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디정 Feb 01. 2020

에일과 라거의 차이는?

33호 | 다 같이 모르는 생활이야기

맥주의 세계: 에일과 라거


요즘 편의점에 가면 예전에 없던 수제 맥주(craft beer)를 만나볼 수 있지요. 대동강, 광화문, 경복궁, 제주백록담, 제주위트에일, 성산일출봉 등등등. 수십 개의 브랜드가 새로 탄생했습니다. 대부분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에일맥주"입니다. 맥주시장에서 소기업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런 반란, 환영해요! 지금까지 우리가 마시던 맥주는 대기업에서 만들었고, “라거 맥주"였답니다.


그런데 여러분,
Ale과 Lager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물론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면 다 나와요. 에일(Ale)은 상면발효맥주, 라거(Lager)는 하면발효맥주라고 분류합니다. 조금만 조사해 보면 다 아는 얘기를 하려다 보니, 이것만으로는 좀 김 빠진 얘기가 될 것 같아요.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갈 볼 수는 없을까요? 술자리는 늘 이야기꾼을 부릅니다. 술에 관해 좀 아는 척하실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해 봤습니다.


술의 3요소


술은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몇몇 저급한 술을 제외하고 세 가지의 요소를 갖춰야만 술을 제대로 만들 수 있지요. 먼저 술을 만들 '기본 재료'입니다.


1. "식물성 코어"가 필요합니다. 제가 그냥 지어낸 단어입니다. 일단 '식물성'이 중요합니다. 동물성 재료는 효모가 먹지 않고 곰팡이가 덤벼들기 때문에 부패해 버려서 못씁니다. 말젖이나 소젖 같은 동물성 재료는 효모가 아닌 다른 균(예컨대 유산균)이 먹어서 젖산음료나 젖술이 되지요. 몽골사람처럼 유목민이 먹는 마유주(말젖술)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술'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요. '코어'는 식물의 영양소가 응집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널리 종족을 퍼뜨리는 것이 모든 유기체의 임무잖아요? 그래서 코어는 식물에서도 번식과 관련된 부분에 있지요. 씨앗이 있는 곳이 바로 '코어'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식물에서 '탄수화물 덩어리'이거나 '당 덩어리'가 있는 부분이 식물성 코어가 되겠습니다. 탄수화물 덩어리는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으로 바뀝니다. 결국 '당'이 중요하지요. '당'이 뭐냐고요? 당뇨병의 '당'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설탕'으로 이해해도 되지요. 탄수화물 덩어리로는 주로 곡식이며 보리, 쌀, 밀, 사탕수수 등이 있습니다. 고구마와 감자도 탄수화물 덩어리지요. 재료를 섞어서 사용해도 됩니다. 예를 들어 밀맥주는 보리와 밀을 섞어서 만들지요. 술의 주성분(주요 재료)이 만들어내는 술의 종류는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보리 --> 맥주, 위스키, 보드카
쌀 --> 막걸리, 사케, 소주, 백주, 보드카
밀  --> 맥주, 보드카
사탕수수 --> 럼주
고구마 --> 소주
감자 --> 소주


대표적인 "식물성 코어"는 과일이지요. 포도, 사과, 매실 등의 과일은 당 덩어리입니다. 용설란(아가베)은 과일이 아닙니다만, 잎을 잘라내면 파인애플 같은 코어가 나옵니다. 그게 또 당 덩어리랍니다. 과일은 아니지만 최고의 당 덩어리를 우리는 알고 있지요. 벌꿀입니다. 아주 오래된 술의 재료랍니다.


포도 --> 와인, 브랜디(흔히 '꼬냑'이라고 부릅니다)
용설란 --> 데킬라
벌꿀 --> 봉밀주(mead)
기타 과실 --> 다양한 과실주


2. 두 번째 식물성 코어를 먹어대는 단세포 균이 필요합니다. 그걸 "효모"라고 하지요. 영어로도 자주 호칭합니다. "이스트Yeast"라고요. 빵 만들 때 쓰는 그 재료입니다. 이렇게 생겼어요. 크기가 어느 정도 되냐면요. 대장균 박테리아가 사람 크기라면 효모는 코끼리 정도 되는 크기입니다. 박테리아보다는 더 진화한 진핵세포이고요. 16개의 염색체를 가진 단세포입니다.



