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재라>, 전라도 말은 살아있다2

서남 전라도 서사시

by 코디정

전라남도 영암군 어느 마을에 살던 여성의 사연이다.


당시 사람들은 다들 뭔가에 홀려 있었다. 여성은 무리를 따라 산으로 도망쳐야 했다. 토벌대에게 잡히면 죽을 것이다. 여성에게는 갓난 아기가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안았다. 무리가 핀잔을 줬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아이 울음 소리에 위치가 발각될 것이고 그러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여성은 낮은 소리로 울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아니면 남편이,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그 밤에 눈에 불을 밝히며 아기를 빼앗아버렸다. 엄마는 아기를 빈집에 두고 산으로 도망쳐야 했다. 음력 정월, 추위가 여전히 밤을 지배할 때였다. 아기는 울었다. 동네 사람들이 밤새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동동거렸다. 그러나 밤중에 함부로 집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시절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동네 어른이 빈집에 가서 백일도 안 된 아기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눕혔건만 아이는 이내 죽고 말았다. 그 후 한두 달이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아기 엄마가 몰래 산에서 내려왔다. 그 여성이 동네 여성에게 물었다. 혹시 누가 우리 아기 데리고 있나요?


전라남도 어느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라시재라> 2부에 수록된 <울 애기 누가 데리고 있을까>라는 제목의 시를 사연으로 풀어 보았다. 시는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다. 그 전문을 여기에 옮긴다.



울 애기 누가 데리고 있을까


인공 펜 든 사람들 도망칠 때 우리 뒷집 떼보네도 식구대로 산으로 갔어야 음력으로 정월잉께 말도 모다게 추왔것냐 안


그날 밤에 빈집서 애기 우는 소리가 징했니라 그때는 해 지먼 문 밖 걸음을 못 항께 으짤 방법도 없재 징상시럽게 애기가 울어서 식구대로 잠을 못 자는디 새복 되서사 잠잠해지등만


아침 일찌거니 우리 아바님이 시푸라니 얼어서 숨만 붙은 애기를 보듬아다 따순 아랜묵에 뉘페농께 금방 얼룩덜룩하니 살이 부커 올르드니 깩 소리도 못 내고 그냥 죽어불드라야


백일도 안 된 애기 거름배미에 띵게놓고 간 거시여 어매가 들쳐 업은 것을 사나그들이 뺏어 내부렀을 테재


그란디 진달래 피기 전에 언제언제 밤중에 떼보네 각시가 가만히 왔드락해야 고짱네로 와서 혹간 누가 즈그 애기 데꼬 있능가 묻드라여



서남 방언이 낯선가요? 하지만 이 사투리는 그 사투리를 사용한 여성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 시집에는 500개가 넘는 사투리가 수록된 서남 방언 사전이 붙어 있습니다. 그걸 보시면서 읽으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사투리를 공부해 봐요.



모든 시편이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습니다. 서남 지역에 살면서 그 지역 언어를 썼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립니다. 동란을 겪으며 자식을, 형제를, 부모를 잃은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움켜쥐고 서로 의지하면서 다음 세대를 함께 키워냈는지 시집은 서사시로 보여줍니다. 누군가 한국 문화의 특성을 한(恨)의 문화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한’일 겁니다. 누군가 이 나라에서 페미니즘을 말한다면 시대를 살아간 한국 여성의 존재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정의 <그라시재라>는 한국 여성의 존재 방식을 지역언어로 보여 줍니다. 이 시집에 대한 정식 소개는 https://brunch.co.kr/@jwsvddk/208에 있습니다. 책은 양장입니다. <그라시재라>는 그러믄요, 그럴밖에요. 미루어 알만 해요, 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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