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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재라, 서남 전라도 서사시

월간이소노미아 8호 | 전라도 말은 살아있다

by 코디정

월간이소노미아 8호


이번에 이소노미아 출판사에서 펴낸 책은, 시집입니다. 무려 '서사시'입니다. 더욱이 모든 시편이 서남 전라도 방언을 씌인 방언 시집입니다. 저는 이 책을 편집하다가 그만, 눈물이 났지 뭐예요. 슬프고 감동적인 시집입니다.



저자 소개합니다.

조정 | 서남 해안 지역인 전남 영암이 고향이며,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시 부문) 당선, 2007년에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2017년에 제주 강정마을의 아픔과 생태를 주제로 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을 출간했다. 2011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수상.


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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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지 소개합니다.


이 시집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1960년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살던 여성들의 실화를 서사시로 옮겼다. 첫 번째 시편 <달 같은 할머니>에 등장하는 소녀는 할머니 집에 마실 온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세월 소녀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전라도 여성들이 서남 방언으로 되살아난다.


모든 시편이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다. 서남 여성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동란을 겪으며 자식을, 형제를, 부모를 잃은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움켜쥐고 서로 의지하면서 다음 세대를 함께 키워냈을까? 이 책은 그 감동적인 서사를 시로 보여준다. 누군가 한국 문화의 특성을 한(恨)의 문화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여성의 한’이다. 누군가 이 나라에서 페미니즘을 말한다면 시대를 살아간 한국 여성의 존재를 봐야 한다. 조정의 <그라시재라>는 한국 여성의 존재 방식을 지역언어로 보여준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낸 여성들이 이웃을 따뜻하게 굽어본다.


1부는 나무칼로 귀를 비어가도 모르는 언어와 함께 이 서사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2부는 마을을 휩쓸고 간 무참한 슬픔이 등장한다. 죽은 동생들의 창자를 몸 안으로 집어넣고 베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여성과, 총 맞고 죽은 딸을 차마 보지 못한 여성과, 방바닥에 갓난아기를 버려 두고 도망쳐야 했던 여성과, 식칼 하나 들고 밭으로 향하는 여성의 모습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3부에서 여성들의 아픈 사연은 이웃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서 정화된다. 4부는 동란을 겪은 서남 전라도 여성들이 서로 이웃하여 힘이 되고 힘을 주며 삶을 극복해 가는 낙관을 보여준다. 5부에서는 이미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낸 사람들이 이웃을 굽어보며, 이 거대한 합창을 마친다.


‘오메 내가 야그 듣니라 넋 빠졌네’


전라도 방언이 낯선 독자를 위해 서남 방언 색인이 뒤에 붙었다. 시집에 수록된 서남 방언 중 주요 단어 500개를 뽑아 예문을 곁들이면서 표준말로 풀이하여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면서 독자를 돕는다. 예문은 모두 이 시집에 수록된 문장을 사용했다. 전라도 방언 사전 색인을 참고하면서 방언 시편들을 읽으면 감춰진 의미가 도드라진다.



시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노라면 굳이 살아지니라.

삶은 구슬과 같다.

금간 구슬도 고요히 아름다운 법이다.

꿰어두어라.


나는 할머니들 곁에 앉아 그것을 배웠다.

동화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면서

이불 속에 누워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불깃을 끌어 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60년대 시골 마을 집집에는 농로에 물 흐르듯 무명옷차림의 이야기가 흘렀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생각난다.

그 시절을 어떻게 어우러져 사셨을까?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지금껏 기억에 남은 이야기들 중심으로 글을 꿰었다. 대부분 비온 뒤 물꼬 터지듯 편편 기억들을 받아 적었으나 그중 너댓 개 구슬은 많이 부서져 온전치 못했다. 주변 어른들께서 몇몇 조각난 이야기를 이어붙여 주셨다. 그도저도 안 되면 내 속의 여자아이와 함께 안개 낀 기억을 더듬으며, 그날들의 향기나 슬픔을 주워 엮기도 했다.


그 옛날 마실꾼 할머니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시인은 서남 지역 여성들의 '실화'를 서사시로 옮겼습니다.

모든 시편은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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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일부로 표준말을 사용하지 않고, 맞춤법을 통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남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만듭니다. 하지만 방언을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500개가 넘는 사투리를 수록한 방언 사전을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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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는 다음과 같아요.


1부 | 나무칼로 귀를 비어가도 모르게

달 같은 할머니 | 분통 같은 방에 새각시 | 자식은 맘대로 못해 | 진눈깨비 부고 | 하늘이 굽어볼 것 아닌가 | 오진 꼴 | 누가 더 박복한고 | 형님 아들은 냅둬야 좋을 애기요


2부 | 식칼 한나 보재기 한나 쥐고

세상이 딱 끝나 버리면 좋겠네 | 엄니, 탕 소리 나면 뒤 좀 돌아봐주소 | 지하실이 필요해 | 울 애기 누가 데리고 있을까 | 베수건 한 장

정월 까마귀 | 무명실 타래 같은 내 청춘 | 산 사람은 살아야지 | 저것이 무슨 선생이야


3부 | 다 팔자 때암이재라

샘가에서 웃던 춘아 | 나쁜 남자 | 철선에서 내릴 때 손목 잡고 | 붙들 틈도 없이 | 새야 새야 파랑새야 | 거지 처녀가 측실이 되었다네 | 흰 가마 타고 시집 온 배녕 아씨


