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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Oct 13. 2019

인류 최고의 발명: 활자 인쇄술

21호 |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인류 최고의 발명: 구텐베르크 인쇄술


저는 발명을 다루는 일을 합니다. 이론과 실무를 겸해서 거의 20년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름 발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생겼습니다. 법에서는 신규성과 진보성으로 발명을 평가합니다. 세계 최초이냐, 그리고 높은 수준이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여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기준보다는, "시장에 어떤 영향을 발휘하느냐"로 발명의 수준을 평가합니다. <시장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기술이어도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면, 감탄을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격찬은 어렵겠지요. 마찬가지로 세계 최초는 아니었어도 인류 사회를 바꾼 기술이라면 형언하기 힘든 격찬을 받을 만하겠지요.


오늘 주제는 <movable type>입니다. 이를 "활자(活字)"라고 번역합니다. 아마도 일본인이 만든 번역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립해서 사용할 수 있는 글자꼴이라는 뜻입니다. movable wood type(목판활자)는 그다지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책을 대량으로 찍어내지 못했으니까요. 인류 사회를 바꾼 기술은, <movable metal type>입니다. 즉, 금속활자이지요.


우리 한국인은 1377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 <직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불교 책(경전은 아닙니다)이지요.


인쇄술 자체는 오래된 기술이고, 한반도에서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기술은 아닙니다. 대체로 중국을 통해 전세계에 확산된 것으로 이해되더군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책, 직지, 멋있기는 하지만, 그 인쇄술이 인류 사회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정작 한반도에서조차 그 영향력이 미미했으니까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직지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가 1439년 유럽최초로 독일 마인츠에서 금속활자 기술을 발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인쇄공장이 유럽 곳곳에 생겼습니다(아래 그림을 보세요! 50년만에 유럽 전역에 인쇄공장이 생겼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까닭은? 돈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당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성경이었습니다. 필사본이었지요. 가격이 집 한 채보다 비쌌다고 합니다. 그런데 필사본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으면서 가격도 저렴한 책이 나온다면 어쩌겠습니까? 사람들이 움직일 수밖에요.


금속활자 인쇄를 하는 인쇄공장 분포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기 전까지, 유럽은 아직 중세였습니다.


잠자고 있었지요.
인류사에 그다지 영향력이 없던 대륙이었습니다.


잠자고 있던 유럽을 깨운 것이 바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였습니다. 르네상스가 퍼지려면 퍼트리는 매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 책을 소유해서 읽게 됐으므로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에 맞설 수 있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없었다면 종교개혁도 어려웠겠지요.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지식은 공유될수록 더 빠르게 발전합니다.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이탈리아의 갈릴레이에게 전해져야 하고, 갈릴레이의 지식은 유럽 전체로 확산되어야만 과학이 발전하겠지요. 책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군주의 제왕적 권위에 맞서 민주주의 사상을 확산하려면 마찬가지로 그 사상을 뒷받침하는 책이 인쇄되어야 했습니다. 출판이 사상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곧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술이었지요.


금속활자 인쇄술이 등장하자 성경은 라틴어뿐만 아니라 독일어와 같은 여러 유럽 민중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식을 독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대중 번역을 싫어하게 마련입니다. 1515년 교황 레오 10세는 이렇게 교서를 썼습니다.


"번역들이 신앙의 오류들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모순되는 부정적인 교리와 고위 성직자들의 명성에 반대하는 사항들을 담고 있다. 그런 것들을 인쇄하고 공식적으로 판매까지 감행하여,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오히려 신앙생활과 실생활에서 아주 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교장으로서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런 번역들로부터 다양한 분노들이 생성되며, 매일매일 더 큰 분노가 생길 것에 대해 두려워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신의 영예를 위해서 검열을 허용해야 하며, 기독교 신자의 구원을 위해 서적의 인쇄를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에는 좋은 씨앗에 가시가 함께 자라는 것을 막고, 좋은 약이 독과 같이 섞이는 것을 막게 될 것이다."(<구텐베르크와 그의 영향> 중에서, 슈테판 퓌셀 저, 최경은 번역,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18세기 유럽에서는 이미 10억 권에 이르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유럽 인구보다 더 많은 책이 지식을 전하고 확산하면서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던 것이지요. 아무리 뛰어난 소수의 천재가 있어봤자 뭐 합니까? 그게 곳곳의 나라에, 곳곳의 마을까지 전해져서 대중들도 천재의 생각을 알아야만 집단지성 같은 것도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유럽에서는 인쇄술 덕분에 그게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는 어째서 이런 일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디테일이 남달랐습니다. 금속활자만 만든 게 아니었거든요. 몇 가지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1) 유성 잉크를 개발했습니다. 금속활자 표면에 잘 발라지면서 종이에 번지게 잘 내려앉는 잉크였습니다. 유성잉크여서 물에 젖어도 글씨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2) 유성 잉크를 금속활자 표면에 잘 바르는 도구도 개발했습니다.

(3) 금속활자를 조립해서 끼워 넣은 매트릭스를 종이에 찍을 때 정확하고 확실하며 안정감 있게 누를 수 있는 프레스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와인 짜는 도구를 응용했지요.

(4) 구텐베르크는 대장장이입니다. 금세공술을 익혔고요. 동전을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금속에 대한 탁월한 식견과 경험이 있는 장인이었다는 것이지요. 합금술이 남달랐을 거예요. 주석과 납과 안티몬 합금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느냐,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대로 전승된 인쇄기술이었으므로 재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 같더군요.

https://youtu.be/DLctAw4JZXE


(5)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 노동집약적인 공장 시스템으로 분업화된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식자공, 조판공, 인쇄공 등등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습니다. 기계화된 인쇄 시스템이어서 각자의 노동을 분업화할 수 있었지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탁월한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인쇄물은 면죄부를 포함한 종교적인 텍스트였고 거기에 더해 라틴어 문법 책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물론 성서였습니다.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4~6인의 식자공이 필요했고, 6개의 인쇄기에 최소한 12명의 인쇄공이 필요했으며 채색과 종이 작업을 위해 보조노동자도 필요했다고 합니다. 성서를 인쇄하려면 활자만 10만 개를 주조해야 했는데 최소한 반년이 소요되었다고 하고요. 조판과 인쇄로 2년 이상 걸렸을 거라는 추정입니다. 당시 한 명의 필사자가 성서 한 권을 필사하는 데 3년이 걸렸으나, 구텐베르크 인쇄술로는 같은 기간에 180부의 성서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느릿느릿 작업해도
180배의 효율이라는 것이지요.


놀라운 기술을 발명했다고 해서 상업적으로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텐베르크가 지인한테 큰 빚을 졌거든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교황청 아니면 주교청에서 인쇄대금이 입금되는데, 어느 시절에나,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큰 돈이 입금될 예정이라고 채무자가 아무리 부탁해도, 함께 기다려주는 채권자는 드물더군요. 그래서 인쇄소를 투자자인 푸스트라는 사람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다행히 역사는 푸스트가 아닌 구텐베르크를 기록해줬습니다. 나중에 알려졌다고 하는군요. 구텐베르크는 만든 42행 성서는 지금도 수십 권 전승되어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 있습니다. 그림과 채색은 수작업입니다. 책 여백은 아름답기 그지없고요. 한 장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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