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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2. 2019

코디정: 책을 편집하다 1

온라인 서점 검색 로직과 제호 

편집자는 책을 편집한다. 그 책을 독자가 읽고 반응해 주기를 바란다. 

반응이 없고 성과가 없다면 인생의 보람이 흩어진다.

이렇게 좋은 책이 안 팔리다니?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안 팔렸겠지.


지난 2월,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인터넷서점의 검색 기술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뒤늦게 안 것인데, 

아뿔싸, 어떤 대단한 단어를 사용하든 책 설명은 키워드 검색에서 제외된다. 

책 제목, 출판사, 저자만 검색 대상이다. 


여기서 문제.

우리는 작년 가을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라는 논문을 <굿윌>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선한의지’야말로 칸트의 도덕철학의 핵심 단어이기도 했고, 2-3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평범한 한국어로 번역한 출판기획을 남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대신에 <굿윌>이라는 제목으로 선택한 것인데, 


이런 위와 같은 인터넷서점 검색 로직의 몰랐던 것이 함정. 검색이 되질 않음;;;;;


독자가 ‘도덕 형이상학’이라는 단어로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면 가장 좋은 책이 우리 책임에도 <굿윌>은 검색결과로 나타나지 않거나, 혹은 아주 후순위가 된다는 이야기.


2018년 12월 말에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타인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펴냈다. 이 책도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공리주의 번역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매력적인 번역이라고 자부한다. 


그렇지만 역시 인터넷서점 검색 로직 때문에 검색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검색이 안 될 것이다. 이건 진짜 문제다. 우리 책이 꼭 필요한 독자에게 우리 책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문제.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문고전 전집을 펴내겠다고 의기양양하게 시작했지만, 이런 전집을 찾으려고 우연히 검색하는 독자를 배제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어째서 책이 안 팔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6개월 만에 알아냈다. <굿윌>에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타인의행복>에는 “공리주의”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은 1년에 100권도 안 팔릴 것이다. 갑자기 위기감이 들었다. 


네 군데의 서점에 요청했다. 인터넷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 제목을 바꿔달라고. 


굿윌: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타인의 행복: 공리주의


교보문고는 보수적이었다. 원제가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공리주의’이며, 그런 원제의 번역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이 책들의 독자이므로 그 독자를 배려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해도 바꿔주지 않았다. 표지에 그런 표현이 없다는 이유다. 원래 보수적인 문화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요컨대 앞으로 이 두 책에 대해서는 교보문고 온라인 판매는 어려워질 것이다. 흑흑 가장 사랑하는 교보문고여 빠이빠이~ 다른 책이라도 많이 팔아주세요;;;


반면 알라딘, 인터파크, 예스24는 바꿔줬다. 알라딘이 제일 잘 바꿔주었다. 

주로 여기서 팔리겠군. 다행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굿윌: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굿윌: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타인의 행복: 공리주의><타인의 행복: 공리주의>가 다르다는 사실.

오른쪽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와 공리주의 글씨가 작게 표현된다(브런치에서는 표현할 수 없군)


뭐가 다르냐고? 검색 로직이 다르다.


책 제목에는 제호와 부제가 있다. 

제호가 1순위로 검색되고, 부제는 2순위로 밀린다

매우 간단한 검색 로직이다. 


제호가 1순위이기 때문에, “공리주의”라는 단어가 제호에 있는 책들도 있고 부제에 있는 책들도 있다면, 먼저 제호에 “공리주의”가 들어 있는 책이 검색리스트 상단에 모두 들어간 다음에 부제에 “공리주의”가 들어간 책이 비로소 리스트에 들어간다. 그 결과, “공리주의”를 제호로 사용한 책이 품절되거나 절판되었지라도 “공리주의”를 부제로 사용한 번쩍번쩍 신간 책이 품절/절판된 책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것. 


예스MD를 찾아갔다. 며칠 전의 일이다. 예스24와는 직거래하지 않는다. 총판 담당자와 함께 YES24 MD를 만나러 여의도에 갔다. 여기 총판에서는 출판사가 직접 MD를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MD한테 책 자랑을 하고 싶어서요.” 이렇게까지 말했지만, 직거래할까 봐 걱정이신지 담당 과장을 내게 붙였다(내 오해일 수도 있음;;;). 물론 나는 좋았다. 처음 예쓰 MD를 만나는 것이므로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예스 MD와의 미팅이 쏜살같이 끝난 후, 총판 담당자와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마음에 담아둔 말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상대방이 듣기 싫어한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말을 못하면 나중에 후회하면서 불행해질 것 같아서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와 “공리주의”라는 부제를 책 제목으로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예스MD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교보문고 2탄인가'. 그러면 안 되지. 휴대폰을 꺼내서 <타인의 행복>이 절판된 공리주의보다 더 밑에 있는 화면을 보여주면서 이건 정말 문제가 아니냐며 정중히, 몇 차례씩 요청했다. MD는 거북한 표정을 지었고, 내부에서 검토해보겠다며 안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부탁했다.


결국 바뀌었다. 

이제 예스24에서 공리주의를 검색하면 <타인의행복>이 나온다. 

도덕 형이상학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굿윌>이 나온다. 

알라딘이 가장 먼저 그렇게 수정해 주었고 예스도 도와주었다. 

그 보답으로, 나는 알라딘과 예스 MD들이 진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리라, 

며칠 동안 그렇게 생각해 주리라.


교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결국 안 해줬다. 

인터파크는 '부제'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인터파크에서 부제를 제호와 함께 표시하는 작업, 그것이 목표다.



교훈:

1. 책의 제목을 결정할 때, 온라인/모바일에서 독자들이 어떤 키워드로 검색할 것인지를 생각할 것. 
2.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된 책 제목은 검색 키워드로 사용될 것임을 유념할 것.
3. 온라인 서점에 신간 등록할 때(ISBN도 마찬가지) 콜론(‘:’)을 사용하여 <제1제호: 제2제호> 형식으로 제호를 등록할 것. 제2제호는 부제가 돼서는 검색 우선순위에 밀린다는 것을 유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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