸다.


아이들이 뭔가 하는 동안 나도 뭔가 하고 있으면 그만이지. 지난주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다 읽었다. 이번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몇 번 읽다가 중단한 책이다. 좀처럼 안정적인 시간 확보가 어려웠는데 아이들 덕분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을 얻어서 읽기로 했다.


정 기사, 순수이성비판을
읽기 시작하다.


이번에는 다 읽어야지. 예전에 칸트 할아버지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이해하느라 수십 번을 읽은 것에 비하면, 읽을 만하네. 괜히 축복받은 기분이다.



2022-06-12

35. 빡세게 더럽게 미친듯이.

나는 절대적으로 독서량이 부족하다. 다독을 해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 보지만, 늘 시간이 부족했다. 집에 제법 책이 있지만, 후루룩 읽다가 관두는 책이 많다. 이런 게으름쟁이가 남의 텍스트나 편집해서 책을 펴낸다. 그럼에도 내가 뭔가 아는 척하거나 실제로 별 희한한 것도 알고 있는 이유가 있는데, 기왕에 독서할 때에는, 빡세게, 더럽게, 미친듯이 한다.



책에다 함부로 낙서한다. 심지어 책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떠오르는 상념을 책에다 끄적이기도 한다. 마음에 안 드는 번역이 있으면 함부로 고치기도 한다. 나는 단지 이런 독서가 좋다. 그래서 나 같은 놈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보다는 서점에서 책을 사야 한다는 거.



2022-06-13

36. 단기적 비관주의, 장기적 낙관주의.

중년이  이후, 지난   동안의 일을 돌이켜 보면 대체로 망했다. 원하는 것은  안됐다. 바라는 것은 멀어져만 갔다. 뭔가를 계속 시도했고 노력했으나 세상은 물거품처럼 보였다. 이러다가 '실패 전문가' 되는 건가? 라고 생각하면서 낭패감에 젖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이득을 줬으면 줬지,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까 , 됐지, 라는 생각도 해보고, 손해가 컸지만  손해로 누군가는 이익을 얻었으므로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야라는 최면도 걸어보지만, 이제는 맷집이 줄어들었다는 기분이 든다. 점점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단기적 비관주의, 장기적 낙관주의라는 문장을 적었다.   혹은 두달, 올해 또는 내년 따위로 기간을 쪼개 놓고, 내가 하는 일을 관조하면, 비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혹은 노년의 나를 상상해 보면, 낙관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단단해졌다고 할까 풍성해졌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천성과도 같은 성실함을 믿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인생의 설계(추수할 때가 오지만 단지 수확이 늦어질 뿐이라는 설계) 확신하기 때문인지는....


설령 근거가 부족할지라도, 낙관이 없다면 삶의 의지가 지속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꺼내놓고 보면, 결국 낙관 그리고 희망은 <의무> 반열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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