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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Feb 26. 2020

중학생의 글쓰기에 대해서

중학생이 되는 딸에게

딸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아빠 빨간펜으로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장문의 편지를 썼는데 역시나,

정답 없는 얘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빠가 딸에게:


6년 전 일이야. 음악 선생님께서는 유치원 아이처럼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며 발성법부터 시작해서 완전히 새롭게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잖니? 초등학생은 유치원 아이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아. 그때 뭔가를 버렸어. 사람은 나이를 먹을 때마다 뭔가를 버려. 그리고 그 나이에 맞는 새로운 것이 생기지. 마치 어린 이빨이 빠지고 더 튼튼하고 건강한 이가 자라는 것처럼. 어제 네가 쓴 글을 읽고 아빠가 든 첫 인상은, 이제 네게도 ‘어린이 말투’를 버려야하는 시기가 왔다는 느낌이었어. 중학생은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야.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지만, 어린이보다는 어른에 조금 더 가까워진 나이야.


아빠는 <중학생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어린이는 표현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했지. 표현은 서툴어도 그 표현에 "예쁜 마음"이 담겨 있으면 어른들은 쉽게 칭찬을 해. 표현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그 표현에 담긴 마음을 칭찬하는 거야.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어른들의 태도가 달라져. 학교 선생님들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럴 거야. 마음보다는 표현이지. 왜냐하면  어른들의 언어 세계 자체가 마음보다는 '표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야. 좀 삭막하지만 실제로 그래. 마음보다는 표현이야. 그리고 중학생은 그런 어른 세계로 본격적으로 가기 위한 중간과정이거든.


- 그럼, 이제 마음은 중요하지 않고 표현만 중요한 거야?


물론 그렇지는 않지. 마음도 당연히 중요해. 하지만 중학생에게 예쁘기만 한 마음은, 마치 유치원생의 귀엽기만 한 목소리와 같은 것이야. 이제 그건 버려도 돼. 아예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중학생의 글쓰기>에서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버려도 된다는 이야기야.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요구하지 않았던, 어떤 짐을 들고 있어. 그건 <타인에 대한 생각>이야. 어린이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해. 그래서 서툴더라도 그 표현에 마음이 담겨 있으면 되는 거였어. 그러나 어른들은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해야 하거든. 중학생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타인에 대한 생각, 타인도 이런 글에 공감할까 라는 고민. 이런 것들이 중학생의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해. 완벽하지 않아도 좋지만(완벽하면 작가겠지. 그런 사람 별로 없어), 시도는 해야 된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어떤 글을 쓸 때, 이 글을 읽는 타인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읽게 될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야. 그걸 "독자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처음에는 낯설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져. 그 타인이 네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네 이야기를 듯고 있고, 너도 그 사람을 위해 이야기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면 대충 성공할 거야. 이제 중학생은 독자를 위해 글을 써야 해.


- 그럼, 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는 거야?


덜 중요해졌지. 어린이는 천동설을 믿어도 돼. 우주의 중심이야. 어른들은 다 박수를 치면서 예쁜 너를 바라봤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해도 됐어. 하지만 중학생은 지동설을 믿어야 해. 더 이상 우주의 중심도 아니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왕따'를 당해. 인싸는커녕 앗싸가 돼. 이건 바로 알겠지?


결국 글쓰기라는 것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자기만 읽는 일기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 생각뿐만 아니라 독자도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야.


그런데 어떻게 글을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일까? 이걸 얘기해야만 되는 거였지? 아빠가 아주 오래전에 네게 했던 말이 있어.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너도 분명히 기억할 거야. 다소 흑역사이지만, 춤을 추듯이 포즈를 해가면서 설명했잖아? <비유>, <묘사>, <진술>. 이 세 가지가 글쓰기의 전부야. 이 세 가지를 익히면 나중에 <설명>도 잘할 수 있어.


타인(독자)가 재미있는 표현이네 라고 끄덕일 수 있는 <비유>로 글을 쓰면 성공할 거야. 아주 적은 양의 글로도 매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게 비유의 매력이지. 훈련이 많이 필요해. 그래도 계속 비유를 하기 위해 노력해 봐. 비유에 실패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글이 아주 유치해져. 비난을 받을 거야. 그래도 도전해 봐.


글이라는 것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타인의 머릿속으로 옮기는 작업이야. 머릿속으로 가장 쉽게 옮길 수 있는 것은 그림이지. 사진이야. 무언가를 그림 그리듯이 사진을 찍듯이 구체적으로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아주 효과적이야. 그걸 <묘사>라고 해. 구체적이어야 해. 시각적으로 뭔가를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이라면 더욱 좋겠지. 끈기가 필요해. 그리고 묘사를 할 때에는 가급적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줄여야 해. 자기 생각은 묘사에 방해가 되거든.


거짓이 많은 글보다는 솔직한 글이 다른 사람에게 잘 전해지겠지? 자기가 체험하고 느꼈던 것을 '내 관점'으로 솔직하게 쓰는 거야. 그것을 <진술>이라고 해. 자기 생각이 제대로 들어가야 해. 자기 생각이 없으면 그건 진술이 아니라 <설명>이라고 하지.


- 그럼,  <설명>은 안 좋은 거야?


설명도 좋은 글쓰기 방법이지. 하지만 너와는 상관없는 글쓰기 방법이야. 그건 지식을 전하는 대표적인 글쓰기 방법인데, 아빠 생각으로는 중학생의 글쓰기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중학생은 지식을 전하는 활동보다는 지식을 익히는 활동이 중요해. 그런 점에서 설명은 쓰는 게 아니라 읽는 거야. 타인의 설명을 읽어서 지식을 취하는 것이지. 인터넷에는 엄청나게 많은 설명이 있어. 그걸 즐겁게 읽으렴. 나중에 고등학생이 되면 <설명의 글쓰기>를 할 것인데, 앞에서 이야기한 <비유>, <묘사>, <진술> 세 가지 방법의 글쓰기가 훈련이 되면 설명은 어렵지 않아.


어쨌든 중학생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생각>이야. 네 글을 읽는 타인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렴. 예쁘기만 한 마음은 버려도 돼. 그것을 표현하면 타인이 유치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표현은 하지 마.


어떤 책을 독후감을 쓸 때에는, 그 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어. 그런 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까. 뻔한 설명은 재미가 없어. 독자도 재미를 못 느낄 거야. 그 책에 관한 너만의 체험을 쓰면 되는 것이야. 책에 대한 설명을 굳이 많이 할 필요는 없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독후감을 쓴다고 해서, <오만과 편견>의 등장인물을 다 소개할 필요는 없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만 나와도 충분해. 네 독후감을 읽는 '타인'은 책의 내용이 궁금한 게 아니거든. 그건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잖니. <오만과 편견>을 읽은, 중학교 1학년 학생의 관점과 흥미로운 머릿속 체험이 더 궁금하겠지. 타인이 궁금해하는 것을 쓰면 좋겠네.


<중학생의 글쓰기>에 대해 아빠가 너무 길게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실은 아빠도 글쓰기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을 해. 앞으로 함께 계속 고민해 보자.  -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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