효모는 당을 너무 좋아해서 당을 만나면 환장하고 먹어댑니다. 그것을 "발효Fermentation"라고 하지요. 먹었으니까 배설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의 배설물이 나옵니다. 알코올이산화탄소(CO2)입니다. 이때 나오는 효모 배설물 중 알코올에 관심을 두면 '술'이 되는 것이고, 알코올에 관심이 없으면 '빵'이 됩니다.  


지구온난화? 빵과 술을 금지시키세요! (부작용: 금방 폭동이 생기겠지요;;;) 빵을 만들 때 밀가루 반죽 덩어리가 부풀어오르잖아요? 효모가 당을 먹으면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빵이 팽창하는 것이랍니다. 알코올의 끓는점은 78도여서 빵을 굽는 동안에 다 날아가버립니다.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휘발됩니다. 물에도 잘 녹고요. 물에 녹으면 탄산이 됩니다.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으로 빼내면(예컨대 레드와인이나 위스키) 탄산 없는 술이 되고요. 물에 가둬놓고 녹이면 탄산 있는 술이 되지요(예컨대 맥주와 스파클링 와인).


그런데 이 효모의 종류가 1,5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당을 먹어서 에탄올(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역할은 같지만 조금씩 조금씩 달라요. 빵에 쓰이는 효모와 맥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효모의 종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에일을 만들 때 쓰이는 효모와 라거를 만들 때 쓰이는 효모도 다릅니다.


세 번째 "물"이 필요합니다. 술을 씹어먹을 수는 없잖아요? 마셔야지요. 마시려면 물이 필요합니다. 100% 알코올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존재하기도 어렵습니다. 효모가 배설한 알코올을 순도 90% 이상의 술로 증류해서 만들 수 있기는 해요. 대표적으로 보드카 중에 그런 미친 술이 더러 있어요. 하지만 바로 마시지는 않고 칵테일 등으로 알코올을 온순하게 한 다음 마십니다.


술의 3요소라 뭐라고요?
네, 식물성 코어, 효모, 물 입니다.


인류는 참 신기하지요.

어떻게 '효모'를 알아냈을까요? 효모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현미경을 이용해야 겨우 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현미경 발명자 레벤후크(1632~1723)가 맥주효모를 현미경으로 처음 관찰했지요. 그럼 그 이전 인류는 대체 어떻게 효모를 이용해서 술을 만들었을까요? 아마도 맥주보다는 와인이 더 오래됐을 거예요. 곡식을 경작하는 농경사회보다는 과일을 따먹는 채집사회가 먼저였으니까요.


기원전 1792~1750년 고대 바빌로니아를 통치했던 함무라비 대왕의 법전(Hammurabi code)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전 중의 하나입니다. 그중에는 이런 규정이 있답니다. 총 282개 조항에서 술에 관련한 규정이 2개가 있습니다. 108조는 바가지 술값에 대해서, 109조는 술집에서 반란을 꾀하는 자들을 고발하지 않은 술집 주인에 대한 처벌규정입니다.


제108조 술집 여주인이 술값으로 곡물을 받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돈을 요구하였거나, 곡물의 양보다 더 적은 술을 내주었다면, 그 여주인을 기소하여 그녀를 물속에 던져버린다.
108. If a wine seller does not take grain for the price of a drink but takes money by the large weight, or if she makes the measure of drink smaller than the measure of grain, they shall call that wine seller to account and throw her into the water.
제109조 불량배들이 자기 술집에서 모의를 했음에도 여주인이 그들을 잡아서 궁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 여주인을 사형에 처한다.
109.  If bad characters gather in the house of a wine seller and she does not arrest them and bring them to the palace, that wine seller shall be put to death.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술집에 모인다는 점은 비슷하지요? 함부라비 법전에서의 '술'이 맥주인지 와인이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둘 다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니까요. 어쨌든 학자들은 술이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기원전 3150년 전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에서 포도주 단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기원전 10,000년 경인 신석기시대에 이미 발효주가 있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고대 인류가 남긴 술을 담았을 법한 항아리에서 술 성분을 분석할 수 있겠지요.