4부 | 항꾼에 사세

참말로 도깨비 만났대요? | 우리 함께 사세 | 장 가르는 날 | 물에 비친 찔레꽃 | 치술신모, 그리움의 신들 | 디딜방아 추억 | 봄풀은 약 | 물 맞으러 가세 장구가락 두드리고 | 혼불 | 샘에서 개짐 빨지 마 | 딸 이름을 돈 주고 지어? | 버들고리에 혼수가 가득


5부 | 유재 굽어다보는 맘

이엉 잇고 용고새 틀고 | 옹기 째 떨이해서 동네잔치 | 칠십리 씨네마 | 홋집 남자 | 갈퀴나무 불로 끓인 라면 | 첩실 사위 | 복순이 큰오빠 | 소나무 | 개금바우 난초 하나씨 | 엄마, 왜 이렇게 날이 안 밝아요


발문

당신의 말이 이렇게 시가 되었습니다 – 서효인


편집후기

서남 방언 색인



출판사가 준비한 서평입니다.


이 시집의 발문 <당신의 말이 이렇게 시가 되었습니다>에서 서효인 시인은 ‘죽은 줄 알았던 말들이 지금껏 다 살아서는 모조리 시’가 되었으며, ‘폭발하는 말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폭의 그림’이라고 이 시집을 평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서로가 긴밀하게 알아듣는 말투의 공동체로 엮이었고, 그 이유로 그들은 현대사의 굴곡을 함께 겪고 내 이웃의 사연과 사정에 귀 기울’인다.


서효인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두 다른 목소리가 한데 모여 거대한 합창이 됩니다. 이 합창은 가슴을 찢으며 부르는 장송곡입니다. 낮은 소리로 길게 읊조리는 곡소리이기도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힙합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사연을 당신이 직접 부르는 노래는 목소리에 힘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 당사자성이란 말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전라도 서남쪽의 비극은 서남쪽의 말로 비로소 당사자성을 획득합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낸 사람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목구멍에 밥을 넣는 게 요사스럽게 느껴지고, 집에는 꼭 숨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 여깁니다. <그라시재라>는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의 노래이자 울음이 됩니다. 울지 말라 서로를 다독이는 묵직한 응원이기도 합니다.”


“조정 시인은 <그라시재라>의 언어를 속에서 들리는 대로 썼다고 합니다. 몸속의 언어를 끄집어낸 작업은 때로는 토악질처럼 고약하고 때로는 사자후처럼 시원했을 듯합니다. 시인은 그 괴로움과 후련함에 줄 하나를 달고 실로 팽팽하게 당겼습니다. 그것을 언어의 힘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힘이 있는 언어는 곧 시가 됩니다. 그래서 <그라시재라>의 사투리는 사투리가 아닙니다. 시입니다.”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잔혹한 고통이 마을 사람들의 속삭임으로 전해진다. 전라남도 영암군 어느 말에 살던 한 여성의 사연이다. 당시 사람들은 다들 뭔가에 홀려 있었다. 여성은 무리를 따라 산으로 급히 도망쳐야 했다. 토벌대에게 잡히면 죽을 것이다. 여성에게는 갓난 아기가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안았다. 무리가 핀잔을 줬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위치가 발각될 것이고 그러면 다 죽는다는 것이다. 여성은 낮은 목소리로 하소연했으나 남자들이 아기를 빼앗아버렸다. 엄마는 아기를 빈집에 두고 산으로 도망쳐야 했다. 음력 정월, 추위가 아직 밤을 지배할 때였다. 아기는 울었다. 동네 사람들이 밤새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동동거렸다. 그러나 밤중에 함부로 집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시절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동네 어름이 빈집에 가서 백일도 안 된 아기를 안아 올렸다. 급히 집에 돌아와 아랫목에 눕혔건만 아기는 이내 죽고 말았다. 그 후 한두 달이 지났을 무렵 한밤중에 아기 엄마가 몰래 산에서 내려왔다. 여성은 동네 여성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누가 우리 아기 데리고 있나요? <그라시재라> 2부에 실린 시편에 등장하는 여성 이야기다.


<울 애기 누가 데리고 있을까>


인공 펜 든 사람들 도망칠 때 우리 뒷집 떼보네도 식구대로 산으로 갔어야 음력으로 정월잉께 말도 모다게 추왔것냐 안


그날 밤에 빈집서 애기 우는 소리가 징했니라 그때는 해 지먼 문 밖 걸음을 못 항께 으짤 방법도 없재 징상시럽게 애기가 울어서 식구대로 잠을 못 자는디 새복 되서사 잠잠해지등만


아침 일찌거니 우리 아바님이 시푸라니 얼어서 숨만 붙은 애기를 보듬아다 따순 아랜묵에 뉘페농께 금방 얼룩덜룩하니 살이 부커 올르드니 깩 소리도 못 내고 그냥 죽어불드라야


백일도 안 된 애기 거름배미에 띵게놓고 간 거시여 어매가 들쳐 업은 것을 사나그들이 뺏어 내부렀을 테재


그란디 진달래 피기 전에 언제언제 밤중에 떼보네 각시가 가만히 왔드락해야 고짱네로 와서 혹간 누가 즈그 애기 데꼬 있능가 묻드라여



입체 인스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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