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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l 01. 2022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매일 한 문장 18

딸과 아빠가, 각자 매일 한 문장 쓰기로 약속했는데... 부녀 간의 약속이란 본래 '아빠가' 지키는 약속이겠지...


2022-06-29

52. 흐르는 강물은 퇴적한 모래를 떠난다.


딸이 눈물을 흘리며 전화를 했다. 오랫동안 절친이었던 친구와 갑작스레 사이가 나빠졌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으며 출구도 없다는 이야기. 딸의 사연과 감정을 다 들어줬다. 아빠로서는 딸에게 해줄 정답이 없고, 솔루션도 없다. 


딸에게 시련과 수련의 시기가 온 것 같다. 나이 먹은 아빠도 관계는 여전히 쉽지 않은데 중학생인 딸에게 쉬울 리가 없겠지. 내 인생은 강물처럼 흘러왔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게 오랜 세월 흐르는 동안, 나는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사람도 봤고,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도 봤다. 우리는 만나고 또 헤어진다. 흐르는 강물은 퇴적한 모래를 떠난다.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유랑자는 정착하는 사람과 멀어진다. 함께 같은 곳에 정착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흐름에 인생을 맡길 수밖에 없다. 오는 사람 환대하고 가는 사람 멀리한다. 그러는 사이 딸에게 들려줄 경험담이 하나 떠올랐다. 주말에 얘기해 줘야지. 그런 얘기를 하기 전에 다만: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화폐처럼 받고 지불해야 할 것이 생긴다. 고통을 받지 말고 <고독>을 받되, 모욕을 지불하지 말고 <유쾌함>을 지불하면서 딸이 이 상황을 잘 이겨내기를 소망한다. 판단을 유보하고, 뭔가를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모르겠다>고 표현하면서, 북한산에 내린 빗물이 한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갈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뭔가 깨닫는 게 생기겠지. 그사이 다른 친구들과 사이좋게, 주위가 마르지 않게 잘 흘러가기를 바란다. 




2022-06-30

53. 진심만 남는다.


일하는 사람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과, 

남을 이용하며 요령껏 일하는 사람. 


후자가 합리적이고 현명하며 편리하고 슬기롭다. 후자가 부럽다. 그게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나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되었다. 남을 돕는 것은 잘하지만 남을 이용하지는 못한다. 굳이 모험해서 남들이 이미 안 된다는 결론을 재차 확인한다. 무모한 일을 반복한다. 계속 시도하고, 직접 경험한다. 그러므로 노동에 비해 성과가 적다. 노력에 비해 더디다. 남들처럼 요령껏 큰일을 해내지는 못했다. 만사 그랬다. 희망에 비해 결과가 보잘것없었네. 하지만 진심은 남는다. 아니, 진심만 남는다. 진심은 불이 켜져 있고, 보는 사람이 드물어도 누구든지 볼 수 있다. 그러면 됐지.  




2022-07-01

54.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변리사 생활 20년, 편집자 생활 5년. 스스로를, 국가대표 변리사, 혹은 국가대표 편집자라고, 생각해 본다. 일종의 친환경 유기농 자뻑이며, 내가 나를 격려하는 무한동력이다. 요즘 편집자로서의 내 역량을 알아주는 사람이 조금은 생겼다. 언어는 두 종류가 있다. 드러난 언어와 감춰진 언어. 드러난 언어만을 편집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핵심은 감춰진 언어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있다. 편집자가 해야 할 좋은 역할은 결국, 저자가 지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발명가의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과 차이는 없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언어활동가들이 해야 할 좋은 임무이다.






최근 코디정이 편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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