아마도, 우리 선조 중에서 어떤 신중한 선조 덕분에 술을 알게 되지 않았었을까요? 우리 신중한 선조는 포도를 많이 따서 바로바로 먹지 않고 미래를 위해 어딘가에 잘 저장해 뒀겠지요. 어느 날 가보니 발효가 되었을 테고, 버리자니 다시 포도를 먹으려면 몇 계절을 기다려야 하므로, 가족을 대표해서 먼저 먹어봤을 겁니다. 알코올 덕분에 해롱해롱해져서는 기분이 좋았겠지요. "그래, 이거야. 이거 좋네." 그러면서 포도주를 만들기 시작하지 않았을까요? 또 보리를 재배해서 그 수확물을 어디 동굴이나 창고에 놔뒀을 겁니다. 그런데 강이 범람해서 다 물에 젖었겠지요. 싹이 튼 보리에서 발효가 일어났을 것이고, 또 버리기 아까워서 먹었을 것이고, “그래, 이거야. 이거 좋네.” 그렇게 해서 맥주가 처음 만들어졌겠지요. 수천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인류는 술을 만드는 발효균인 효모를 정확히는 몰랐어도, 그 효모의 존재와 역할을 잘 알았던 겁니다.


홉(Hop): 맥주를 만드는 네 번째 요소


지금도 맥주 마시러 갈 때, "호프집에 가자"라고 말하나 몰라요. 옛날에는 "호프 = 맥주"였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맥주에는 홉(Hop)이라는 꽃을 넣기 때문입니다. 어머나, 맥주는 꽃이 들어 있는 술이었어요! 그걸 일본식으로 "호프"라고 불렀던 거였지요. 맥주의 꽃입니다. 휴물러스 루풀러스(Humulus lupulus)라는 학명의 홉은 이렇게 재배됩니다. 덩굴식물입니다.


맥주를 만드는 데 쓰이는 꽃 부분을 자세히 보면 이렇고요.

 

이 홉은 맥주의 아로마입니다. 쌉싸름한 맛을 더해줍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맥주가 다른 미생물에 의해 상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천연방부제이지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홉만큼 중요한 맥주 재료가 없었을 거예요. 향과 맛과 부패를 다잡아주는 맥주의 꽃이 바로 이 홉입니다. 이걸 많이 넣으면 맥주가 강해집니다.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요. 그 옛날 영국에서 인도까지 그 먼 바닷길에서도 맥주가 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았겠나요? 맞아요. 홉을 많이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맥주가 IPA(India Pale Ale)입니다.


사실 홉을 넣기 시작한 그 시점이 진정한 맥주의 시작으로 봐야겠지요. 고대의 맥주는 상고시대까지 올라갑니다만, 진정한 맥주란 “맥주 = 호프”인 맥주라는 점에서 바로 그렇게 호칭할 수 있게 된 시점이 맥주의 참된 시작입니다. 그 시기와 장소는 중세 유럽입니다. 특히 영국에서 입니다. 대략 1200년 전 정도 될 거예요(출처: 브리태니카). 현대맥주의 고향은 영국입니다. 맥주의 고향은 독일이 아니었어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호프를 넣은 새로운 방식의 맥주가 15세기 무렵 독일 뮌헨에서 처음 나오기는 했는데 그걸 "라거"라고 불렀거든요.


어쨌든 호프(홉)까지 나왔으니, 맥주의 4요소가 정해진 겁니다. 사실 이거 이야기하려고 술 여행을 떠났던 거예요.


보리, 홉, 물, 효모입니다.

몰트란 무엇인가?


