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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Feb 21. 2020

다이얼렉틱?

36호 | 이과도 즐길 수 있는 철학이야기

다이얼렉틱과 변증법의 역사


다이얼렉틱? 백이면 구십구 명이 이게 무슨 말이지 하지 않을까요? 영어로 <dialectic>입니다(복수형 s를 붙여도 좋습니다). 이렇게 영어단어까지 제시하면 영어를 잘하시는 열대여섯 명은 아하 <변증법>,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그냥 한글로 "변증법"이라고 하면 될 것이지 뜬금없이 "다이얼렉틱"이라는 단어를 쓰는 거냐며, 저를 나무라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변증법이라고 말하면 되지요. 하지만 제가 굳이 "다이얼렉틱"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까닭이 두어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글을 읽는 팔할 이상은 "변증"이라는 단어를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 확신하지요. 옛날과 달리,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자'를 잘 모릅니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떨어질수록 '한자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요. 이 한자어의 뜻은 "변론하여 증명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곳 조선 땅에서는 <변증법>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오래전 이 한자어를 발굴해 낸 사람(아마 일본 학자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덕분에 어쨌든 "변증"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사용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주입된 단어여서 어지간한 탐구를 하지 않으면 그 진정한 의미를 잘 알지 못한 채 대충 넘어가게 됩니다.


서양의 정신세계사에서 <dialectic>이라는 단어는 꽤나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dialectic>이라는 단어를 "변론하여 증명함"이라는 뜻의 <변증법>으로 번역하면, 의미가 막히는 경우가 잦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dialectic>이 있는 문장에서 그 단어를 <변증법>으로 번역하는 경우, 정말이지, 단어 번역은 되는데 문장 번역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이게 불만이었지요. 오히려 <dialectic>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문장에서는 <모순>이라는 단어로 번역해 보면 훨씬 의미가 명확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철학하는 어려움입니다. 단어를 이해하면 문장을 모릅니다. 이번에는 문장은 이해하겠는데 단어의 의미를 모릅니다. 이 두 가지가 항상 발생하니까, 학자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지혜에 입문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뭔 말 하는지 모르면 짜증나잖아요? 그런데 한국사람이 한국어를 모르면 더 짜증납니다. 모어는 즉각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차라리 외국어인 경우에는 신기하게도 사정이 좀 나아집니다. '자, 한번 잘 이해해 볼까'라는 너그러운 심정이 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런 너그러운 심정에 기대어 <dialectic>을 <변증법>으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다이얼렉틱>으로 음역한 다음, 그것의 역사를 설명해 볼까 합니다.

 


고대의 다이얼렉틱


다이얼렉틱(dialectic)은 희랍어에서 유래되었고, 영어단어 "dialogue"의 어원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dialogue"가 무슨 뜻인가요? 대화라는 뜻이지요. 대화는 무엇입니까. 서로 묻고 답하기를 이어나가는 행동이잖아요? 고대의 다이얼렉틱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대체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끼리 특정 주제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진리를 찾는다든지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을 다이얼렉틱이라 불렀습니다. 유용했을 겁니다. 지금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일종의 디베이트 술법이었을 거예요.


반론과 모순을 제기하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도 다이얼렉틱이고, 완전히 모순되지 않지만 계속된 질문을 통해 점점 더 진리에 다가가도록 하는 방법도 다이얼렉틱이었으며, 회의, 의문, 질문으로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주제를 환기시키면서 자기 주장을 전개하는 것도 고대의 다이얼렉틱이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견해를 주고받는 것이지, 감정을 섞는 일은 제외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가 시작된 기원전 4~5세기경에 다이얼렉틱은 상당히 유행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 들어봤던 "제논의 역설"이라는 게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인 엘리아의 제논(495~430 BC)은 다이얼렉틱의 창시자라고 언급되는 “진지하게 웃긴” 할아버지입니다. 이분의 유명한 역설 중에서 아킬레우스와 거북이를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지요.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보다 빠르다고요? 천만에요. 아킬레우스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그가 움직이는 동안 거북이도 '조금은' 앞으로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지요.




