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사추이, 홍콩 엘리베이터에 갇히기, 야경 투어
'애들도 애들 나름대로 해외가 처음이지만 우리 부부도 몇 년 만인지'
이미 제주도 여행으로 공항 방문과 비행기 탑승이 낯설지 않은 아가들이기에 인천공항에서 출발 시각을 기다리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김포공항에 비해 훨씬 규모도 크고 볼거리도 많은지라 아이들은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 전 설렘을 만끽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아침 8시가 채 되지도 않은 이른 시각임에도 첫째는 탭댄스를 추며 좋아하니 이제는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탑승 수속을 비롯한 모든 출국 절차를 마치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제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걱정거리가 하나 등장 하더군요.
'제주도는 1시간이니까 그럭저럭 잘 앉아 있었는데
4시간 비행은 과연 괜찮을까?'
그렇게 남몰래 걱정을 하며 아가들을 좌석에 앉히고 안전 안내 방송까지 청취하니 본격적인 비행이 시작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아가들이 기내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지겨워할까 봐 필살기로 노트북과 패드에 유튜브 오프라인 영상을 다운로드하여오기도 하고 색칠공부, 종이접기 세트도 마련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첫째와 둘째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헤드셋을 끼고 좌석에 마련된 스크린을 보면서 편안한 여행을 즐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마치 비행기를 자주 탔던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말이죠. 처음 보는 에니매이션도 집중하면서 보고, 기내식도 자연스럽게 받아먹고 정리하기도 하고, 식곤증이 와서 낮잠을 청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4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렸습니다.
'아빠는 기내식도 소화가 안돼서 잘 못 먹고,
비행기에서는 한숨도 못 자는데 너희가 훨씬 낫다 야'
그렇게 공항에 도착하고 2층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침사추이'로 향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1시간가량 또 버스를 타는 고된 여정임에도 투정 한 번 안 부리며 홍콩의 첫 만남을 올곧이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번화가에 있는 호텔로 이동해 짐을 풀고 아가들과 함께 다소 늦은 점심 또는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프랜차이즈를 먹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현지 식사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던 찰나, 때마침 한자만 가득한 식당이 있어 야심 차게 방문했습니다. 음식 그림과 약간의 바디 제스처, 서툰 영어를 섞어가며 메뉴를 주문하니 '계란 볶음밥' , '족발 튀김' 등 그럴싸한 중화풍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아가들도 금방 현지화(?) 패치가 완료되어 꽤 근사한 식사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찌는 듯한 더위를 뚫고 숙소로 돌아와 처가댁 식구들과 홍콩에서 합류하였습니다. 처가댁 식구들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호텔 옆 건물 5층에 자리 잡은 한 가정집에 머무르고 있었는데요. 타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서 그런지 아가들의 텐션은 한층 더 상승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침사추이 인근 야경을 보고, 트램도 타보는 경험을 해보기로 하면서 일부는 계단, 다른 일부는 엘리베이터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엘리베이터가 노후화되다 보니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저를 포함하여 장인어른, 처제가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비상경고음을 눌렀으나 먹통이었고 엘리베이터 안은 온통 한자투성이로 가득한 문구뿐이었죠. 당황하지 않고 해결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처제는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소통하고, 저와 장인어른은 밖에 있는 가족들에게 주변에 우리가 갇힌 사실을 알려 구급대가 올 수 있도록 부탁했습니다. 30여 분간의 영겁과 같은 기다림, 35도가 넘는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마침내 전원 구조될 수 있었고 그제야 모든 긴장감이 스르륵 풀렸습니다.
'그나마 어른들인 우리가 갇힌 게 천만다행이지,
애들이라도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극적인 해프닝을 뒤로한 채, 정해놓은 일정을 소화하려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러있었습니다. 그리고 더위 속에서 아빠가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많이 지쳐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고요. 그리하여 침사추이 야경을 유람선으로 잠깐 보고 오는 일정만 함께 하고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그토록 떠나보고 싶었던 해외여행 첫날부터 '역시 치안, 안전은 한국만 한 곳이 없어'라는 것을 실감한 아이러니한 날이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던 값진 경험이지 않나 싶습니다. 상황 파악을 하면서 부모님을 걱정할 줄 아는 아가들의 모습에서 한층 더 성장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아 내일은 절대 엘리베이터 타지 말아야지, 5층 정도면 계단으로 오르내릴만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