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재라>, 전라도 말은 살아있다 1

서남 전라도 서사시

by 코디정

전라남도 어느 마을에 살던 여성의 사연이다.


사람들이 모두 짐승과 같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여성은 큰딸을 시집 보냈다. 그런데 하필 시댁이 '저쪽' 편이었다. 같이 자라며 함께 살던 이웃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서로 편을 갈라 싸웠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로 어제와 오늘의 운명이 정해졌다. 서로 총을 쐈다. 시댁 식구와 신랑은 총에 맞아 먼저 죽었다. 딸도 경찰에 잡혀 끌려갔다. 불순한 가족의 며느리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상의 '사'자도 모르던 시골 아가씨라는 사실은 딸의 무죄를 증거하지 못했다. 딸은 경찰에 끌려가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힘없는 엄마에게 딸은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탕 하고 총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나는 쪽을 봐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죽기 전에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울면서 딸의 이름을 불렀지만 총 든 사람들이 무서워서 딸의 옷자락도 제대로 못 잡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 잠시 후 탕 하고 총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엄마는 총소리가 나는 곳을 차마 보지 못했다. 엄마도 무서웠다.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 엄마는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딸은 갔고 엄마는 남았다. 엄마는 평생 큰딸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엄마, 탕 하고 소리가 나면 나좀 한번 봐 달라는 그 목소리가 엄마의 마음에서 평생 떠나지 않는다. 세월이 흘렀건만 오늘도 엄마는 딸을 생각하고 울고 한탄한다. 어미가 돼서 어찌 딸자식의 마지막 소원도 못 들어줬을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전라남도 어느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라시재라> 2부에 수록된 <엄니, 탕 소리 나면 뒤 좀 돌아봐주소>라는 제목의 시를 사연으로 풀어 보았다. 시는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다. 그 전문을 여기 소개한다.



엄니, 탕 소리 나면 뒤 좀 돌아봐주소


성님 말씀 끝에 내 언정 잔 할라요

하소 우리가 항꾼에 저끈 날이 장강인디 못 헐 말이 있능가

성님 우리 큰딸이 참말로 억울케 죽었어라

이, 억울하고말고 억울하다 뻗치재

내가 성님한테 못 헐 말 없이 털어놓고 살았는디 너머 여러와서 이 말만은 오늘날까장 입 밖에 못 낸 말이요

그랬능가 글고봉께 오늘이 복자 간 날 아닌가?


웃묵에 밥 한 그럭 물 한 그럭 떠서 숟꾸락 꼽아놓고 나왔소야 혼자 못 있겄습디다 우리 복자 혼이 굽이굽이 저승질 돌아 어매 찾어와도 내가 낯 들고 그 가스낭년을 볼 수가 없어라 성님

이 사람아 그 무선 시상에 총대 가로막고 내 자석 살려주시오 소리 못 했네 자네만 그런 것 아니여 맘으로야 보듬고 저승질 가고 싶재마는 남은 자석들 어쩔 것잉가


나는 그것도 아니어라 성님 우리 복자가 사상이 머신지도 모르는 년인디 즈그 시숙이 산에 갔다고 그 염병할 놈들이 끄꼬 갑디다 즈그 시아부지허고 서방은 그 먼저 시월에 학살 당했소안 근디 멋났다고 그 죄 없는 것까지 잡으러 왔능가 몰라라 사람 못 잡어묵어서 환장헌 것들이재

그적에는 사람이 짐생이나 한가지였응께 동네서 한테 커난 동무헌테 손꾸락총 놔서 끄서가는 일을 생각이나 해봤능가

낭중에 유제 사람들이 급디다 복자 학살 당헌 전날에 갱찰들이 토벌 갔다가 나수 죽었다여 긍게 눈이 뒤집어져가꼬 티 있는 집 사람들을 끄서 냈다요

그랬것재

우리 복자가 개물뚱 밭에 퇴깽이 새끼만치로 웅크리고 서있고 나는 오메 어째야쓰꼬 발만 동동 굴렀재 갱찰들이 쩌리 내래가라고 총대를 내둘러서 막 돌아선디 가이내가 내 등거리에 대고 당부허드란 말이요

머시라등가

엄니 엄니 총소리 탕 나먼 나 한번만 돌아봐주소 그랍디다 글고는 열 걸음을 안 내래와서 총소리가 나는디 오메 무섭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시상에 그라고 무서우까 벌벌 떰서 복자야 복자야 이름만 욈서 내려왔어라 뒤를 못 돌아봤단 말이오 그것이 마지막으로 즈그 어매라고 나 거튼 년을 어매라고 당부헌 말인디 못 돌아봤어라


이 사람아 그라지 말어 일상 묵던 맘으로 살 수가 없던 시절이여 오메 회진떡 자네 차말로 애가 녹았겄네

그랑께 성님 내가 죽어도 낯 들고 그 애기를 못 만낼 거시요 엄니 총소리 탕 나먼 나 한 번만 돌아봐주소 소리가 인자는 총소리보다 더 무서와라 성님 그라고도 내가 이 목구녀게 밥 밀어 넣고 사요



서남 전라도 방언이 어렵지요? 이 또한 우리 말입니다. 이 시집에는 500개의 서남 방언 사전이 붙어 있습니다. 그걸 보시면서 읽으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사투리를 공부해 봐요.



비극과 희극을 넘나들며 다음 세상을 만들어 낸 전라도 여성들의 실화집, 그래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 시집이 출간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


https://brunch.co.kr/@jwsvddk/20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