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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Mar 08. 2020

타이포그래피

38호 | 다 같이 모르는 생활이야기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타이포그래피는 ‘활자(Typeface)’의 시각적인 멋을 뜻합니다. 활자는 어디에 쓰이나요? ‘텍스트’에 쓰이지요. 책이나 문서가 대표적인 텍스트입니다. 말하자면 텍스트를 시각적으로 멋지게 만드는 것을 타이포그래피라고 이해하면 대략 맞습니다. 문서를 멋지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글자체. 좋은 글자체를 골라서 ‘잘 사용’해야겠지요.
둘째, 글자줄. ‘행’이라고도 하지요. 글자가 이어지면 한 줄의 행이 생깁니다. 그다음 행도 이어지면서 마치 벽을 쌓듯 문장이 만들어지고 글이 생깁니다. 이때 행과 행 사이의 관계를 멋지게 만들어야지요.
셋째, 타인의시선. 타이포그래피는 '자뻑'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텍스트를 '호소'하는 일이거든요. 그러려면 텍스트를 읽는 타인의 시선을 배려할 수밖에요.
넷째, 여백. 뷰티풀 마진(Beautiful Margin)이 없는 텍스트는 금방 조잡해집니다. 컨텐츠만을 전하려는 화자의 강박관념은 독자에게 피곤한 일입니다.  


이 네 가지 요소만으로 문서를 멋지게 만들 수 있지요. 몇 가지 장식적인 요소를 덧붙이는 일도 있습니다만, 사실 이 네 가지가 타이포그래피의 전부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프로페셔널한 시각디자이너 혹은 타이포그래퍼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저 또한 전문가는 못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무시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전문가의 빼어난 작업을 보고 박수를 친다거나 시원찮은 결과에 한숨을 쉴 정도는 됩니다. 참고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타이포그래피의 네 가지 요소를 다루기 전에, 영어 알파벳과 한글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두고 싶네요. 문자의 원리와 형태도 다르지만, 타이포그래피 역사 자체가 다릅니다. 타이포그래피를 강조하고 설명하면서 영어 알파벳 일색으로 얘기하는 전문가가 많더군요. 우리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쓸모없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쓰는 텍스트는 영어 텍스트가 아니라 한글 문서이니까요.


한글에 대한 타이포그래피의 역사는 짧아요. 백 년도 넘지 않습니다. 세종대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타이포그래피는 ‘텍스트’를 시각적으로 멋지게 만드는 일인데, 텍스트 자체가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르잖아요. 일단 글자 자체가 ‘서로 사맛디 아니”했고, 한자가 더 중요했으며, 게다가 세로쓰기였잖아요.


영어 타이포그래피는 구텐베르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관해서는 다시 멋진 일주일 21호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얻기 어려운 희귀자료가 있으므로 활자와 인쇄산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때가 1439년 무렵입니다. 클로드 가라몽(Claude Garamond 1510~1561) 이라는 이름의 활자 디자이너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이 할아버지가 멋진 서체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후 여러 할아버지들이 수백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그 서체를 더욱 개선한 끝에 지금의 가라몬드 서체로 자리잡았습니다. 다양한 가라몬드 서체가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 골라봤습니다. 클래식하고 품위있으며 아름답지요. 다만 이 서체는 좀 작습니다. 10포인트로 사용한다면 글자가 너무 작은 거 아니야? 라는 기분이 들 겁니다. 글자 크기를 좀 키우면 됩니다.




영어 타이포그래피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영어가 아니라 한글입니다. 저도 물론 영어서체에 관해 여러 책을 읽고 공부도 해 봤어요. 게다가 서양 모더니즘을 이해하는 데 서체는 재미있는 주제이거든요. 하지만  그래 봤자, 아는 척에 불과하지요. 한국인이고 한글로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글 이야기를 하려고요.

 


1. 글자체를 잘 사용하기


명조체와 고딕체

명조체와 바탕체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같은 말이랍니다. 그러면 고딕체와 돋움체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이것도 같은 말입니다. 1992년 문화체육부에서 명조체를 바탕체로, 고딕체를 돋움체로 바꿔 사용하라고 공표했답니다. 명조체와 고딕체가 일본 용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런 발상에 저는 동조하지 않아요. 일본사람들이 만든 용어라고 해서 다 저주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학문용어와 근대문명의 번역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그게 딱히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언어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인위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말을 바꾸려고 해도 잘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명조체(바탕체)는 무엇인가? '삐침'이 있는 서체를 뜻합니다. 영어로는 "세리프(Serif)" 서체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가라몬드 서체가 세리프 서체이지요. 그러면 고딕체(돋움체)는? 네. 삐침이 없는 서체입니다. 영어 서체로는 "산세리프(San-serif)" 서체입니다. 느낌은 영어서체와 비슷합니다. 삐침이 있으면 클래식한 느낌을 주지요. 삐침이 없으면 모던한 느낌을 주고요.


