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척척 응용하는 아이들
"한 잔 두 잔 술술 넘어갈 때마다
꼬였던 날들이 풀리고
기분 끝내줘 눈이 풀리고 oh "
위 가사는 쌈디가 2011년 발매한 "짠해"라는 곡이다. 힙합을 좋아하는 리스너로서 쌈디의 여러 곡 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고 랍티미스트라는 묵직하고 둔탁한 하드코어 비트를 잘 만드는 프로듀서와의 합작품이라서 나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곡이다. 발매 당시 쌈디는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제패하고 메인스트림으로 서서히 이름을 알리고 있었으며 다이내믹듀오가 설립한 '아메바 컬처'에 합류해 더욱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 이후의 여러 사건들로 인해 아메바와 쌈디의 조합은 찾기 어렵게 되었지만..) 가사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술 한잔 기울이면서 몸과 마음의 어려웠던 점을 정리하고 친구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곡이다.
흔히 술을 마실 때 하는 제스처로 '건배', '치얼스', '짠' 정도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뭐 앞선 제스처로부터 파생 또는 변형되어 다양한 버전의 건배사가 술자리에서 통용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육아로 인해 근 3년간 술집을 제대로 마신 적이 없는 부모로서 3개 정도만 알고 있는 것도 감지덕지할 노릇. 육아하는 입장에서 우리 부부가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아이들 앞에서 술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나와 와이프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많이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좋은 음식을 보면 곁들일 술이 무엇 일지부터 고민하고 한창 데이트할 때 여행을 간다 하면 지역의 술을 꼭 마시곤 했다. 특히 계절이 바뀔수록 늘 함께하는 제철 음식과 술의 조합을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아이들과 식사할 때 콜라와 사이다를 종종 먹곤 했는데 우리 부부는 몰랐지만 '짠, '건배'를 무의식 중으로 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주말을 맞이해 근처 샌드위치와 와플을 파는 카페에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시간이 10시 정도로 어중간해서 점심 먹기 전에 아이들과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으러 간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샌드위치를 시키고 아이들은 와플을 시켜서 먹었다. 카페의 테마가 약간 레트로 감성이어서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평상 비슷한 것이 있길래 아이들은 거기에 앉아서 먹게 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와이프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방금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데 나도 소위 말해 빵 터졌다.
첫째랑 둘째가 둘 다 와플을 손에 든 채로 "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가 술을 마시는 걸 보여준 적도 없는데 언제 저걸 배웠지.
아이들은 자라고 부모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탐색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가만 보니 '짠'이란 제스처가 아이들에게는 '함께' 또는 '같이'라는 나눔과 권유의 시그널이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짠'을 하며 식빵 짠, 멘토스 짠, 아이스크림 짠 등 여러 가지 버전의 '짠'을 볼 수 있었는데 늘 그때도 첫째와 둘째는 같이 나누어 먹었다. '나랑 같이 여기서 이걸 나누어 먹지 않을래?'라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미덕을 잊고 살았던 거 같은데... 오늘도 우리 예쁜 아이들로부터 소소하지만 중요한 덕목을 하나 얻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