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디정 Feb 19. 2023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

이데아란 무엇인가 2

이데아란 무엇인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 이데아의 뜻과,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 살펴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신비주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비판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존재의 참모습이 없다면, 철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으며, 더 바람직한 제도, 문화, 교양,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자체가 진정한 세계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배후 세계나 신비한 세계에 관심을 쏟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이데아의 세계는 이미 이 땅에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우리가 보고 듣고 체험하는, 이 리얼한 세계의 모든 사물에, 그리고 모든 존재에, 어떻게 이데아가 구현되어 있는지를 주시하라는 겁니다.


모든 존재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갖습니다. 변하지 않는 속성과 변하는 속성으로요. 잘 안 변하는 속성과 잘 변하는 속성으로 구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변하는 속성이 존재의 내용을 구성합니다. 

변하는 속성은 존재의 ‘재료’일 뿐이지요. 


변하지 않는 속성이 존재의 형식을 구성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존재의 본체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리스 이론이 나옵니다. 변화에 관련된 내용은 영어로 Matter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형식은 영어로 Form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플라톤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 보지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는 형식, 즉 이데아는 내용과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진리를 갖고 있는 이데아와, 우리가 살고 있는 리얼리티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 철학에서 이데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마치 ‘여기’에서 벗어나 ‘이데아’로 향하는 문을 열어야 하는 듯합니다. 철학자들은 이 두 가지 분리된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은 다음, 거짓된 세계에서, 마치 동굴속의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의 사람들을, 이데아 세계로 인도해야 했습니다. 동굴 밖의 진리를 전도하는 사람들은 플라톤을 따르십시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의 경우,


모든 존재가, 모든 사물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형식과 내용이 일체를 이루고

재료와 본체가 하나가 되어 존재합니다. 리얼리티 안에 이데아가 있습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Matter & Form, Form & Matter, 즉, 질료형상론 또는 형상질료론이라 불리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질료는 무엇이며, 형상은 또 어떤 뜻입니까? 먼저 ‘질료’라는 용어를 해설하고, 다음으로 ‘형상’이라는 단어를 따져 봅니다.


과거 백 년 전에 일본 사람들이 <Matter & Form>을 <질료와 형상>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은 일본인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일상생활에서 ‘질료’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물론 자기 지식을 우쭐거리며 자랑하는 사람들이 ‘질료’라는 단어를 쓰기는 씁니다만, 그래서 질료가 뭔데? 라고 물으면 중언부언하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더군요. 질료는 ‘재료’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공부했기 때문이지요. 알아 봤기 때문이고 누군가 가르쳐줬기 때문이며, 직접 겪어보면서 지식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건 것들을 통칭해서 철학자들은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의 재료인 <경험>, 그것이 바로 ‘질료’입니다. 질료는 ‘내용’입니다.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를 안내하고 가르쳐 주는 것을 일컬어 도덕이라고 


한편 ‘형상’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모호한 표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Matter & Form>은  철학의 전분야에서 다뤄집니다. 윤리학에서도 다뤄지지요. 그런데 Form을 ‘형상’으로 번역한다고요?  사람의 행동을 다루는 윤리학에서 무슨 형상이 있다는 말이지요? Form을 형상으로 번역하면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뜻이 통하지 않게 되니까요. 그러므로 ‘형상’은 거의 아무 쓸모도 없는, 폐기물 같은 단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Matter는 존재의 재료이자 내용입니다. 그건 변하는 속성을 갖고 있고요. Form은 존재의 형식입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으며, 존재의 본체를 나타냅니다. 형이상학에서 윤리학까지 두루 아리스토렐레스의 철학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Matter & Form은 질료와 형상이 아니라, 내용과 형식으로 이해하시는 게 좋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Matter는 힐레(hyle), Form은 에이도스(eidos)라 하는데, 그런 용어들은 몰라도 그만입니다. 한국인이 고대 그리스어로 철학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위와 같은 내용을 포함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을 단박에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는 2가지 퀴즈와,

<철학반성회>가 추가되어 있는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려봤어요...


관심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https://youtu.be/etrowGe4hlg




                    

매거진의 이전글 이데아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