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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Feb 09. 2020

자유의지

34호 | 이과도 즐길 수 있는 철학이야기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핵심 열쇳말:

자유의지Free Will에 대하여


Freedom과 Liberty는 모두 '자유'라는 단어입니다. 특별히 차이가 없습니다. Liberty가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에서 좀 차이가 있습니다만, 두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어에서 '인생'과 '생애'가 동일한 뜻의 단어임에도 뉘앙스의 차이가 있고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용법에 좀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적인 자유라거나 표현의 자유 등을 말할 때에는 Freedom을 써도 되고 Liberty를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어떤 개인적인 행동에 관해 <도덕적인 자유>를 말할 때에는 Liberty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의지will'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할 때에는 Liberty가 아니라 항상 Freedom의 'Free'가 붙습니다. 오늘 주제는 <Free will>, 즉, 자유의지입니다. 이거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랍니다.


아마도 인류사의 흐름과 맥락을 단번에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이며 또한 유용한 단어일 거예요. 


1.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자유의지는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구별해서 <생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로 분별하기는 하지만, 학문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지요. 사전을 보면 자유의지에 대해 다양한 정의가 적혀 있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표현되기도 합니다. 종교에서 바라보는, 철학에서 바라보는, 뇌과학에서 이해하는, 심리학에서 이해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지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간단하게 정의해 보겠습니다.


<자유의지란, 선과 악을 스스로 생각해서 올바른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나의 자유로운 의지이다.>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1)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런 개념이 없어서 "올바름"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자유의지와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를 결정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와는 상관없는 말이라는 얘기입니다. 그건 뇌과학자들이 다룰 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 "행동(행위)"와 관련되어야 합니다. 행위 없는 생각만 있는 거라면 특별히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쓸 필요가 없잖아요.

(3) "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지가 "나의 바깥"에 존재한다면 그건 타율적인 것이고, 자유의지와는 상관없겠지요.


그런데 자유의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determinism)이 반대쪽에 있습니다. 세상은 모든 게 정해져 있으므로 인간의 의지 같은 게 개입할 수 없다는 관념이고요. 그렇다면 자유의지의 '자유(Freedom)'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철학자들은 자유의 반대말로 '자연'을 이야기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자연필연성Necessity of Nature>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2. 인간의 역사


지금이야 누구나 당연히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유의지가 어째서 논쟁이 되는 것인지 갸우뚱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역사의 대부분의 시기에서 자유의지는 거의 인정되지 않았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누리는 자유의지는 고작 이삼백 년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고대철학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 학파 할아버지나 에피쿠로스 학파 할아버지들은 인간에게 더 좋은 덕이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의지를 독려하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철학의 주된 역할이었지요. 하지만 그때의 자유의지는 대체로 군주나 군자, 선택받은 자를 지혜와 용기와 절제와 미덕과 정의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예와 문맹자와 지혜에 귀의하지 못할 사람들은 제외되었겠지요. 말하자면 소수의 자유의지였습니다.


그 소수가 권력자라면 더욱 좋았겠지요. 그래서 옛날의 자유의지는 사실상 크든 작든 권력자의 권력의지였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관념은 인정되었지요. 당시 스토아학파를 위시한 여러 철학가들은 이 세계는 자연법칙으로 이루어져 있고, 자유도 그런 자연법칙의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계사를 지배한 강력한 종교가 나타났지요. 기독교의 등장입니다. 이것이 인류사를 의외의 방향으로 바꿔버립니다.



신성하고 완벽한 결정론의 등장과 중세

초기 기독교는 다양했습니다. 내부 논쟁과 경쟁과 견제가 있기는 했지만 초기 수백 년 동안 유럽과 근동지역에 퍼진 기독교 사상은 여러 가지 색채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강력한 권력과 랑데뷰를 했지요. 기독교가 권력을 얻은 것입니다. 권력을 얻자마자 기독교가 달라졌습니다. 곧바로 이단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계율보다는, <생각이 다른 자들을 정죄하라>라는 규범에 집착하게 됐지요. 여기서 정죄란, 추방이요 금지요 분서갱유였지요. 그때 정죄된 것 중의 하나가 자유의지였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신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잖아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창조주께서 피조물이 당신의 명령을 어길 것이라는 점을 몰랐을까요? 모든 것을 다 이뤄낼 수 있는 조물주라면 전적으로 선한 인간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는 이런 의문은 지금도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지금의 영국 지역 출신인 존경받는 기독교 수도사 펠라기우스(Pelagius 354~418)는 하느님은 자유의지를 그 피조물에게 선물로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류 조상이 저지른 원죄” 같은 것은 없고,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자유의지를 통해 죄를 범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지요. 인간은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셀프 구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잘 이용해서 악보다는 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쳤지요.