설마 제논 할아버지가 정말 이것을 사실로 믿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다이얼렉틱을 희화화 해본 거겠지요. 그래서 '역설'이라고 하고, 논리적인 유희입니다.


다이얼렉틱이야말로 진리를 찾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대철학자가 나타납니다. 소크라테스(Sorates 470~399 BC)입니다. 묻고 답하는 다이얼렉틱을 통해서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간과했던 무지를 드러내고 참된 지식을 함께 찾아가는 길을 제시했지요.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니, 플라톤(Plato 428~348 BC)일까요? 지혜로운 소크라테스는 직접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논쟁하느라 바빠서 책을 쓸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반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매우 많은 책을 남겼으며, 그것들이 서양철학의 큰 자양분이 되었지요. 그런데 플라톤이 쓴 책에서는 항상 스승 소크라테스가 화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엮여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가르침은 다이얼렉틱으로 전해집니다.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킨 분이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의 대표 저작인 <국가론> 제7장의 시작 부분을 소개합니다. 이 부분이 다이얼렉틱의 전형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약한 다이얼렉틱 정도되는 대화입니다. 하지만 내용이 워낙 유명해서 소개합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알레고리>(Allegory of the cave)라고 합니다.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비유인 경우를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상대방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플라톤의 형인 글라우콘입니다. 사오 년 전에 제가 번역(편역)했는데 지금에야 써먹네요. 오늘 주제는 "다이얼렉틱"이므로, 본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읽지 말고 (나중에 읽고) 다음 "헤겔 변증법" 편으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면 우리 본성이 교육을 통해 얼마나 빛나게 되며 계몽 없는 본성은 또 얼마나 빛을 잃는지 예를 들어 보지. 잘 들어보게. 지하 동굴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있어. 깊은 굴을 따라 올라가면 마침내 밝은 빛에 이르는 아주 커다란 입구가 있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동굴 안에서 살았고, 사슬로 다리와 목이 묶여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네. 머리를 둘둘 감고 있는 사슬 때문에 그저 앞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지. 그들 위로 그리고 뒤로 저 멀리서 횃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동굴에 갇힌 사람들과 햇불 사이에 칸막이 벽이 굴속 오르막길을 따라 세워져 있다고 상상해 보게. 그것은 마치 인형술사들 앞에 있는 칸막이 같은 거였어. 인형술사들이 그 칸막이 앞으로 꼭두각시 인형들을 내보이는 것처럼.

글라우콘: 네. 그렇게 상상해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이렇게도 상상해 보지. 칸막이 저편에서 나무와 돌과 그 밖의 여러 재료로 만들어진 동물상과 조각상과 그릇 같은 것들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모습이 동굴 벽을 통해 보여지고 있어. 그들 중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묵묵히 옮기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군.

대략 이런 상황입니다


글라우콘: 선생님은 제게 기묘한 이미지를 보여주시는군요. 그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죄수들이 아닙니까?

소크라테스: 그들이 우리와 같아. 그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만을 볼 수 있지. 불빛이 반대쪽에서 비추고 있으니까. 그런 그림자 말고 그들 자신을 본다거나 서로서로를 본 적이 있겠는가?

글라우콘: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목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데 그림자 말고 어떻게 다른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소크라테스: 그 벽을 따라 운반되고 있는 것은 어떤가? 같은 방식으로 그림자를 보기만 하지 않겠나?

글라우콘: 물론이죠.

소크라테스: 만약 그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자기들 앞에서 지나가는 그 물건들에 대해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겠나?

글라우콘: (고개를 끄덕인다)

소크라테스: 또 생각해 보지. 그 사람들이 마주하는 벽 쪽에서 어떤 소리가 울려 온다면 어떻겠나? 그 벽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 중 누군가가 말을 하는 것이지. 그때 묶인 사람들은 어떻게 믿을 거라고 자네는 생각하나? 자기들 앞에서 지나가는 그림자가 말을 하고 있노라고 믿지 않겠나?

글라우콘: 의문의 여지가 없군요.

소크라테스: 그들에게 진실이란 말 그대로 그런 인공적 것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겠군.

