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에세이 챌린지] 8. 강제 엘린이

30년째 LG트윈스 응원하는 아빠 덕분에 '엘린이'의 길을 걷다.

by 홍윤표

1994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2023년 지금까지 나는 줄곧 LG 트윈스의 팬이다. 1994년 엘지 트윈스는 류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신인 트로이카'와 정삼흠, 노찬엽, 김용수 등의 베테랑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승승장구하던 팀이었다. '신바람 야구'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걸맞게 주어진 찬스를 놓치지 않았으며 지고 있어도 끝끝내 경기를 뒤집는 재미있는 경기를 선보였던 기억이 선하다. 오죽했으면 어린이날 선물로 '야구, 재미있게 보는 법'을 사달라고 했을까. 또한 엄격했던 90년대 문화 속에서도 어린 마음에 나중에 꼭 크면 이상훈 선수처럼 장발을 해야지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해 LG트윈스는 우승을 했고 당시 LG 구본무 회장이 '다음 우승 때 같이 나눠 마십시다'라며 담근 술을 소개한 일화가 있다. 그 후 30년. 아무도 그 담금주를 마신 일이 없다. 그렇다. LG트윈스는 그 후 30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다.


한 번의 기회는 더 있었다. 2002년 고등학교 1학년, 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로 떠들썩하던 시기, 그 해 LG 트윈스의 성적은 꽤 괜찮았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외국인 투수 만자니오가 굉장히 성적이 좋았다는 것과 박용택 선수가 당시 특급 신인으로서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모두가 한국 축구 4강을 외칠 때 묵묵히 LG 트윈스는 페넌트레이스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월드컵이 끝남과 동시에 가을 야구의 희망을 보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4위로 가을 야구에 선착한 LG트윈스는 '김성근 매직'으로 한국시리즈까지 꾸역꾸역 올라갔다. 그리고 내 기억에 생생한 한국시리즈 6차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라디오로 몰래 야구 경기를 듣던 그날, 삼성 이승엽 선수의 끝내기 홈런 실황을 듣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친구들과 야자 째고, 버스 정류장에서 종합운동장을 가느냐 마느냐 기로에서 고민하다 야구장으로 향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칭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만감이 교차하던 때였다.


그 이후로 LG 트윈스는 너무나도 긴 암흑기를 거치게 된다. 같은 연고 라이벌 두산이 꼬박꼬박 가을야구 출전을 하는 모습을 부러워해야 했고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양산하며 이전의 영광은 찾기 어려워졌다. 이기고 있는 데도 질 것 같이 불안했고 어쩌다 한 번 크게 이긴 경기 다음에는 내리 연패를 거듭하기 일쑤였다. 대학생 그 어린 마음에도 다짐했던 것 같다. 나중에 내가 자식이 생기면 엘지 팬은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내 자식은 야구장에 와서 응원하는 팀이 이겨서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3년,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야구장이라는 곳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LG 트윈스 홈경기를 보러 종합운동장을 방문했다. 팀 성적이 어떠하든 간에 LG트윈스 팬은 늘 많다. 확실히 부모가 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가족 단위 팬들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았고 기왕이면 우리 아들, 딸에게 굿즈 하나라도 더 입히거나 씌워 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누가 손 쓸 새도 없이 이미 나는 기념품 샵에 가서 응원 배트, LG 트윈스 재킷, 모자 등을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했다. 그리고 첫째 아들에게 재킷을 입히고 응원 배트를 선물로 주었다. 아직 너무 어린 둘째는 사이즈가 맞는 게 없어 좀 더 크면 꼭 사주리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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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준비하지 못한 탓에 1루 쪽 홈 관중석 자리가 매진이 되어 외야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빠 덕분에(?) 강제로 엘린이가 된 우리 첫째는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신나는 음악과 사람들의 환호성이 오가는 자리에 금세 적응했다. 난생처음 야구장 방문이었지만 그래도 5회 이상 경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행히 상대가 한화였기에(한화 팬들께 미안합니다.. 그래도 늘 행복하시죠..?) 이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시간이 1~2달 정도 흐른 요즈음. 아들이 가끔씩 얘기한다. 우리 야구장에 가서 진짜 재미있었다고. 그래 아빠가 좀 더 크면 그때는 글러브까지 사서 같이 가자. 부지런히 자라렴.


feat. 적어도 네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우승 한번 경험해보지 않을까...? 아니면 너의 아들, 딸 세대까지 가야 할까..? 그럼 시카고 컵스 능가할 수도 있겠네...?

시카코 컵스.PNG

출처 : 비정상회담 1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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