무료 서체

다운로드 받아서 쓰는 서체를 '유료 서체'라고 하고, 다운로드 받을 필요 없이 워드 프로그램(MS오피스, 아래아한글 등)에 디폴트로 설치되어 있는 서체를 '무료 서체'라고 구별해 볼게요. 물론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서 쓸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도 다운로드받았으니까 그냥 유료 서체라고 구분해 보겠습니다. 편의상 구별입니다. 이런 구별이 왜 중요하냐면 '글자체를 잘 사용'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무료 서체로 대표적인 것으로 바탕체맑은고딕 서체가 있습니다. 어느 워드 프로그램에서나 디톨트로 설치되어 있거든요. 요즘은 나눔명조, 나눔고딕도 많이 보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운로드를 해야 한다면 그것도 유료 서체로 분류되겠습니다.


바탕체와 맑은고딕만 이야기해보지요. 솔직히 말해서 '무료'가 '유료'보다 좋을 리는 없잖습니까? 문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가 쓴 문서가 타인에게서 좋은 인상을 얻기를 기대하잖아요. 서체가 영향을 “크게” 미칩니다. 서체를 잘 사용하면 신뢰도가 향상돼서 가독성도 좋아지고 어쩐지 일이 잘 진행된다는 인상을 줍니다.


다음은 무료 서체 중 바탕체를 쓰는 용법을 예시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본래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는 바탕체는 자간이 늘어져 있습니다. 적당히 쓸 수 있기는 하지만 멋지지 않은 서체이지요. 글의 분량이 많아질수록 서체의 못난 특징이 더 잘 드러납니다. 어쩐지 피곤하고 글을 읽기 싫어집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무료 서체입니다. 하지만 자간을 줄여주면 신기하게도 신뢰도가 향상되지요. 유료 서체와 비슷해져요. 바탕체는 자간을 줄여서 씁니다. 맑은고딕도 약간은 글자 간격을 좁혀 주는 것이 좋습니다. 해상도 때문에 글이 좀 깨졌습니다만, 차이를 한번 감상해 보시지요. (MS오피스 바탕체 기준입니다)



유료 서체는 자간을 줄이지 말고 그대로 써도 됩니다. 요즘은 숙련된 개발자들이 수십 년 전과 달리 자간을 더욱 고려해서 서체를 개발하니까요. 저는 그래도 조금은 줄입니다. 주의하세요. 영어 서체는 절대 자간을 줄이면 안 됩니다. 그쪽은 오래된 서체 개발 역사를 통해 수백 년 동안 글자 사이사이를 연구했기 때문에 최적의 자간이 서체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무료 서체를 그대로 사용하면 "무지 촌스러워"집니다. 그냥 사용하지 말고, 조금만 손을 보세요.


유료서체

제가 아는 서체 개발회사는 윤디자인, 산돌커뮤니케이션, 직지소프트 등이 있습니다. 서체 가격이 너무 비싸서 저도 못 씁니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유료로 사서 쓰고 싶을 정도이지요. 휼륭한 서체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윤명조를 좋아합니다. 무료 서체에 비해 훨씬 예쁜 서체입니다. 예전에는 영어와 숫자가 취약했는데 그사이 많이 개선한 것 같아요. 예쁘기도 하고 신뢰성도 높은 서체이지만, 어쩐지 날렵하지는 않습니다. 좀 가로가 넓다고나 할까요. 책으로 말하자면, 자기계발서에 아주 적합한 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설이나 시 등의 본문에 윤명조를 사용하면 좀 애매합니다. 이상하게 글의 묵직한 맛이 살지 않습니다. 직지소프트의 서체는 윤명조와 많이 다릅니다.더 클래식하고 조금 더 섬세합니다. 문학작품에 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서체입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 등의 책에서는 이상하게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유료서체(무료로 다운로드받은 서체를 포함해서)를 할 때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문서를 hwp 포맷 혹은 docx 포맷이나 ppt 포맷으로 타인한테 보내면 '아주 망했어요' 가능성이 있어요. 상댕방이 그 서체를 갖고 있지 않으면 서체가 깨집니다. 가급적 PDF 파일로 변환해서 문서를 보냅니다.


폰트 크기

글씨 폰트는 가급적 크기가 적을수록 신뢰도가 좋습니다. 공무원들이 쓰거나 공무원들과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공무원들은 12pt, 14pt, 16pt 등의 비교적 큰 크기로 문서를 씁니다. 결제를 하는 위에 있는 분들이 노안이 많으니까 그걸 배려한 것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9~10.5pt 정도로 문서를 씁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에 작은 글씨 크기에 익숙해졌잖아요? 스마트폰이 6~7pt정도 될 걸요?