맥주를 만들려면, 보리, 홉, 물, 효모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효모는 당을 먹습니다. 보리는 당이 아닙니다. 탄수화물 덩어리이지요. 그러므로 보리를 그냥 사용하면 안 되고 탄수화물을 당으로 만들기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 조치를 거친 보리를 “몰트Malt”라고 부릅니다. 탄수화물이 당으로 바뀐 보리를 뜻합니다. 효모가 아주 좋아하는 상태가 된 보리를 몰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우리 몸속의 여러 효소를 두음자로 외웠습니다. “아녹엿”이라는 두음자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도 기억이 나요. 우리 침 속에 있는 효소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엿당'으로 바꾼다는 걸 그렇게 외웠어요. 그 아녹엿 과정을 거친 보리가 바로 몰트라는 얘기입니다. 맥주와 위스키의 재료를 말할 때 우리는 보리가 아닌 몰트라는 표현을 씁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효모의 관점이거든요. 효모는 보리를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리를 당으로 만든 몰트를 먹지요. 다른 말로 “맥아” 혹은 “엿기름”이라고 칭합니다. '기름'이라고 하니까 액체 같잖아요?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헷갈리는 게 싫어서 그냥 "몰트"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싶어요.


몰트를 만드는 과정을 잠깐 설명합니다. (1) 물에 담그기(Steeping). 통에 보리를 넣습니다. 그리고 물을 넣는 거지요. 8시간 정도 놔둡니다. 물속에 보리가 푸욱 오랫동안 목욕하게 되면 잠자고 있던 보리 안의 핵(kernel)이 눈을 뜹니다. (2) 보리 핵 안에서 하얀색으로 싹이 나오기 시작해요.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흰수염 같은 싹이 많이 나왔다면 보리를 꺼내서 구이판에 옮겨 놓고 시원한 곳에서 건조합니다. 분무기로 가끔 물도 뿌려주고요. 손으로 뒤집기도 하고요. 이 과정을 발아(Germinating)이라고 합니다.


싹이 튼 보리


(3) 그다음 오븐을 이용해서 건조합니다. 뜨겁게 태우는 게 아니라, 50-60도 정도로 건조합니다. 햇볕이 좋다면 햇볕에서 건조해도 됩니다. 그러면 흰수염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가 되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몰트"라고 합니다. 보리 안에 있던 효소가 녹말을 모두 당으로 바꿔버렸지요. 이제 이걸 이용해서 맥주를 만들면 되겠습니다. 위스키도 만들 수 있고요. 매번 이렇게 보리로 몰트를 만들어야 할까요? 그냥 좋은 몰트 분말을 시장에서 사도 됩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


이제 맥주를 만들어야겠어요. 양조(Brew)라고 합니다. 저는 술꾼이지 양조가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정확히, 풍부하게,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한다면야 그림도 필요 없을 정도로 쉽더군요.


(1) 따땃한 물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몰트 가루와 맥주의 아로마인 홉을 물속에 넣습니다. 몰트와 아로마를 같이 넣는 겁니다.

(2) 끓입니다(Mashing). 이렇게 끓이면 해로운 박테리아나 미생물은 다 죽겠지요? 그래서 옛날에는 그냥 물을 마시는 것보다 맥주를 마시는 게 안전했던 것이지요. 또한 이렇게 끓이면 맥아즙(wort)가 되지요.

(3) 맥아즙을 후다닥 냉각시킨 다음에 (뜨거우면 발효균도 죽어요), 발효조로 맥아즙을 옮깁니다.

(4) 효모(이스트)를 발효조 안으로 휘리리릭 뿌립니다. 이게 그 유명한 발효(Fermentation) 과정입니다. 지금 막 알코올과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5) 그다음? 기다립니다. 그러면 발효조 안에서 원하는 발효가 행해지겠지요. 몇 날 며칠을 기다릴까요?

(6) 발효과정이 끝나면 거품배려 공정입니다. 오늘날 거품이 없으면 맥주가 아니잖아요? 거품을 위해서 발효조 안에 당액을 넣습니다(Carbonation).

(7) 통이나 병에 맥주를 담습니다.


위에서,

(5)번을 한 다음에, 증류(물과 알코올을 분리)하는 공정을 더해서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위스키가 됩니다. 맥주와 위스키는 이처럼 뿌리가 같습니다.



에일과 라거의 차이는 무엇인가?