그러나 이런 펠라기우스의 교리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영어로는 Augustine of Hippo. '성 어거스틴'으로도 불립니다)는 분개했습니다.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교회의 아버지(The Church Fathers: 교부)” 중 한 사람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반대로 생각했으며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였어요. 일단 아우구스티누스도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교부로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절대적으로 선하며 전능한 하느님이 악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는 없겠고, 인간이 저지른 악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악을 행한 인간에게 있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이 악을 행할 수 있으려면,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겠고,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은 창조주의 계율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어기면서 죄를 저질렀으며, 그 때문에 우리 인간은 숙명처럼 죄를 안고 태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자유의지라는 것은 결국 악의 의지라고 아우구스티누스 할아버지는 생각했던 것이지요.


교리논쟁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승리했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지요. 기독교의 정통교리는 다음과 같이 확립되었습니다.


자유의지 = 악행을 낳는 의지 = 악한 의지


그런데 인간이 갖고 있는 능력 중 무엇이 이런 “악한 의지”를 낳는 것일까요? 이성Reason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인간이 이성을 각성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웠습니다. 뱀 같은 능력인 이성은 위험하고 악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보다 한 등급 낮은 지적인 능력(Understanding: 오성 혹은 지성)이면 충분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말고 정해진 규범이나 잘 이해해서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성과 자유의지를 인정하되, 그걸 악으로 정죄해 버리니, 차라리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론적인 세계관이었지요. 신성하고 완벽한 결정론이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기독교는 참 무서웠어요. 자유의지가 금지된 인간의 역사는 어땠을까요?


중세, 암흑시대였습니다.


그것도 무려 천 년 동안 말이지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했고 문맹일 수밖에요. 지식은 극소수의 성직자나 귀족이 독점했습니다. 철학은 사라졌습니다. 지혜는 교회에서 다 가르쳐주니까요. 과학도 불필요했습니다. 환경을 개선할 필요 없이 그냥 있는 대로 숙명처럼 살면 됐으니까요. 예술은 조악해졌습니다. 표현할 게 없고 잘 표현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대에서는 천재가 필요 없기도 했지요.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시대를 잘못 만나서 빛도 못 보고 사라졌을까요? 인간이 자유의지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중세가 잘 보여줬지요. 그래서 중세는, 오히려 더 오래된 고대보다, 인류사에 남길 유산이랄 게 없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근대의 시작

그러다가 연이은 십자군전쟁, 흑사병의 발호,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발명 등이 이어지면서 교회의 무소불위 권력이 천천히 무너져갔습니다. 자유의지를 억압하던 권력이 흔들리자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곳곳에서 발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천년 전에 추방된 "펠라기우스의 역습"이 시작된 겁니다. 수많은 유럽 사람이 새롭게 지식을 접할 수 있었고 종교개혁과 인문주의 르네상스가 이어졌지요. 어머나, 사람들이 글을 배우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15세기만 해도 거의 책을 읽는 사람이 없었으나, 16세기 유럽에서는 무려:


2억 권의 책이 발행되었답니다.


(이에 대해서는 <21호 <인류 최고의 발명: 활자 인쇄술>https://brunch.co.kr/@jwsvddk/67에 수록된 그래프 참고)


아직 “두 개의 탑” 중에서 나머지 하나인 군주의 권력은 막강했지만, 그런 권력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식과 지혜를 구하면서요. 이성에 대한 저주도 풀리자, 천재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근대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를 빼놓을 순 없지요. 인류사에서 너무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프란츠 할스의 초상화(1648)


데카르트 할아버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아주 빛나는 문장을 남겼지요. 라틴어로 “코기토 에르고 섬Cogito Ero Sum”, 한국어로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 이건 정말 엄청난 문장이었어요. 이성의 복원을 선언한 문장이었거든요. 천 년 넘게 침묵한 철학의 복권을 뜻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이성은 불경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 할아버지는 이성은 신성한 것이며, 인간은 이성을 통해 최고선이 무엇이며 확실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있을 뿐더러 창조주의 존재까지 중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됐을까요? 난리난 것이지요.


