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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2. 2019

글쎄, 초등학생 영어공부

딸과 함께하는 영어공부

간혹 딸의 공부를 봐주지만 작심삼일이지요. 

또 딸도 까먹고 나도 내 할 일로 바쁘고 

그래서 결국 딸의 공부를 봐주지는 않습니다. 


학원도 가지 않으므로 뒤쳐질 수밖에요.


다른 과목은 어떻게든 따라가는 것 같지만 영어가 매우 어려운 모양입니다. 이번 주 드디어 딸이 SOS를 했습니다. 아주 소박한 소망을 밝혔습니다. 


자기도 영어를 남들처럼 "읽고" 싶다고. 


6학년이 되니까 원어민 선생님이 자꾸 읽어보라고 시키는데 자기는 잘 못 읽으니까 쪽팔린 겁니다. 쪽팔림은 모든 공부의 에너지로 작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된 일, 뭐 혼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아빠 자체가 산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부는 불가능합니다. (하루 정도는 가능할지도;;) 그렇다고 학원에는 보내기 싫습니다. 나름 부모의 철학이자 고집입니다. 조금 생각한 끝에, 집에 있는:


 <오즈의 마법사> 원서를 읽기로 했습니다.


시작은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저도 잘 모르는 단어도 있고요. 

생각보다 딸의 영어수준이 상당하고요(밑으로).

대충 흉내 내면서 읽고 뜻을 추측해내기까지.  

1쪽을 읽는 데 하루 사오십 분 3일이 걸립니다. 


책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퇴근할 때 A4 1장씩 회사에서 인쇄하기로 했습니다. 

FUTURA 서체로 출력했습니다. 

이 서체는 독일 아저씨가 1927년에 만든 서체야. 산세리프체. 원과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특징이 강한 게 보이지 않니? 뾰족뾰족하고. 폭스바겐의 자동차 로고에 사용되고 있어, 작은 크기로는 책에 사용되기 어렵고, 제목이나 광고문구에는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겠지. 

이런 영어랑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영어공부보다 훨씬 재미있게 더 오래 기억에 남겠지요.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딸에게 서체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미학적인 인식은 서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딸에게 "아빠랑 같이 고3까지 영어 책이나 함께 읽자. 어때?" 하고 말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매일 영어 원서를 다년간 읽으면 딸에게도 좋겠지만, 나한테도 좋지 않을까, 뭐 이런 자기중심의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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