글라우콘: 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해방돼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바로잡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자유를 얻고서는 갑자기 서서 두리번거리며 걸어보겠지. 불빛을 바라볼 때에는 아주 강한 고통을 겪을 것이네. 너무 눈부셔서 아까 봤었던 그림자의 실제 모습을 바라볼 수는 없을 거야. 누군가 그 사람에게 말을 하는군. ‘자네가 아까 바라봤던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아. 존재에 더 가까이 가서 진짜 모습을 눈에 담아보게. 아주 올바르고 분명해 보이지 않은가?’ 이런 질문을 받은 사람은 뭐라고 대답하겠나? 질문하는 사람이야 눈앞을 지나던 대상들을 짚어가며 그것들이 무엇인지 심문해 보는 것이지만, 이제 기껏 자유를 얻은 사람은 얼마나 당혹스럽겠나? 그 사람은 아까 자기가 봤던 그림자가 그에게 실제 보여진 대상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믿고 싶지 않겠나?

글라우콘: 그렇고 말고요.

소크라테스: 그에게 억지로 그 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면, 그 사람은 눈이 아파서 그가 바라볼 수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겠나? 그러고는 그에게 지금 보여지고 있는 것보다는 그가 눈을 돌린 쪽이 더 명확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글라우콘: 그렇겠죠.

소크라테스: 이것도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누군가 그를 그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경사를 따라 강제로 끌고 가는 것이야. 그런 다음에 마침내 태양 아래에 부려 놓는 것이지. 고통스럽겠군. 햇빛에 노출되었을 때 그 눈은 너무 눈부셔서 이른바 진실한 것이라고 말해지는 그 무엇도 바라볼 수 없겠지.

글라우콘: 그럼요. 바로는 볼 수 없지요.

소크라테스: 지상 세계를 볼 수 있으려면 눈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는 먼저 그림자를 가장 쉽게 볼 수 있고, 다음으로는 물 속에 비친 사람과 대상의 이미지, 그다음에야 대상 그 자체를 바라보겠지. 또 그는 달이며 별이며 반짝이는 하늘을 우러러 보게 될 텐데, 낮에 태양과 햇빛을 보는 것보다야 밤하늘과 별을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나?

글라우콘: 물론이죠.

소크라테스: 마지막에는 태양을 볼 수 있게 되겠지. 그저 물이나 다른 곳을 통해 비친 영상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그 태양 말이야. 그 사람은 태양을 바라볼 것이고 또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글라우콘: 네.

소크라테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은, 태양이 계절과 연도를 주는 것이며, 이 감각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의 수호자이며, 또한 어떤 면에서 태양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봤던 모든 것의 원인이라는 의견에 이를 것 같네만?

글라우콘: 그럼요. 그가 먼저 태양을 본 다음에는 태양에 관해서 생각을 하겠지요.

소크라테스: 그런데 그가 이전에 살고 있던 장소를 생각한다면, 그 동굴에서 통했던 지혜와 그의 동료 수감자들을 회상한다면, 그렇게 바뀐 자신의 처지를 행운으로 생각하고 아직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나?

글라우콘: 물론입니다.

소크라테스: 만약에 말이지. 그 동굴에서 말이야. 그들 앞을 지나가는 그림자들이 무엇인지 가장 예리하게 알아내는 사람에게, 즉, 그림자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나타나고 어느 것이 뒤따르는지, 어느 것이 동시에 나타나는지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장차 그 그림자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장 잘 알아맞추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칭찬하고 명예를 주는 관습이 있다고 가정해 보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사람이 그런 명예와 영광을 갖고 싶어한다거나 그런 명예와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할까? 아니면, 차라리 호메로스의, “가난한 주인 밑에서 종노릇하는 농군이 낫지.”라고 말하면서 그 동굴의 방식으로 살고 행동하는 것보다야 지상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게 낫다고 여기지 않겠나?

글라우콘: 맞는 말씀입니다. 거짓 생각을 즐기면서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야 차라리 무엇이든 고통을 겪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소크라테스: 이것도 한 번 더 상상해보게나. 만약 그 사람이 원래 있던 동굴로 되돌아 간다면, 눈에는 어둠이 가득차서 보이지 않지 않겠나? 햇빛이 있던 곳에서 갑자기 왔으니까 말이지.