이성은 자유의지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사면복권돼서 능력을 회복하면 필연적으로 자유의지도 덩달아 소환됩니다. 소수의 전유물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지요. 진리와 정의는 탐구생활이 아니라, 단순한 받아쓰기 생활이었는데, 천년 동안 받아쓰기만 했던 것인데, 사람들이 올바름과 잘못됨, 선과 악을 스스로 생각해서는, 한편으로는 진리를 좇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는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가, 영국에서는 로크, 버클리, 흄 같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나는 생각한다>를 이어갔지요. 더 선동적이며 더욱 급진적으로요.



자유의지의 확립: 계몽주의

17세기, 18세기의 격동하는 정치, 경제, 과학기술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아십니다. 자유의지를 얻은 인간의 활력을 막을 수 있는 게 없어졌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활력이 생겨났고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의 '나'는 여전히 특권층이었으며 강력한 신분제도는 '나'를 소수로 제한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한다"에는 합의에 이르렀으나 "개인"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요. "종놈 주제에 무슨 생각이야!", "노예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 따위의 편견이었을 겁니다. 가난하고 평범한 농민들은 "나리, 제가 무슨 생각이 있겠습니다. 분부 대로 따르겠습니다."로 응했겠지요.


생각하기 시작한 자들은 사회로 눈을 돌리면서 자유를 전파하는 거대한 지적인 운동 혹은 유행이 일어났습니다. 계몽주의(Enlightment)입니다. 이 계몽주의에 관해서는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더군요. 계몽주의란 무지한 민중을 일깨우려는 엘리트주의이며 선민사상으로 말이지요. 어째서 그런 오해가 퍼졌는지 (심지어 꽤 저명한 지식인도 그런 견해를 피력한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잘 알아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계몽주의의 핵심은 복권된 이성의 권능과 회복된 인류의 자유의지를 "개인" 차원으로 퍼뜨리는,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 중의 하나였습니다. 계몽주의가 없다면 지금 인류도 없습니다. 계몽주의 없는 모더니즘은 상상할 수 없지요. 일반적으로 계몽주의의 완성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여겨집니다.


데카르트 이후로 이제 우리 인간의 이성은 좋은 것이며, 우리 인류로 하여금 선한 행동으로 이끄는 인간의 신성한 능력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성의 한계와 역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요. 칸트 할아버지는 이성의 분명한 한계를 주장하면서 우리는 경험과 감각을 통해 지식을 얻게 되는데, 경험과 감각을 초월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이성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알아내는 건 이성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이지요(순수이성비판, 1781). 그러므로 조물주의 존재와 섭리를 이성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바로 이런 간단한 결론을 이끌어낸 칸트야말로 인류사의 축복이었어요. 신학과 종교가 지혜의 학문에서 물러나도록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섭리는 이성의 능력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고 하면서요.


그렇다면 이성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칸트는 답합니다. 선한 의지(Good will)를 낳는 것이 이성의 역할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의무를 마음속에 새겨준다는 것이지요(도덕형이상학의 기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천년을 넘게 전승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생각이며, 사실상 펠라기우스의 복권인 셈이지요. 펠라기우스와 차이가 있다면, 펠라기우스는 비슷한 논리로 '기독교 교리'를 세우려고 했던 반면, 칸트는 그런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그저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게 큰 차이였지요. 어쨌든 자유의지에 대한 칸트의 생각은 이러합니다.


자유의지 = 선한 행동을 낳는 의지 = 선한 의지


그러면서 아주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내 안의 인류(Humanity)와 당신 안의 인류가 다르지 않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인간이 모든 도덕적인 행동의 "목적"이 됩니다. 이때의 인간은 인류로서의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구체적인 인간입니다. 이로써 개인이 인류사에 당당히 등장할 수 있는 철학적인 권능을 얻게 된 것이지요. 처음으로 개인은 인류로서 스스로, "자율적으로" 이성의 명령에 귀의하여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개인이 역사(자기 인생과 인류사)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개인을 억눌렀던 <절대적인 진리>의 권위도 "그거, 실은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 모르잖아요" 논리로 해체했지요. 이런 간단한 논리는 다양성에 대한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칸트 이후로 누구도 과거처럼 철학에서 절대적인 진리를 내세우지 않게 되었거든요. 차라리 개인의 의지를 내세우겠지요. 쇼펜하우어나 니체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칸트가 현대철학의 입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주체가 아닌 대상에 불과했잖아요? 그걸 바꿔버리고 평범한 개인의 인권을 세운 큰 운동이 바로 계몽주의였습니다.



