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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18. 2022

적당한 명사가 필요하다

매일 한 문장 13

이번 사흘에 쓴 문장들은 딸에게 공부방법을 얘기한 것 같다. 아빠가 뭐라 말해도 결국은 아빠처럼 오류를 반복하다가 본인 스스로 깨닫게 되는 문제겠지만, 조금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


2022-06-14

37. 공부는 타인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대학교 강의가 끝났다. 4학년 전공선택 과목인 데다 아침 9시 수업임에도 대부분의 학생이 성실하게 출석했고 우리 모두 한 학기 동안 열심이었으므로 가급적 후하게 성적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의 방침에 따르면 상대평가를 해야 하고, B 성적 이상은 전체 80%(원래는 70%였으나 코로나 이후 적응기라는 점을 감안해서 조금 더 확대되었다) 이하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학교 기준보다는 앞으로의 아이들 인생이 더 중요한 것 같고, 방침을 어긴다 한들 어차피 나는 겸임교수에 불과하고 계약직이어서 짤리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햇병아리 교수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준에 어긋난 성적은 학교 시스템에 '입력조차' 되지 않는다. 컴퓨터 시스템이 반듯하게 지침을 구현해 놨기 때문에 우리는 복종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5명에게 C이하의 성적을 줘야 했다. 이게 나를 힘들게 했다. 도대체 누굴 선별해 낸단 말인가?


그런데 막상 기말고사 시험 답안지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학생들을 향한 웃음이 아니라 내 자신의 쓸데없는 괴로움에 대한 웃음이었다. 엉터리는 엉터리였고 빛날 녀석은 빛난다. 수업시간에 내가 몇 번이고 강조한 설명을 완전히 무시한 채 어디에선가 채집한 뼉다귀만 쓴 답안이 있는가 하면, '나는 정말이지 당신의 말을 경청했소'라는 느낌의 성실한 답안과 젊은 학생 특유의 재치가 잘 어울린 답안도 있었다. 똑같은 문제에 누군가는 11점을 맞고 누군가는 96점을 맞는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그 무렵 나도 대학생이긴 했는데, 그때 내 점수도 11점이었을 것이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어쨌든 시험이라는 것은 굉장히 공평하고 정당한 검증이라는 걸 깨닫는다. 공부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게 아니다. 타인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타인의 몇 번이고 강조한 얘기는 마찬가지로 몇 번이고 기억해야 한다. 경청이 가장 좋은 공부 방법이다. 경청하지 않는 사람도 그/그녀의 인격은 존중된다. 다만, 그것에 걸맞은 대가를 얻을 뿐이다.



2022-06-15

38. 논리는 순서를 가르친다.


요즘 학교에서 디베이트 수업을 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조력자살>이라는 주제로 팀별 논쟁을 하는데 자기 팀에서 준비한 '주요 주장 세 가지'를 소개하고, 이런 주장을 했을 때 아빠는 어떤 반론이 예상되느냐고 딸이 묻는다. 자기는 재반론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 '주요 주장 세 가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문제의 본질(핵심)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문제의 작용효과(파급력)에 관한 주장이었다. 아이들 수업 이야기여서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으니, 그냥 편하게 A, B, C라고 해 두자. 그 문제를 지적하니, 딸이 성낸다. 그건 이미 확정이니까 건들지 말라는 것.


딸에게 말했다. 논리는 순서를 가르친다. 결과를 말하기 전에 먼저 원인을 말하고, 현상을 말하기 전에 본질을 먼저 언급하며, 포괄적인 주장이 구체적인 주장보다 앞서야 하고, 직접 관련된 주장이 간접 관련된 주장보다 선행해야 논리에 맞는 의견이라고... 디베이트는 생각의 나열이 아니다. 기발한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만으로는 토론이 안 된다. 생각의 순서를 정한 다음, 그 순서에 맞게 주장하는 게 좋다. 그걸 논리적인 주장이라고 한다. 주요 주장 A, B, C는 모두 조력자살의 인정/불인정의 파급력에 관한 주장이었다. 조력자살 자체의 문제에 직접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중에서 C가 가장 근접해 있으니 C를 먼저 주장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반론을 예상하여 재반론을 준비함은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문제 핵심에 관한 자기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상하지 못한 의견이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정리된 자기 생각에서 뭔가를 꺼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 핵심에 관해 자기 생각을 분명히 정리하는 게 항상 중요하다. 그것이 입장이다.



2022-06-16

39. 적당한 명사가 필요하다.


토론수업을 준비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중학교 교실에 있는 학생들의 풍경을 상상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부족할까 생각해 봤다. 서술어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동사와 형용사와 부사는 어른보다 뾰족뾰족하게 혹은 통통 튀면서 잘 생각해 낼 것이다. 문제는 주어이며, 또한 그것은 명사이다. 명사가 부족할 것이다. 명사는 생각을 담는 주머니다. 그런 게 부족하니 뻔한 생각만 나오는 것이다.


딸에게 두 가지 명사를 소개해 줬다. 꼭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하나는 <인격>이라는 명사다. 그걸 풀어놓으면 <목적으로서의 인간>이다. 예문을 쓰자면, "죽은 사람이 죽인 사람을 살인의 수단(도구)으로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정도 되겠다. 오늘날 현대사회의 정신적 설계자인 임마누엘 칸트 할아버지의 핵심 철학개념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도덕감정>이라는 명사다. 이것은 애덤 스미스, 벤담,  스튜어트  등으로 이어지는 경험론 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지는 도덕감정이 올바름의 판단 기준이 된다는 생각이다. 예문을 쓰자면,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의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도덕감정생각해야 하는데, 사람들의 도덕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제도는 갈등만 낳을  현실적이지 않다." 정도일 것이다.


하여튼 생각을 담아줄, 적당한 명사가 필요하다. 독서를 하는 까닭은 그런 명사를 얻기 위함이다.




홍보: 코디정이 편집해서
최근에 펴낸 책, 전라도 말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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