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 3박 4일 동안 39개월, 23개월 두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 없는 여행을 다녀왔다. 언제든지 걷고 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지만 수시로 안아달라고 하기에 모두가 안전하고 힘이 덜 들어가는 행복한(?) 여행을 위해서는 차량 렌트가 필수적이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대뜸 와이프가 '제주도에서 전기차 대여해서 다니는 게 다른 차 보다 저렴할 것 같은데 한번 알아보자.'라고 했다. 처음엔 한 번도 전기차를 몰아본 적이 없어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MBTI상 극 N인 탓에 '전기차가 주행 중에 방전되면 어떡하지?', '전기차 충전할 때 비 오면 충전 못하는 거 아닌가?' 등의 망상에 잠심 망설였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뒤 찬찬히 알아본 결과 SK렌터카에서 전기차를 충전비까지 지원하는 프로모션이 있다는 것을 찾았고 이것저것 따져보니 기존에 렌트했을 때 보다 차도 훨씬 깔끔하고 비용 절감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바로 48시간 완전자차 포함 115,000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하고 난생 첫 전기차 렌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차는 거의 신차와 다름없는 최신형 EV6 제품으로 렌트를 했다. 렌트를 하면 'EV LINK' 앱을 통해 제주도 권역의 전기차 충전소가 어디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중 EV LINK와 제휴하여 충전을 무료로 진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마음껏 공짜로 충전할 수 있다. 특히 박물관, 테마파크, 음식점, 호텔 등 많은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곳은 거의 대부분 EV LINK 제휴 충전소였기에 시설은 시설대로 이용하면서 충전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보통 급속 충전 1시간 정도면 4~500km 운행 가능할 정도로 풀 충전이 완료되기 때문에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카페에서 잠깐 시간을 보낼 때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어 좋았다.
최근에 차에 상당한 관심이 많은 첫째는 요즘 아빠와 셀프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것을 굉장히 재미있어하고 은근 자부심도 있는 눈치다. 그런 첫째의 눈에 기름을 넣는 차가 아닌 전기를 충전하는 형식의 자동차가 들어왔으니 호기심이 넘치는 것은 당연지사. 한밤중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어두컴컴한 분위기에서도 전기차 충전은 꼭 자기가 아빠랑 함께 해야 한다는 아들의 성미를 누가 막을쏘냐. 씩씩하게 전기차 충전 코드를 꽂더니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화들짝 아빠 품으로 달려와 안아달라는 모습에서 수십 년 전 내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빠 어릴 때랑 닮아가는 아들의 모습이 마냥 신기하면서도 귀엽다.
그동안 제주도여행을 다니면서 대략적으로 5번의 차량 렌트를 진행했는데 이번 여행이 가장 쾌적하고 만족도가 높았던 렌트 경험이었던 것 같다. 운행 중에 갑자기 라디오가 혼자 켜지는 경험도 해봤고 LPG 차량을 빌린 탓에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을 수가 없어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첫째 임신 태교 여행 때는 100대 0으로 자동차 사고를 당한 경험도 있어 차량 렌트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제주도=전기차'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정립이 되었다.
그러나 제주도의 렌터카 시장은 내가 보고 느낀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양새인 듯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제주도 전기차 정책과 뉴스를 살펴보니 활성화된 전기차 시장과 인프라에 비해 중장기적인 발전에 대한 논의가 많이 미흡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단발적인 보조금 지급 및 세제 특혜로 제주도 내에 전기차 렌트가 불티나듯 활성화되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골칫덩이가 돼버린 전기차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보호를 위한 전기차가 주변 경관이나 미관을 해치는 주범이 돼버린 것이다. 앞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전기차를 렌트해서 다닐 생각인 만큼 향후 제주도 전기차 시장 흐름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난 제주도 전기차 렌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꾸준히 활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P.S.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기차는 제주도 전통시장 공영주차장 주차비가 50% 할인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