정치적인 자유

그다음 19세기가 이어졌지요. 지적인 흥분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특히 괄목할 만한 것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였습니다. 당연한 수순이었겠지요.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가 확립되었습니다. 개인의 자유의지는 상식처럼 여겨졌으며, 그 결과 자유는 헌법이념으로 격상되었습니다. 누구도 이제 이런 자유의지의 흐름을 억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 이야기는 거의 다 끝나버렸네요.


인간이 자유의지를 회복하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지, 19세기 인류가 증명했지요. 그리고 그 증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가 놀라운 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20세기가 돼서는 여성의 참정권도 인정되었습니다. 물론 인류의 자유의지의 부흥이 항상 올바른 결과만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옛 교회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가 염려했던 것처럼, 자유의지는 종종 악의 의지로 드러나기도 했기 때문이지요. 탐욕과 전쟁과 홀로코스트가 수많은 사람의 자유의지로 자행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인류사 전체를 살펴보면, 그래도 지금 인류 세대가 가장 선량하지 않나요? 인종과 민족과 신분과 국적과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어 연약한 한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 인류가 유일하니까요.



3. 다른 세계에서는....


지금까지 서양의 정신세계사를 "자유의지"로 살펴봤습니다. 그러면 우리 동양은 어떨까요? 이슬람세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자유의지를 회복한 고유한 역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동양의 경우, 서양처럼 인간의 자유의지가 심각하게 억압받지는 않았습니다. 서양은 앞서 말한 것처럼, "두 개의 탑"이 있었지요. 종교와 정치권력입니다. 그중에서 종교가 "자유의지 = 악한 의지"로 규정했기 때문에 천년의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 동양에서는 그런 절대적인 종교가 대체로 없었습니다. 그점은 축복이었지요. 하지만 절대군주와 신분제도를 타개할 정신적인 동력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점은 불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의지까지 급진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지요. 개인의 자유와 인권과 생명존중 사상은 어쩔 수 없이 서양에서 수입해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서양의 정신세계사가 인류의 정신세계사로 대체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우리는 모두 같은 인류이니까요.


이슬람세계는 좀 다릅니다. 아프리카와 중동과 중앙아시아와 인도 근방의 아시아까지 넓게 퍼져있는 이슬람세계는 서양의 기독교와 비슷합니다. 아브라함 종교로 유일신 종교라는 점에서 기독교와 성격이 같습니다. 강력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였고요. IS나 알 카에다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자살테러와 학살을 자행하는 데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그런 세력이 아니더라도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인권을 억압합니다(터키처럼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는 곳에서는 훨씬 낫고요). 기독교 사회처럼 개인의 자유의지를 회복하는 사상이 널리 퍼지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간이 좀 거리더라도요.


한편, 뇌과학이니 진화생물학이니 하는 학문 분야에서는 자유의지라는 관념을 부정하면서 기계적인 결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유의지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현대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은 물질과 정신(혹은 의식)의 작용관계 혹은 선결성에 관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런 연구에 '자유의지'라는 담론이 섞인 것인데, 범주가 많이 다릅니다. 여기서 살펴본 자유의지는 수천 년의 인류역사의 거대한 운동(Movement)에 관한 것이고 종교와 권력과 정치 이슈가 있는 얘기거든요. 과학자들이야 실험을 통해 뭔가를 밝혀내는 과업으로 살아가겠습니다만, 거기서 쉽게 언급하는 "자유의지"는 단순히 실험실의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에서 미시적으로 다뤄질 게 아닙니다. 개인의 자유의지는 나만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인류 문명의 역사 속에서 겨우 탄생한 것이랍니다. 현미경 바깥에서 수억 명의 생명을 지불하며 얻어낸 권리이지요. 과학은 인권을 없애지 못합니다.


당신이 누리는 자유는
수억 명의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생명을 바치면서
겨우 얻어낸 모든 인류의 의지입니다.
오래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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