글라우콘: 당연하죠.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의 눈이 아직 어둑어둑한 동안에, 어떤 경쟁에 참여해야 했었네. 동굴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수감자들과 그 그림자들이 무엇인지 알아맞추는 것이네. 그가 시력이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 말이야. 바뀐 환경에 눈이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법이니, 그는 아주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나? 사람들은 그가 위쪽으로 올라갔다 오더니만 눈을 잃고 돌아왔노라고, 올라가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말하지 않겠나? 그리고 누구든지 쇠사슬을 풀어줘서 올라가게끔 하는 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어떻게든 그 사람을 잡아낼 수 있다면야 해치려 들지 않을까?

글라우콘: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소크라테스: 글라우콘, 이제 이 비유 전체를 아까 우리가 말한 것과 연결시켜 보세. 사람들이 갇힌 동굴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고, 횃불의 빛은 태양이지. 그리고 동굴 바깥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사람의 정신이 지성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에 해당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보잘것없는 생각을 제대로 이해한 게지. 자네의 바람에 맞게 이렇게 비유했지만 과연 맞는 말인지는 신만이 아시겠지. 맞는지 틀리는지는 몰라도, 내 생각에는 지식의 세계에서는 선함의 이데아가 가장 마지막에 나타난다네. 오직 노력에 의해서만 볼 수 있어. 그리고 선함의 이데아를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름답고 올바른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면서 또한 눈에 보이는 세계에 있는 빛의 아버지이자 주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지성의 세계에서 이성과 진실의 직접적 근원임을 깨닫지. 또한 공적이거나 개인적인 삶에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사람이 그 시선을 고정시켜야만 하는 능력이라는 것도 알게 될 거야.

글라우콘: 동의해요. 제가 선생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다면요.

소크라테스: 이런 환희에 찬 이해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속세의 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는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지. 그들의 정신이 더욱 높은 세상에 머물고 싶은 게 당연하겠지. 내가 말한 비유가 맞다면 말이야.

글라우콘: 당연하지요.

소크라테스: 이렇듯 신성한 사고가 지배하는 곳에서 추악한 속세로 돌아온 사람이 우스운 모양으로 경우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게 이상할 일도 아니지 않겠나? 특히 그의 눈이 주변의 어둠에 아직 적응하지 못해 희미한 상태에서 법정에서나 그 외의 다른 곳에서 정의의 그림자나 정의의 그림자의 그림자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완벽한 정의를 아직 본 적이 없는 사람의 고정관념을 상대해야 한다면 말이야.

글라우콘: 그럴만도 하겠어요.

소크라테스: 이런 두 가지 경우에는 눈이 부적응을 겪는다네. 즉, 빛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와 빛으로 향해 가는 경우. 신체의 눈이 그런 것처럼 정신의 눈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이 점을 이해한다면 정신의 시력이 희미하고 부적응을 겪는다고 쉽게 비웃지는 못하겠지. 먼저 그 사람의 정신이 더 밝은 빛을 보고 있다가 어둠 속으로 들어온 바람에 적응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혹은 어둠에서 대낮의 밝은 빛으로 나와 눈이 부셔서 그런 건 아닌지 확인해야겠지. 그렇다면 한쪽 경우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하겠고, 다른 쪽은 안 됐다고 생각할 거야. 어둠에서 빛으로 나와 비틀거리는 사람을 비웃을 수는 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그게 빛으로부터 동굴 속으로 돌아와 비틀거리는 사람을 비웃는 행동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 같군.

글라우콘: (팔짱을 끼며) 그렇겠네요.

소크라테스: 그런데 이런 교사들도 있더군. 자기들은 비어있는 정신 속에 지식을 넣을 수 있다면서, 마치 장님의 눈을 띄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야.

글라우콘: 네. 그렇게 말하는 교사들이 있죠.

소크라테스: 우리가 토론한 것처럼, 배울 수 있는 힘과 역량은 이미 사람의 정신 속에 있지. 그리고 몸 전체가 움직이지 않고서는 눈이 어둠에서 빛으로 향할 수 없었듯, 정신 전체가 미완성의 세계에서 존재의 세계로 움직여야만 지식의 도구도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야 해. 그리고 존재를 보는 것을 견디내기 위해 단계적으로 배워 나가야지. 그리고 그들이 보게 될 가장 밝게 빛나는 최고의 존재가 무엇이겠나. 바로 선함이라네.

