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호 | 이과도 즐길 수 있는 철학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z4gLGs9H2v8&list=TLPQMTYwOTIwMjHWa5M-bltVQg&index=2
오래전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했어요. 학창시절엔 그런가 보다 했다가, 그런데 모더니즘이 뭐지? 이런 생각이 가끔 들었습니다. ‘근대주의’로 번역하기도 하고 ‘현대주의’라고도 번역되던데, 근대와 현대는 너무 다른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이거 진짜 웃기네 라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모더니즘을 설명하는 여러 텍스트를 읽기는 했는데 명쾌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세월이 흘러버렸지요. 그러다가 최근 계몽주의까지 다시 탐험했으므로 이때다 싶어서 생각을 정리합니다.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모더니즘” 만큼 도움이 되는 주제도 드물어서요.
지난 34호 <자유의지>에서 계몽주의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계몽주의의 종착역은 <개인>입니다. 주체성의 확립이지요. 계몽주의가 발호하기 전까지 우리 인류는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며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계몽주의가 등장해서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임을 깨닫게 해줬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뭐가 주인공이었는데? 라고 물으시겠지요. 그러면 다시 저는 “집단”이었다니까요 라고 답을 합니다만, 생각해 보면 이게 좀 모호하긴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우리가 알잖아요? 집단적으로 살아가는 건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이 일화를 알게 된 다음에 제 생각이 확 넓어졌답니다.
1781년의 일입니다. 독일에서 57살의 노교수가 자기 생애 첫 번째 책을 펴냅니다. 그러면서 그 책의 서문에서 자기 책을 ‘자뻑’합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누구입니까? 천동설이 틀렸고 지동설이 맞다고 입증한 천문학자잖아요? 인류 전체의 인식을 바꾼 사람입니다.
책을 출간하면서 자기 책이 코페르니쿠스의 업적과도 같이 엄청난 내용이 있으며, 그것이 인류의 인식을 바꾸리라고 확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1724~1804)입니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은 <순수이성비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이 이 난해한 책에 "뜨악"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답니다.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중의 한 권이 되었지요. 어떤 내용을 썼길래요?
쉽게 설명해 보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인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알고 싶은 <지식의 대상>이 있습니다. 인간이 중심에 있고 그 지식의 대상이 인간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자기 주위에서 운행하는 삼라만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게 종전의 철학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지식의 대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운행의 비밀을 알면 그 대상의 본질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지식의 대상을 놓고 인간이 그 대상 주위로 열심히 도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인간이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식의 대상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이때 칸트는, 대상을 관찰하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과 감각에 의해 그 대상에 관한 지식이 저마다 달라짐을 깨닫습니다. 관찰자의 관찰에 의해 존재가 결정된다는 양자역학의 결론처럼 말이지요. 그러므로 모든 이에게 똑같이 파악되는 대상의 본질(누메논: Noumenon, thing in itself, 물자체)은 있을 수 없고, 지식은 사람마다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결국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적인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대단하다고 뽐내던 인간 이성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칸트 할아버지는 이걸 자뻑한 것이고요.
칸트가 책상을 탁 치며 부정했던 절대적인 지식이나 확신이 계몽주의 이전에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답니다. 그것이 “집단의 생각”을 결정했고요. 대표적으로는 종교였겠지요. 칸트는 그 주연배우의 자격을 박탈한 것이었고요. 칸트 할아버지는, 이성의 역할이 그런 절대적인 지식을 얻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행동을 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주장했지요. 그러면서 개인 한 명 한 명이 ‘목적의 왕국’의 군주이거나 시민임을 선언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은 한 인간의 존엄성밖에 없습니다. 이게 왜 모더니즘과 연결되냐고요?
칸트철학의 핵심은, 개인의
주체성의 확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생각의 주체이자 행동의 주체라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절대적인 확신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에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어요? 그냥 그 확신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했던 거지요? 당시 유럽은 천 년을 넘게 개인을 지배한 타인의 생각(절대적인 진리와 축복받은 운명과 대를 이어온 규범)이 세상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계몽주의는 그 절대적인 확신의 엉덩이를 힘껏 차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개인을 놓았던 것입니다.
계몽주의가 말합니다. 여러분, 칸트 할아버지가 자뻑했던 것처럼, 이제 여러분도 자뻑하세요.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진리는 알 수 없으니까요.
이처럼 자뻑이 계몽주의(Enlightment)의 탯줄입니다. 그러고 나서 계몽주의는 두 아이를 새롭게 잉태했답니다.. 아들에게는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이, 딸에게는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계몽주의 덕분에, 우리 인간은 이제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자유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념이 되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런 셈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은
인류에게 너무나 낯선 것이었어요.
