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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n 29. 2022

역시 술이 최고야

매일 한 문장 17.

2022-06-26

49. 답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빛난다.


정독도서관을 나오며 딸과 대화했다. 오늘은 정신적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과의 공존이 주제였다. 딸이 아빠의 견해를 물었다. 나는 답했다. 딸은 상상한다. 아마도, 정신병을 앓고 있는 학생이 발작해서 생기는 '위험한 사고'에 대해서. 딸은 안전을 걱정하며 역시나 격리가 필요하고 공존은 어렵겠다는 의견을 냈다.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더 많은 타인의 안전과 행복을 염려한다. 이해한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격리는 쉬운 방법이지. 다수에게도 쉽고, 질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도 분리되어 사는 게 차라리 쉬운 방법일지도 몰라.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어려운 공존을 택하고 있어. 인권은 누구에게나 귀하고,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도 맞는 일이니까. 질병이 언제나 문제가 아니라 '어떨 때'의 문제잖아? 그런 예외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있고, 전문가가 활약해서 의학적으로 잘 처방하면 대체로 괜찮으니까.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과도 우정을 나눌 수 있고, 그 우정이 계기가 돼서 누군가는 친구를 치료할 약을 개발하겠노라 헌신한 끝에 해결책을 찾아내서 인류를 이롭게 할 수도 있어. 실제로 그게 지난 백 년 동안의 우리 인류가 걸어온 길이야. 그것이 앞으로도 가능하려면 공존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해. 오늘날 인류가 간단한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야. 유용한 답이 아닌 올바른 답을 찾으려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뿐이지답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인류가 빛난다고 생각해. 옛날 인류는 동물처럼 쉬운 방법을 택했고 그래서 잔인했잖아. 


아빠는 지금 인류가 좋아.




2022-06-27

50. 역시 술이 최고야.


술을 마시는 날이면 딸에게 돈을 쓴다. 

술 취해서 딸을 사랑하는 아빠 코스프레.

술 마시는 날이면 밤늦게라도

딸의 계좌로 몇만 원이든 입금하는 것이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당시의 일을 추억하며

아빠를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늙어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그러면 자식의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딸이 답장을 보낸다.

역시 술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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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8

51. 잘 되려나 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항상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발생한다. 기대작 <그라시재라> 출간을 맞이하여 예스24와 저자 사인본 이벤트를 진행했다. 저자를 총판 사무실에 모시고 가서 1시간 30분 동안 저자 사인본을 준비했다. 그런데 총판 직원에 예스24에 저자 사인본이 아닌 책을 입고한 것이다. 저자에게 미안하고, 무엇보다 저자 사인본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 같아서 슬프다. 화가 나기도 했다. 어딘가 밀폐된 방으로 가서 큰소리로 욕하고 싶을 정도였다. 총판에서는 저자 사인본으로 교체해 주겠다고 하지만, 어깨에 힘이 풀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다지 빛날 일이 없는 모험, 출판업을 그만둘까, 이런 유혹도 나타났다. 바로 그때였다. 


인스타그램 피드로 저자 사인본 문제를 거론해서 내게 사태를 알려준 독자께서 하시는 말씀, "잘 되려나 봐요." 이 짧은 말에서 나는 위로를 받는다. 잘 되려나 보다. 실제 잘 될지는 몰라도(객관적인 지표로 보건대 그런 기대가 무리일지라도),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비관보다는 낙관이 낫겠지. 기대감을 갖는 것만으로도 평온을 회복한다. 저자 사인본이 아니더라도 많은 독자가 책을 칭찬하고 있다. 한국문학사의 경사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 잘 되려나 보다. 편집자로서 뿌듯하다. 판매량은 예측을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어쨌든 기대감을 계속 갖기로 한다. 그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휘발될 때까지. 





http://aladin.kr/p/8fL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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