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슬램덩크, 드래곤볼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을 비롯해
원피스, 코난 등 최근까지도 시리즈가 이어지는 만화들은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위에서 언급한 만화를 보긴 했지만 한창 인기가 많았을 어린 시절에는 사실 손에도 대지 않았다. 저런 만화책을 보는 것이 '나'답지 않다는 묘한 자기 최면에 사로잡혀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소위 모범생 병에 걸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저런 만화를 보는 것은 불량스러운 행동이며 저런 만화를 자주 접하면 접할수록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습 만화'를 읽으면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만화의 형태이긴 하나 초등학생이니 만화를 통해서라도 국내외 역사와 고전을 접하는 노력이 가상해 보였을까. 그렇게 자연스럽게 학습만화를 접하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경우가 많다.
장발장이나 햄릿 같은 고전을 활자로 읽는 것은 나 같은 초보자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렇기에 학습만화를 통해서 대략적인 줄거리와 작품이 주는 상징성, 교훈 등에 대해 쉽게 익힐 수 있고 다른 사람에 소개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수준 정도까진 다다를 수 있기에 좋다. 그리고 홍계월전, 창선감의록, 이춘풍전 등 정통 고전과는 사뭇 장르가 다른 고전에 대해서도 알게 되니 유익한 점이 많았다. 한 마디로 '나 그래도 이 정도 스토리쯤은 아는 사람이야'가 되기가 좀 더 수월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상황에 어울리는 적절한 속담과 사자성어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어 좋았다.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거 정말 망했는데' 보다 '이거 완전 사면초가에 처했네'라고 말하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텔리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또한 언변이 좋아지고 발표력이 향상되는 느낌까지 덤으로 받을 수 있어 발표만이 살 길이었던 초등학생 시절에 나를 선생님께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비기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은 가끔씩 참석하는 세미나에서도 늘 맨 끝자리 뒤편 구석진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습 만화에서 다루는 내용이 재미있다. 각 속담과 사자성어에 어울리고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법한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언제든지 책을 읽고 싶으면 아무 데나 펴서 읽기 시작해도 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굳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처음부터 스토리를 끌고 가는 수고를 원치 않았던 터라 지금도 대하소설, 장편소설을 접하기 힘든 단점이 있긴 하다. 그렇게 고등학생들에게 권장도서에서 제발 좀 읽으라고 빠지지 않는 로마인 이야기, 토지 등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것 또한 사필귀정일지니라.
글쓰기를 꾸준히 시작하면서 책을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비슷한 감정이다. 학생들이 궁금한 내용이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대답해 줄 수 있는 밑바탕의 거의 팔 할은 다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학습만화에서 알게 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내가 살던 어린 시절이 아닌 훨씬 더 다변화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온고이지신이라지만 하루에 5분, 10분이라도 트렌드 한 최신 정보와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