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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Nov 04. 2022

내가 나를 안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나를 안다는 거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https://youtu.be/FzO3w60qDOo


나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과연 나는 나 자신을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나를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도 모릅니다. 인생을 오래 산 사람들도 모르고 저도 모르고 여러분도 모릅니다. 위대한 철학자들도 모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보고, 우주를 관찰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해도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해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모릅니다.


나는 나 자신을 모릅니다.

이건 철학적으로 마침표가 찍힌 결론입니다.


옛날 중국 전국시대 때 유명한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장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자가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장자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장자는 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의 꿈 속에 지금 내가 있는지, 아, 참, 그걸 모르겠네.


이 이야기를 호접지몽이라고 합니다. 나비의 꿈, 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사는 곳이 진짜인지 우리는 모릅니다.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셨던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였습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 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이,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어쩌면 실제 있는 게 아니라 꿈속에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지금 꿈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세상은 홀로그램이거나 가상현실이 아닐까, 이렇게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했음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으니,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결론을 내립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할아버지의 그 치밀하고 한 없는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생각하는 내가 있다라는 거,이게 전부였습니다.


흔히들 칸트를 일컬어 철학의 입구이자 출구라고 합니다. 인류의 모든 철학은 칸트로 수렴되고, 다시 칸트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분도 <참된 나>, <진정한 나>는 모른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다들 경험이 다르고 그 경험이 매일 달라지고, 사람들은 또한 성향도 다릅니다. 경험과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그 본모습을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알기에는, 나의, 우리의, 모든 것이 많습니다. 너무 복잡합니다. 게다가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타인이 있습니다.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타인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나는, 나의 본모습을 알기 더욱 어렵습니다.


나는, 참된 나를 알 수 없다고

편안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도 같은 결론이며

제 경험에서도 같은 결론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진정한 자기를 만나야 한다
참된 나를 알아야 한다
참된 자아를 발견해야 한다.
자기가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정작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 수 없었잖아요?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는데 자꾸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할 것처럼 말하면 괜히 불안해지고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나는 진정한 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철학자들의 결론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더라도 내 진정한 본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있습니다. 있음을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있음을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내가 있다는 것을 알면, 나의 단편을, 나의 조각을, 느끼고 생각하고 발견하면, 그러면 힘을 얻습니다. 남의 힘이 아닌 나의 힘입니다.


둘째,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삽니다. 

심리학자 융은 그것을 ‘사회적 자아’라 불렀습니다. 가면을 함부로 벗지 마세요. 차라리, 자기에 맞는 가면을 찾아 쓰십시오. 가면이 나쁜 게 아닙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에게 어울리는 가면을 찾는 게 훨씬 쉽습니다.  가식도, 거짓도 아닙니다. 참된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가식이고 거짓이겠습니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선택이길 바라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일관되게 안정되게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명품 가면을 쓰세요.


사람들이 존경하고, 지혜롭고

올바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가면을 찾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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