글라우콘: 네.



논리학에서의 다이얼렉틱


전통적으로 논리학에서 말하는 논리는 <형식논리>입니다. 형식논리라는 것은 사람의 경험이나 감정, 기호 등의 주관적인 요소가 전혀 개입하지 않고, 형식만으로 참이냐 거짓이냐가 정해지는 논리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삼단논법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는다 |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같은 논리가 되겠지요. 명제들의 형식 자체만으로 참이냐 거짓이냐를 알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 할아버지가 정립했습니다.


이번에는 플라톤 오른쪽 옆에 분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논리학에서 다이얼렉틱은 제외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이얼렉틱을 논리학으로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명제의 형식을 만들 수 없으며 가변적이고 화자의 주관이 개입하니까요. 문답술로는 유용하지만 그래도 학문까지는 아니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랄까요. 2100년 후 칸트 할아버지도 다이얼렉틱은 가상의 논리이지 진짜 논리는 아니라고 했고요. 다이얼렉틱이야말로 "진짜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불만이겠지요. 그들은 다이얼렉틱을 '변증논리'라고 해서 논리학에게 집어넣으려고 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헤겔 할아버지가 등장하신 다음입니다.



헤겔의 다이얼렉틱: 헤겔 변증법


칸트 이후 18세기말 19세기 초의 독일에서 일어난 지적흥분을 우리는 "독일관념론"으로 칭합니다. 삼총사가 나타납니다. 대철학자 칸트가 이성의 한계를 아주 촘촘한 논리로 증명하면서 철학을 끝내버렸습니다. 그게 불만이었던 것이지요. 칸트는 다이얼렉틱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들 삼총사는 칸트가 멀리한 다이얼렉틱에 매력을 느꼈고요. 그래서 삼총사는 삼각형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그 유명한 <정반합 변증법>입니다.


소크라테스 시절의 다이얼렉틱과는
완전히 무관한 개념이 되었지요.
(그럼 다른 용어를 쓰든가!!!!)



현대 한국인이 알고 있는 다이얼렉틱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다이얼렉틱이 아니라,

독일관념론 삼총사가 정립해 낸 <삼각형 변증법>입니다. 이 삼총사 중에서 헤겔이 가장 유명하고, 이후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미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냥 <헤겔 변증법>이라고도 말합니다.


삼각형 변증법은 정/반/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려져 있지요. 먼저 '정'이 하나의 명제로 등장합니다. 그다음 그 '정'과 모순되면서 갈등관계를 갖는 '반'이 등장합니다. 이들 정과 반은 역동적인 갈등관계를 가지면서 서로 낡은 것을 버리고 의미있는 것을 보존하면서 그 갈등관계를 지양(아우푸헤벤)하는 '합'의 단계로 발전합니다. 피히테(1762~1814) 할아버지는 이를 테제(Thesis), 안티테제(Antithesis), 진테제(Synthesis)라는 용어로 정립했습니다. 헤겔 할아버지는 추상성-부정성-구체성으로 삼각형 변증법을 정립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테제, 안티테제, 진테제 삼각형 변증법을 그냥 헤겔 변증법으로 이해합니다. 그게 그거다 싶은 거겠지요. 우리 한국인들은 그냥 "정반합"이라고 말하고요.


왜 느닷없이 독일관념론에서 다이얼렉틱이 전면으로 등장했을까요?