제목 글자체와 본문 글자체

굵고 힘있고 요상하게 생긴 글자체는 본문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냥 명조(바탕) 아니면 고딕(돋움)을 사용하세요. 서체는 사용개수가 적을수록 좋습니다. 서로 다른 서체를 여러 개 혼용해서 사용하면 글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과 다른 제목 서체를 사용한다면, 제목에 맞는 굵고 힘있는 서체를 고르면 됩니다. 그래도 요란해서는 안 됩니다. 묘하게 생긴 수많은 서체들은 제목에도 본문에도 사용하지 않는, 대체로 광고 팸플릿이나 인스타 이미지나 카드 뉴스에나 사용할 수 있는 글자들입니다. 보통의 문서에서는 조심하셔야죠. 문서가 유치해집니다. 여러분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아니니까요.

 


2. 행 사이의 간격에 대해서


<본문>의 행과 행 사이의 간격은 받침이 없는 글자가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간격이라면 좋습니다. 영어 문장의 경우에는 모음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간격이라면 적당하고요. 이걸 원칙으로 행 간격을 조정하면 대략 맞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텍스트 본문에 관합니다. 제목인 경우에는 행간이 좀 좁은 것이 좋습니다. 아래 예시를 비교해 보면 느낌이 올 것 같습니다.




3.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읽을 거리가 없었습니다. 하루를 사는 데 그다지 바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요즘 시대는 읽을 거리가 매우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이 있지요. 그리고 바쁩니다. 이 시대를 일컬어 정보의 시대라고도 말하지 않습니가? 정보가 많다는 것은 읽을 게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옛날과 달리 텍스트를 읽는 타인의 시선이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하고 인내심도 부족하며 잘 몰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글을 잘 배치(layout)해야 합니다. 어떻게 잘 배치해야 하는데? 라고 물으시겠지요. '단순하게', '질서있게', '보기 좋게' 하면 됩니다. 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이나 팸플릿의 레이아웃은 전문 편집디자이너에게 의뢰하면 됩니다. 비즈니스 업무를 보는 경우라면 자기 일을 남한테 맡길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지금껏 적지 않은 사람의 문서 작업을 지켜본 결과, 대개 레이아웃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내용만 좋으면 된다 식이었습니다. 문제의식이 없으니까 레이아웃이 엉망이 되더군요. 내용이 좋으니까 더욱 그 내용을 빛내줄 형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래 문서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문서입니다. 간단한 질서도 있고요. 그러나 너무 빽빽하지요. 이 텍스트를 읽는 독자의 시선은 왼쪽과 오른쪽을 부지런히 왔다갔다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행을 놓치겠지요. 행을 놓치면서 내용의 주요 포인트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읽기 싫어지지요. 그러면 실패한 레이아웃입니다.



위 문서와 똑같은 서체를 사용해서 레이아웃을 변경한 것이 아래의 예시입니다. 글의 폭을 확 줄였습니다. 그리고 행과 행 사이의 간격을 받침없는 글자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간격을 유지했지요. 한 행의 길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눈동자가 좌우로 왔다갔다 할 수고가 사라졌습니다. 제목이 끝나는 위치에서 밑에 있는 행이 정렬되어 있으므로 단순하고 질서가 있습니다. 물론 글의 분량(페이지 수)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신묘하게도 독자는 더 신속하게 텍스트를 읽을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배려 덕분입니다.


 


4. 여백에 대해서


위 레이아웃 예시를 통해 제가 여백을 과감하게 사용했음을 알 수 있겠지요. 맞아요. 여백은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백은 낭비가 아닙니다. 텍스트를 위한 투자이며, 독자의 쉼터입니다. 게다가 여백은 텍스트를 더 세련되게 만들어줍니다. 여백이 없으면, 글을 읽는 속도가 줄어들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행을 놓치기 십상이며, 독자의 성취감도 감소합니다. 결국 읽기 싫어지는 것이지요.


비즈니스 문서도 여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서 중의 문서, 텍스트 중의 텍스트는 역시 서책이지요. 아래 예시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작품집 <WHY>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내용적으로도 훌륭한 책이지만, 레이아웃도 대단히 혁신적입니다. 흔한 양쪽 맞춤이 아니라 왼쪽 맞춤으로 정렬하고 오른쪽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행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들여쓰기가 없습니다. 첫문장 왼쪽 들여쓰기를 하면 오른쪽의 자유로움이 무질서함으로 인상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각주가 없다면 아래쪽 여백이 정확히 4cm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여백'이 이런 것입니다. 자유로우면서 규범이 있습니다. 책의 평면과 독자의 마음을 동시에 넉넉하게 만들지요. 이 책의 표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실제로는 더 예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편집한 첫 번째 서책이었지요.


이소노미아 출판사의 "인류 천재들의 시리즈"  첫 번째, 버지니아 울프

참고자료

타이포그래피 튜토리얼

영어에 관한 얘기지만, 꽤 유용한 팁을 알려줍니다.


https://youtu.be/QrNi9FmdlxY




#타이포그래피 #가라몬드 #서체 #글자체 #레이아웃 #무료서체 #자간 #행간#명조 #바탕 #고딕 #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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