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 전라도 서사시
지금, 출간된,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는 시집이다. 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서정시는 아니다. 한 시대를 살고 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서사시이다. 이야기 시집이어서 짧은 단편 영화를 이어서 보는 느낌... 말맛이 장난이 아니다. 여성들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려 서남 전라도 사투리로! 전라도 말은 살아있구나...
전라남도 영암에 한 소녀가 있었다. <그라시재라>를 열면 한 소녀가 46개의 이야기를 들고 등장한다. 이 정도의 소녀였을까?
소녀는 할머니 곁에서 마실온 동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들은 주로 40대와 50대의 여성들이었다. 더러는 30대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오랫동안 가슴에 간직했다. 세월이 흘렀다. 소녀는 자라 손녀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 소녀가 다음 세대의 소녀에게 전하는 전라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라시재라>이다.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그라시재라>의 서시, 첫 번째로 수록된 <달 같은 할머니>라는 제목의 시에서 할머니와 소녀가 독자 앞에 등장한다.
할무니 애렜을 때도 달이 저라고 컸어요?
아먼 시방허고 똑 같었재
할무니는 추석에 뭐 했어요?
우리 아바님 지달렸재
할무니도 아부지 있어요?
그라재 아배 없이 난 사람이 있다냐
으디서 지다렸어요?
동네 앞에 사에이치 비석 있지야 전에는 거그 큰 소낭구가 있었는디 거그서 지달렷재
할무니 혼자요?
아니 우리 성허고 동상허고 항꾼에 지달리재 아바님은 저녁에 해가 지우러야 오싱께 혼자 지달리먼 무서와 그때는 할무니도 똑 너 같이 생겠어야
할무니가 나랑 똑같었어요?
그라재 할매도 너같이 열 살일 적 있었고 열한 살일 적도 있었니라
와~ 최고 이상허네
이상헌 거이 아니라 사람은 다 애기로 나서 할아부지 할무니가 되는 거시여
그럼 나도 나아중에 할무니가 돼요?
안 그라믄 좋재 좀도 좋재 그란디 누구나 다 그리 된단다 악아
할무니는 추석날 되먼 머 했어요?
우리 아바님은 먼 데 장사 다니신께 집이를 잘 못 오세 글다가 추석 되먼 우리 댕기도 끊고 저구릿감도 끊어서 가꼬 오셌재 우리 아바님이 사온 국사로 엄니가 밤새와 추석빔 맹글어 주먼 그 옷 입고 달맞이허고 강강술래도 뛰고 그랬재
그때는 할무니도 여기 팔뚝 살이 흘렁흘렁 안 했어요? 다리도요?
아이고 이노무 새깽이 그때는 할매 살도 희고 탄탄했재 너마니로
진짜로 할무니가 열 살일 때가 있었다고?
아먼 진짜재
할무니 그란디 왜 달은 안 늘그고 계속 그때랑 지금이랑 똑 같어요?
금메마다 달은 안 늘근디 어찌 사람은 이라고 못 쓰게 되끄나이
할무니 못 쓰게 안 되얐어요 달 같이 이뻐요 참말로요
지금 독서하세요.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