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는 주민 투표를 통해 아파트 도색에 관한 설문을 실시한 후, 가장 득표수가 많은 시안대로 도색 작업을 마무리했다. 주변 단지들에 비해 확실히 차별화된 느낌으로 변모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기존의 연두색은 인근 단지와 색이 비슷해 다소 혼란을 줄 수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6시 반부터 잠이 깨서 재워달라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다녀왔다. 비몽사몽간에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아뿔싸. 집으로부터 2,3블록이나 더 먼 곳까지 걸어온 게 아닌가. 이상하네. 여기 우리 아파트 색이랑 똑같은데라고 주변을 살펴보니 이게 웬걸. 우리 아파트 앞 2개 단지 모두 똑같은 색으로 도색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단지 규모와 조경, 용적률 등이 다 비슷비슷해서 단지명을 확실하게 체크하지 않으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탈바꿈해 있었다. 저 아파트들도 분명 동대표들이 모여 시안을 구성하고 주민 투표로 도색작업을 진행했을 텐데. 사람들의 취향은 다 거기서 거기 인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인근의 소위 10대 브랜드 안에 들어가는 고급 아파트들은 도색이 좀 바랬어도 수정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역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것인가'
나는 그런대로 길눈이 익어서 괜찮지만 와이프가 동네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왜냐하면 와이프는 고등학교 통학 시 버스를 수도 없이 거꾸로 타기 일쑤인 소문난 길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교대를 장학금 받고 입학한 수재가 길눈은 그렇게 어두운지 참. 내가 대신 길눈을 밝힐 테니, 여보가 세상 물정 어두운 나를 대신해서 지혜를 발휘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