천 년을 넘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 본 적이 없는데 뭐 어쩌라고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순종하면서 살았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변하란 말입니까? 절대적인 지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패닉에 빠질 수밖에요. 이런 상황에서 모더니즘이 바로 탄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무르익기만 했겠지요.
이때 먼저 나온 것이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무너진 절대적인 지식(종교와 신분제)을 대체해 줄 무엇인가 강력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강력한 지식은 권력(power)과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였지요.
어떤 무리들에게는 돈이 종교가 차지한 자리를 대체했습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사람은 돈이 전부이고, 돈을 벌어주는 사회 시스템을 애정했겠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정반대되는 이상향을 신봉했습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을 절대적이며 필연적인 것으로 보았고 참된 진리를 발견한 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매력을 느꼈겠고요. 이데올로기는 절대적인 진리를 신봉했던 지난 시대를 닮았습니다. 과도기적인 흐름이었지만 굉장히 거셌고 오래 갔지요. 이데올로기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죽어나갔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고요. 진리를 지나치게 확신하면 적이 생기고 적대감이 집단화되면서 그 적을 죽이고 싶어지잖아요.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다만, 이데올로기의 출현은 계몽주의가 가져온 어쩔 수 없는 참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계몽주의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힘든 일이었을 뿐입니다.
인류는 아직 혼자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모여 무언가를 신봉하는 데
더 익숙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이가 이데올로기에 취한 것은 아니었지요. 자기 자신을 표현할 무기가 있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주체성을 과감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지요. 그런 무리로는 철학자, 예술가, 작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규범적인 생각과 표현을 식상해하면서 오래된 스타일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에서 벗어나는 그들의 (더 정확하게는 개인의) 새로운 실험과 운동을 <모더니즘>이라고 부릅니다. 워낙 다양해서 - 누구나 다 모더니스트가 될 수 있으니 다양할 수밖에요 - '이것이 모더니즘이다'라고 단일하게 규정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더니즘은 절대적인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표현하는 주체의 등장>을 알리는 지속적인 실험이자 운동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나중에는 창대했고 새로운 전통이 되었습니다.
한편 “모더니즘은 ***** 사상을 담고 있다”고 설명하는 글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만, 그건 좀 뭔가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와 헷갈린 게 아닌가 합니다. 모더니즘은 특정 내용의 사상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동종의 정신을 표현하고 그 표현기법이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모더니즘은 그저 자기 세계를 표현하려는 일련의 경향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더니스트는 집단이 아닌 개인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어쨌든 지금이야 "모던한데"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조차 처음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어요.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답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을 거부하고 세상을 자기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이단의 길을 선택하려는 용기가 어떻게 모더니즘 운동으로 표현되었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당시 모더니스트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니니까 깊은 수준을 바라지 마세요.
여기에서는 세 명만 간단히 소개합니다.
계몽주의 이후 절대주의 철학은 거의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 할아버지는, 칸트가 간과한 “절대정신”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진리를 알아낼 것 같았지요. 그런 점에서 헤겔은 영웅이었습니다. 실제로 헤겔의 관념론은 당대에 엄청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변증법과, 절대정신이 역사에 필연적으로 구현되리라는 기대는 마르크스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있지요. 하지만 근대철학의 주류는 아닌 것 같더군요.
헤겔의 영원한 숙적이 있습니다. 헤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디스’했을 겁니다. 본인은 당대의 대철학자로 엄청난 권위와 명성을 지녔는데, 웬 ‘듣보잡? ‘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상대방은 헤겔을 숙적으로 여겼습니다. 아니 경멸했습니다. 저열한 사기꾼, 삼류작가, 무능하고 간사한 패거리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베를린 대학교에서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하기를 희망했지요. 그러나 결과는 낭패였습니다. 학생들은 ‘저열한 사기꾼’의 강의를 선택했습니다. 그에게 대학은 희망이 사라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수 자리를 던져버리고 고독을 택했대요.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할아버지입니다.
이분 진짜 재미있는 '의지의 사나이'입니다. 책도 많이 쓰지 않았어요. 30살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역작을 펴냈어요. 자신이 칸트의 진정한 비판적 계승자임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100권 정도 팔렸다는군요. 이 출판은 완전 망했지요. 그렇지만 56세에 다시 2판을 냈습니다. 역시 안 팔렸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망해버린 책의 부록을 또 썼습니다. 그때가 63세입니다. 그 책이 <쇼펜하우어 인생론>으로 알려졌지요. 전 세계 초대박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환갑이 넘어서야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할아버지예요.