저는 에일을 몰랐습니다. 10년 전인가 우연히 페일에일을 마셨는데, 목에 걸리지 않게 쓰르륵 넘어가는 이 씁쓸한 맛, "아, 이거야."라고 감탄했지요. 그러다가 IPA를 마셨더니, "이야, 맥주에 이런 펀치가 있다니."라면서 금세 에일 애호가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대부분의 여느 한국인처럼, 라거(Lager)를 마셔왔던 거였는데, 일단 제가 '찬 것'과 '탄산'에 매우 약하거든요. 그래서 맥주를 마실 때마다 목에 걸리고 힘들었습니다. 에일은 제게 해방감을 줬습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호프 맥주는 에일(Ale)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에서도 라거가 나타났지요. 에일과 라거는 맥주의 4요소(보리몰트, 홉, 물, 효모)는 같습니다. 기본 공정도 당연 비슷하고요. 무엇이 다르냐. 발효가 다릅니다. 즉, 위에서 (4)번과 (5)번 공정이 다릅니다. 발효가 다른 까닭은? 발효균인 효모의 종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에일의 효모는 빵효모이기도 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라는 학명이 붙은 효모입니다. 이 오래된 효모는 상온에서 당을 먹습니다. 위에서 사진을 보여줬는데요. 전자현미경 사진을 다시 한번 보지요.


S. cerevisiae


라거의 효모는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Saccharomyces pastorianus)라는 학명의 효모입니다. 이 효모는 잡종 효모인데요. 아빠는 앞에서 말한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이고, 엄마는 사카로미세스 유바야누스(S. eubayanus)라고 명명된 효모입니다. 그러니까 에일 효모보다 라거 효모가 늦게 나왔던 것이지요. 이 효모는 10도 이하에서 당을 먹습니다. 발효 온도가 낮다는 것이지요.


S. pastorianus

사실 전자현미경 사진으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효모가 뭐 효모이지요. 하지만 발효, 즉 효모가 당을 먹는 온도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에일 효모는 상온에서 라거 효모는 비교적 저온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특히 에일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발효맥주의 위쪽에 둥둥 떠답니다. 반면 라거 효모는 발효하면서 서로 덩어리가 져서는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에일은 "상면발효맥주"라고 부르고, 라거는 "하면발효맥주"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상면발효니 하면발효니 하는 구별은 결국 발효균이 달라서 발생하는 결과 구별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면이냐 하면이냐가 아니라 '온도'입니다. 온도가 달라지면 발효가 잘 안되고, 그래서 맛있는 맥주를 만들지 못하게 되지요.



효모의 차이는 알겠는데, 효모는 눈에 안 보이는 거잖아요? 팍 느낄 수 있는 그런 차이는 없을까요?


있지요.


양조가의 관점(경제성과 차별성)에서도 차이가 있고, 소비자의 관점(맛과 가격)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양조가의 관점을 추론해 봅니다. 제가 맥주를 만드는 장인도 아니고 맥주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잘은 모릅니다. 그러나 조사하고 분석한 내용에 기초해서 추론해 볼 수는 있지요.


에일에 비해 라거는 저온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발효시간이 라거가 에일보다 3배 정도입니다. 에일이 2주 정도라면 라거는 6주 정도 숙성해야 합니다. 6주 동안 제품을 만들지 못하고 그러니까 그동안 라거는:


돈이 회전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도 문제없을 정도의 능력이 필요하겠죠?)


게다가 저온에서 발효한 라거는 시원하게 잘 보관해야 합니다. 커다란 저장탱크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량생산, 대량보관, 대량유통으로 라거가 소비되지요. 무슨 말씀? 대기업에 적합한 방식이라는 얘기입니다. 소규모 자본으로 양조하는 소기업의 경우에는 라거가 별로 매력이 없지요. 맛도 맛이지만 돈 때문에라도요. 그게 바로 최근 나오는 크래프트 맥주가 모두 라거가 아닌 에일인 까닭입니다.


