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 전라도 서사시
경순이와 광명이의 사랑 이야기다.
배에서 내리는 경순이의 손목을 광명이가 잡아줬을 때, 우리는 경순이의 영혼 속에 무엇인가가 깊이 자리잡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네 사람 중에서 이 두 청춘의 사랑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경순이 집안이 하찮다고 생각한 광명이 엄마가 다른 집 처녀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러자 경순이가 미쳤다. 실실 웃으면서 '우리 광명이가 징하게 잘 생겼다'고 자랑하고 다니곤 했다. 광명이 신혼방에 몇 번이고 파고들다고 또 몇 번이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경순이가 죽었다. 경순이가 죽자 이번에는 광명이가 미쳤다. 공무원을 때려치고 밤낮으로 술 마시며 정신을 내려놓았다. 마을 여성들이 모여 경순이와 광명이의 잔혹한 인연을 한탄한다.
전라도 어느 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조정 시인의 서사시 <그라시재라> 3부에 수록된 <철선에서 내릴 때 손목 잡고>라는 제목의 시의 내용이다. 시는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다. 그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전략)
근디 성님 오늘 낮에 쩌 건너 광맹이가 미친 짓거리 했단 말 들었소?
먼 소리당가? 술 묵고 또 으디 자빠졌드랑가?
술 묵고 자빠지능거슨 원님 행차재 가실 들어 읍으로 흘러든 동낭치 미친년 보셨지라 그 가스낭년하고 교동리 큰길가새서 붙어묵고 있드라요 한종이 아배가 떨어지라고 막가지로 뚜드러도 소양이 없드라여 동네 꼬마댕이들 둘러서서 구갱하고 미치것드락 합디다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으째사 쓰까
시상에 자네는 대삽 바람소리가 무선가 나는 이 동네 삼서 질로 무섭게 들은 소리가 갱순이 엄니가 광맹이 저주하든 소리네
갱순이 광맹이 연애허는 것은 동네가 다 아는 일이었니 광맹이 어매가 즈그 아들 순천 가서 공업학교 댕긴 유세를 함서 갱순이 집안 하찮다고 망호리 큰애기를 메느리 안 삼엇능가 그래가꼬 갱순이가 미친기가 났재
마저라 갱순이 뱅이 심해지기 전에 지헌테도 급디다 니가 봐도 우리 광맹이가 징하게 잘 생갰지야이 내가 용댕이서 철선 내릴 때 광맹이가 손 잡아줬어야 오메 여럽등거 그람서 배시시 웃은디 짠해 죽것습디다 어매 속이사 어짜것소
낭중에는 시도 때도 없이 광맹이 신혼방으로 파고 들다가 뚜드러마진께 즈거매가 방에다 가두고 바깥 문고리에 숟구락을 딱 질러부렀어라
그랫닥 하대 한번은 우리 숙자가 보고 왓는디 방문 창호지를 뜩뜩 긁어서 다 찢어 놨드라등만 월경을 했능가 여그 저그 방문에 발라놓고 어매어매 나 광맹이한테 갈라네 그러드라네 그 꼴을 보는 갱순이 즈거매 속이 천불이 나재
하로는 으찌케 문을 열고 갱순이가 또 광맹이 집까장 왔어야 갱순어매가 쫓아와서 끄꼬감서 광맹이네 대무나케서 저주 한디 와따 무섭대 저 소리 듣고 으찌케 밥이 넘어가까 싶드만
머시랍디여
그래 느그가 뻔적헌 메느리 봤냐아 놈의 가심에 대창 쮜시고 잘 살 줄 아냐아 갱순아 이년아 나는 죽어 구랭이 되야서 광맹이 저놈 윗도리 칭칭 감을 텡께 너는 죽어 실비암 되야서 저놈 아랫도리 창창 감어라아 그라고 소리소리 질러쌓대
오메 소름이야 어쨔쓰꼬
아따 거보쑈이 갱순이 죽은 뒤에 잘 다니든 군청 내떤지고 밤낮 술 처묵고 마느래 뚜드어팬께 동네가 시끄러왔어라 인자 막 젖 띤 것까지 서이나 되는 새끼들 버리고 밤봇짐 쌀 정도먼 징한 시상 살았재 광맹이 각시도
<그라시재라>에 수록된 46편의 서사시 전편이 모두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습니다. 500개 이상의 사투리를 표준말과 예문으로 풀이한 서남 전라도 방언 사전이 부록으로 붙어 있어서 사료적인 가치가 큰 시집입니다. 책은 곧 나옵니다. <그라시재라>라는 단어를 기억해 주세요! 그러믄요, 그럴밖에요. 미루어 알만 해요, 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