쇼펜하우어 할아버지는 염세주의자로 아주 유명하지요. 무신론자이기도 합니다. 이상향이니 절대정신이니 하는 건 허튼소리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철학자로서 아주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도 해치지 마라. 오히려 네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이를 도와라"라는 윤리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재야의 진정한 강자이셨습니다.
한편, 계몽주의 이후 적어도 유럽에서는 종전 같은 기독교의 절대권위는 더이상 유지되지는 못했습니다. 기독교철학도 영향력을 잃었고요. 이때 기독교 철학을 지속적으로 얘기한 분이 있습니다. 덴마크 글쟁이 쇠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입니다. 이분은 기독교 '업계'를 엄청 비판했지요.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의 <단독자> 개념은 매우 혁신적이었으며 지금까지 울림이 있습니다. 집단과 대중과 여럿이 한 묶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지요. 신과 '나'와의 관계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단독자로서의 관계이며 구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개인이고, 여기에 있는 단독자이다.
Christianity is the individual, here the single individual.
니체 할아버지? 이분은 워낙 인기쟁이여서 그만하겠습니다. 조만간 별도로 소개합니다. 그밖에도 유명한 철학자가 있습니다만, 골치아픈 얘기는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무식하니까요.
(그림 감상 좀 해보겠습니다)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하면서, 실내가 아닌 바깥으로 뛰쳐나온 미친 화가들을 소개합니다. 본래 그림이란 이렇게 그려야 하지요. 르네상스 시절부터 수백 년간 이어져온 전통이었습니다. 그림이 멋있잖아요. 색채와 구도도 완벽하고요. 극적인 서사와 교훈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려내지 못한다면 화가가 아니지요. 화실에 쳐박혀서 장인처럼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을 외면하는 묘한 화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전통을 고수해 온 선생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화가들이었지요. 조롱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이 신예술을 창조하고 미술사를 바꿉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Impression, sunrise: 인상, 해돋이>로 일군의 화가들이 “인상파"라는 명칭을 얻습니다. 그때가 1872년이었습니다. 여러 명의 대가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수선화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
에드와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1841~1919)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메리 카사트(Mary Stevenson Cassatt 1844~1926)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 1839~1899)
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 점묘화라는 새로운 표현 기법을 창조했지만 요절한 작가.
당대에는 그다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죽은 다음에 더욱 빛난 화가들도 있습니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빈센트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몇몇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당대에는 조롱을 받았지요. 인상만 있지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고, 전통적인 문법에도 맞지 않은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롱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이러한 새로운 경향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화가들은 남들이 뭐라든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했지요.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 정신이자 운동이었고요.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an 1872~1944)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
그림을 보면서 눈이 호강했어요. 이번에는 문학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흔히 말합니다.그러므로 문학은 대체로 언어를 통해 세계에 깊숙이 들어갑니다. 등장인물 사이에서 맺어지는 관계를 통해 사건과 서사가 만들어지지요. 시간의 흐름을 통해 사건이 진행되고 서사가 파동을 칩니다. 그러면서 작가와 독자가 함께 공감하는 리얼리티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모더니스트 작가들은 새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서사의 진행과 사건의 드라마틱한 전개보다는 작가 내면의 세계를 중심으로 작품을 썼지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등의 작가가 거론됩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겠지요.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는 시간이 안 걸리고, 바로 느낌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문학은 작품을 읽어야 하니까 설명하기가 좀 어렵네요. 버지니아 울프는 읽었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모더니스트였습니다. 세상은 "나"와 "세계"로 구분지을 수 있겠지요. 개인인 나는 "주관"이 되고, "세계"는 "객관"이 됩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주관이 객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모더니스트들은 객관에 대한 이해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게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진부하다는 것입니다. 울프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탐험하지 않았나. 중요한 것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독자와 함께 "객관"을 찾는 문학이 아니라, 자기 "주관적인 세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독자를 부르는 문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객관이 어떻게 구성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중요했습니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모더니즘이지요.
그밖에 음악, 건축, 디자인에 대해서도 더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만, 음악은 제가 잘 몰라서, 건축과 디자인에서 언급되는 모더니즘은 형태와 스타일에 관한 것이어서 위에서 살펴본 개인의 주체성 확립이라는 과정과는 결이 달라서 생략합니다.
모더니즘 하면 당연히 "포스트 모더니즘"도 언급해야겠지요. 포스트 모더니즘도 모더니즘입니다. 모더니즘을 부정하는 게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닙니다. 모더니즘은 전통을 부정하면서 자기 세계를 새롭게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타인이 자기 세계를 이해해주기를 원하며 항상 소통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반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걸 많이 내려놓은 것이지요.
“주체성의 해체”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말하기는 하지만, 실상은 자기 세계를 표현하기는 하되 타자와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욕구를 포기하거나 방치한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최근 코디정이 편집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