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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22. 2018

에세이3_흰색그랜저아저씨

흰색 그랜저 아저씨

올림픽대로에서였다. 도로가 정체된 탓에 나는 몹시 지루했고 피곤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생겼다. 내 앞에 있던 흰색 그랜저가 느리게 후진을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내 차의 앞 범퍼를 박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꽉 막힌 도로에서 어찌 후진을 한단 말인가. 나는 슬로모션으로 푸념했다. 그랜저 운전자가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나도 나갔다. 운전자는 힐끗 뒤 범퍼를 확인한 다음에 내게 말했다. 


“졸면서 운전하지 마세요.”  


나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앞차가 후진한 게 아니라 내가 졸다가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던 것이다. 사태를 알아채고 허리를 굽히며 사죄를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필경 일초도 걸리지 않았을 터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아저씨는 졸음운전을 조심하라며 잔뜩 쫄아 있는 초보 운전자를 타이르기만 하고 그냥 평화롭게 다시 앞길을 재촉하는 게 아닌가? 이런 추돌사고라면 앞차 운전자가 뒷목을 잡고 내린다던데, 화를 내며 혼낸다던데, 이 기회에 범퍼를 새롭게 교체한다던데, 그거 다 뒤차 책임이라던데. 


자동차 뒤태를 바라보며 나는 은혜를 느꼈다. 얼마나 인자하며 얼마나 인간적인 뒷모습인가. 사고가 경미해도 나는 고마웠다. 그가 어떤 급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나는 감사했다. 초보운전자가 감당하기 힘든 공포와 불안감으로부터 나는 해방되었다. 관용이 선물한 자유였다. 나는 그 자유를 기억하며 지금껏 이십만 킬로미터 이상을 달렸다. 흰색 그랜저 아저씨는 다른 모습으로 내게 여러 번 나타났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은혜풀이를 했다. 


나는 먼저 의왕시에서 은혜를 갚았다. 한 여름의 도로였다. 신호 대기 중에 쿵하고 누군가 범퍼를 박았다. 틀림없이 졸음운전이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장의 어깨를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의 그랜저 아저씨처럼 말했다. 졸면서 운전하지 마세요. 그러고는 따뜻하게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만약 초보시절에 받은 은혜가 없었다면 이처럼 높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정차하여 요금을 계산할 때였다. 누군가 뒤를 박는 것이다. 승용차 안에는 운전수의 아내와 그들의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갓난아이도 있었다. 아마 돈을 꺼내다 그만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졌을 것이다. 저는 괜찮아요. 차도 문제없네요. 아이는 괜찮나요? 오히려 그 가족을 안심시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떴다. 나는 그들이 흰색 그랜저 아저씨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갚았고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도 은혜풀이는 여러 번 반복됐다. 왼쪽에서 달려오는 차량만 신경 쓰느라 함부로 우회전하여 내 차를 추돌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새 차를 몰며 교회에 가는 중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괜찮으냐고 물었다. 시골길 교차로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라 내게 잠깐 실수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사소한 자유를 선물했다. 부풀어 오르는 사람 마음이 자동차에 생긴 흠보다 더 귀하다. 이 또한 올림픽대로에서 내가 얻은 자유에서 비롯되었다. 


자유는 주고받는 것이다. 돌려주는 게 아니다. 퍼뜨리는 것이다. 은혜와 은혜풀이도 마찬가지다. 내가 친절함을 받았다면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친절함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사슬로 얽힌다. 이 사슬은 사람을 묶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한다. 누군가 내게 베푼 자유가 다른 이에게 옮아간다. 내게서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이에게 그 선물을 나눠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때 그 아저씨가 내게 무슨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을 괴롭히는 바이러스만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좋은 바이러스도 있다. 관용이 그러하다. 악평과 불신과 악용만 퍼지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 은혜가 다른 이에게 전사된다. 나는 그것이 인간 사회의 DNA 사슬이라 생각한다.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진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우리 인간은 그 사과에 표정을 담아 남에게 건넬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법칙이다. 높고 푸르며 눈부신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월간에세이 2015년 7월호에 연재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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