게다가 수제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맛을 구현해서 그 맛으로 경쟁하고 싶잖아요? 라거는 그게 잘 안됩니다. 라거 효모가 저온에서 발효하기 때문에 맛을 다채롭게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상온에서 발효하는 에일은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자기 색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양조업자에게는 큰 매력이겠지요. (그래 봤자, 크래프트 비어일 뿐이지요. 무릇 세계 시장은 소기업이 주도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재패하는 법이니까요. 세계 맥주는 라거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도 많이 다르지요. 라거는 시원하게 마셔야 맛이잖아요? 라거가 시원하지 않으면 우리는 화를 냅니다. 라거는 저온이 생명이니까요. 에일은 꼭 시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에일이야말로 맥주의 전통인데, 옛날에는 냉장고가 없었잖아요? 라거는 탄산이 많이 들어갑니다. 가볍고 청량감도 있고 쓴맛이 없습니다. 반면 에일은 무겁고 진하며 씁니다. 그것이 에일의 매력이지요. 라거는 기본적으로 대량생산이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합니다. 에일은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좀 더 붙습니다.


라거: 카스, 하이트, 맥스, 카프리, 테라, 클라우드, 아사히/기린/삿포로/산토리 등의 대부분의 일본 맥주, 버드와이저, 밀러, 칭따오, 타이거, 산미겔, 하이네켄, 칼스버그, 필스너.
에일: 기네스, 그밖에 '에일'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맥주.


라거에 비하면 에일이 별로 없는 것 같지요? 라거는 20세기 대공장 시스템과 냉장고 보급의 혜택을 아주 많이 봤어요. 하지만 아래 그림을 보면 에일이 더 많고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생산량은 라거가 많겠지만, 에일은 세계 곳곳의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기 때문에 다양성은 에일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흑맥주가 왜 검지요? 보리 몰트를 오븐에서 태웠으니까요. 많이 태울수록 더 검습니다. 이건 효모의 종류와는 상관이 없어요. 그러므로 라거 흑맥주도 있고, 에일 흑맥주도 있게 마련입니다. 흑맥주 스타우트는 로스팅한 몰트를 사용한 에일맥주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에일은 진하고 라거는 연합니다. 색깔로 맥주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지요.



물론 맥주가 라거와 에일이 전부는 아닙니다.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를 합쳐서 퓨전하여 만든 하이브리드 맥주도 있고 자연발효를 하는 한가한 맥주도 있습니다. 벨기에 양조장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독특한 맥주를 만드는 모양이더군요. 제가 벨기에 가보지 않아서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아래 그림처럼 다섯 가지 맥주가 있다고는 해도, 사실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맥주의 대부분은 라거 아니면 에일입니다.


라거와 에일 중에 어떤 맥주를 선택할까?


저처럼 탄산이 목에 걸리고 시원한 것에 약한 사람은 에일을 드세요. 에일의 진하고 깊은 풍미가 여러분에게 감탄사를 불러내겠지요. 하지만 맥주는 그저 시원하고 깨끗한 게 제맛이지라고 생각하시면서 쓴맛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역시 라거를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주 옛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누구든지 맥주를 마시면 잠을 빨리 자지요. 누구든지 잠을 길게 자면 죄를 짓지 않아요.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십시다! (Whoever drinks beer, he is quick to sleep; whoever sleeps long, does not sin; whoever does not sin, enters Heaven! Thus, let us drink beer!)"


기독교 사제이신 루터 할아버지는 독일 사람이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맥주는 "라거"입니다. 루터는 독일 아인벡(Einbeck) 지방의 라거맥주(Bockbier) 애호가였다는군요.


아무래도 공평하게 에일을 선호한 위인도 나와야겠군요.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에일 맥주에 대해 다양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그의 희극 헨리5세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내가 지금 런던 에일하우스에서 있었다면! 마음 편히 에일을 마실 수만 있다면 내 명예 전부를 줘버리리겠는데.(Would I were in an alehouse in London! I would give all my fame for a pot of ale and safety.)"


이처럼 셰익스피어는 '비어(beer)'가 아니라 '에일(ale)'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인이고, 영국에서는 에일이 맥주였으니까요.


여러분도 마음껏 드세요! 천국 갑니다.



최근 코디정이 편집한 책


http://aladin.kr/p/8fLR7

http://aladin.kr/p/6fCKr

        

매거진의 이전글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