칸트에 따르면 사물 자체의 본성은 알 수 없다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이들 삼총사들은 그게 불만이었던 겁니다. 더이상 이성으로는 뭔가를 탐구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너무 무력한 게 아닌가?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우리의 탐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지식의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나 우리의 논리를 바꾸면 절대적인 지식도 다시 재탐구될 수 있지 않을까? 아, 맞아, 칸트가 다이얼렉틱을 탐구하지 않았지, 혹시 여기에 진리로 가는 비밀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식의 의문이 다이얼렉틱의 재발견에 이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상상입니다) 헤겔 할아버지의 대표적인 저작의 명칭이 무려 <정신현상학The Phenomenology of Spirit)입니다. 'Spirit'이라는 단어는 성령(Holy Spirit)의 그 'Spirit'이거든요. '정신'이라기보다는 '영'의 현상학인 셈이지요. 칸트가 영혼 같은 것은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언했음에도, 헤겔은 다시 그걸 철학으로 가지고 온 것이지요.


다시 절대적인 지식입니다.
그 방법론은 다이얼렉틱이고요.



마르스크주의 유물변증법의 등장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청년헤겔 좌파였습니다.



이들도 "삼각형 변증법"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다음 "유물론(Materialism)"에 결합시킵니다.  유물변증법 혹은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이 탄생합니다. 절대정신이나 절대이념이 변증법적으로 나타나는 헤겔철학을 뒤집어버립니다. 정신? 비웃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리얼리티는 정신속에 있지 않고 현실세계에 있으며, 물질이 정신을 규정한다고 선언합니다. 다만, 물질적이며 현실적인 이 세계는 변증법적으로 운동한다고 해석함으로써 헤겔 방법론을 차용했지요. 어쨌든 그때부터 "관념론자"라는 단어가 "마르크스주의자"에 의해 비난과 모욕의 대표적인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공통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한다는 것이고, 둘째 그것은 삼각형 변증법으로 운동한다는 것입니다. 확신에 찬 분들이었습니다. 확신, 얼마나 매혹적인 태도인가요?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다는 것도 이 두 할아버지의 공통점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으로 인류는 완전히 다른 색채의 현대사를 살았습니다. 계급 차별을 철폐하고, 혁명을 통해 공평과 평등한 이념을 실현하려는 온갖 열정이 있었습니다. 전쟁도 발발했고요.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와 같은 역동적인 시간을 거쳐 지금은 어느덧 마르크스 주의에 기초한 적색혁명의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변증법 관점으로 이해하자면, 자본주의가 테제, 이에 맞서는 모든 혁명적인 노력이 안티테제, 그리고 그 대립과 갈등관계를 지양한,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현대 사회가 진테제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지금 시대가 하나의 테제로 제시되고 또 다른 안티테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요.


혁명이라는 이념에 흥분한 사람들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를 더이상 신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실이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그러나 사상의 철학적 토대가 되었던 변증법을 버릴 마음은 없는 듯 하더군요.



지금까지 다이얼렉틱(Dialectic)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다이얼렉틱과 19세기 독일관념론 삼총사의 등장 이후의 헤겔의 다이얼렉틱은 서로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는 그냥 '변증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차이점을 잘 전하려는 것이 이번주 토픽의 목표였습니다. 이 목표가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이얼렉틱"의 유용성을 긍정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다이얼렉틱 방법론은 타인을 설득하거나 혹은 타인이 생각하지 못한 점을 환기시킬 때에는 유용합니다. 그러나 "삼각형 변증법"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정반합의 논리는 정과 반의 갈등을 절대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대립하는 당사자의 유불리가, 대립과는 무관한 더 높은 이상(정의나 도덕 같은)을 배척하고 핍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논리가 이익에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삼각형 변증법은, ‘반’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어째서 나는 ‘정’이 있어야만 하는가, 나는 그냥 나이면 안 되는가? 라는 돌직구에 취약한 것 같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요.



헤결 변증법에 대해 독일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문장 하나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헤겔 변증법은 아주 대단한 정신승리 도구를 제공하지요. 왜냐하면 완전한 패배를 승리의 시작으로 해석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궤변의 가장 아름다운 예 중 하나는 1933년 이후에 독일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거의 2년 동안 히틀러의 승리가 독일 공산당의 패배임을 인정하는 걸 거부했답니다. 

That Hegelian dialectics should provide a wonderful instrument for always being right, because they permit the interpretations of all defeats as the beginning of victory, is obvious. One of the most beautiful examples of this kind of sophistry occurred after 1933 when the German Communists for nearly two years refused to recognize that Hitler's victory had been a defeat for the German Communist Party.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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