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들어가기 싫어. 이따 학교 끝나고 연락해. 지옥에서 잘 지내고.” 은정이 탄식하듯 말하며 교실로 들어간다.
은정이의 교실은 4층 본관 6학년 4반, 하은이는 그곳에서 복도를 하나 지나 별관 오른쪽 가장자리 끝에 있는 6학년 7반이다. 둘은 어린이집부터 같은 반 생활을 하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친하게 지냈고 특히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며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다른 여자 아이들처럼 K-POP에 빠져 쉬는 시간마다 랜덤플레이댄스를 춘다던지, 다른 반 남학생들과 썸이 생겨 연애 상담을 주고받는 것 따위에 관심이 전혀 없다. 그저 책상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보다 단 10분이라도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노는 것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야야. 유은정. 너 그거 봤어. 4층 화장실 앞에 붙어 있는 거?” 하은이가 쉬는 시간에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뭐를?”
“여자들도 윤표선생님이 플라잉디스크 부 만들어서 아침마다 할 거래.” 하은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은정을 보며 말한다.
“맞아. 그래서 윤표쌤이 올해 제대로 6학년 여학생들 4월부터 훈련시켜서 체육 시켜준대. 우리 이거 해 보자.”
“근데 그거 키 커야 되는 거 아냐?” 은정이가 자기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하은이를 흘겨보며 말한다.
“윤표쌤이 그랬어. 이거 몸싸움도 없고 신사적인 게임이라 연습 많이 하면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고.”
“그래. 일단 좀 찾아보고. 이거 신청 언제까지 하면 되는 거래?”
“이번주 금요일까지 신청받아서 4월부터 바로 연습하는 거래. 우리 이거 해보자. 응?”
“알았어. 생각 좀 해보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정이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생각해 보니 아침마다 학교에 일찍 등교하니 부모님께 부지런한 모습도 보일 수 있고 매일 1시간씩 체육을 할 수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은정이는 학원 가기 전 핸드폰으로 ‘플라잉디스크’를 검색해 보았다. 플라잉디스크 게임을 살펴보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마냥 멋있고 근사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 남자 선배들도 프랑스의 유명한 축구팀 옷을 입고 자기 이니셜이 등에 박힌 유니폼을 입고 대회에 나간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거 생각보다 꽤 재미있고 근사하겠는데?’
플라잉디스크 게임은 축구나 농구처럼 공을 뺏거나 몸을 부딪히는 활동이 전혀 없다. 그러고 보니 키도 작고 빼빼 마른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잘하는 선수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고 협동심이 무엇보다 필요한 게임이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마을마다 플라잉디스크대회를 열고 중계방송도 해주는 모양인 것 같았다. 은정이는 플라잉디스크 게임을 하루빨리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오, 문자와 식 문제보다 플라잉디스크가 훨씬 재미있겠네.'
다음 날, 쉬는 시간에 은정이는 하은이를 4층 화장실 앞에서 만났다.
“야, 경하은. 신청서 내러 같이 가자. 어디로 가라고 했지?” 은정이가 하은이에게 묻자 하은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한다.
“아니 글씨가 쓰여 있으면 좀 읽어라. 5층 영어 2실로 제출하라 쓰여 있잖아.”
“아니, 아는 데 혹시나 해서.” 은정이가 머쓱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한다.
영어 2실에 찾아가니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윤표쌤이 은정이와 하은이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눈길도 주지 않고 말한다.
“응, 신청서 여기 칠판 앞에 노란 바구니” 윤표쌤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키보드만 두드리며 얘기한다.
“이거 근데 내면 다 할 수 있어요?” 은정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윤표쌤에게 질문한다.
“어 나 이거 신청서 내는 사람 다 받아서 진행할 거야. 20명이든 30명이든 상관없어.”
“선생님 근데 이거 찾아보니까 한 팀에 7명씩 나가서 경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너무 많지 않나?”
은정이는 대뜸 하은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하은이도 알고 보니 플라잉디스크 경기를 찾아서 공부를 해 온 것이다.
“응, 그렇긴 한데. 선수가 7명만 뛸 수 있다고 해서 7명만 뽑을 수 없지. 선수 교체는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선수는 많을수록 좋아.” “선생님 그럼 이거 뭐 테스트 같은 것은 따로 안보는 거죠?” 하은이가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여기가 무슨 운동부냐 국가대표냐. 그냥 아침에 부지런히 나와서 재미있게 노는 사람들을 제일 예뻐해 줄 거야.”
역시나 모니터에서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당연하다는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말투로 윤표쌤이 대답한다.
“그럼 여기다 신청서 두고 갈게요.”
“응. 수고.” 윤표쌤이 제발 좀 가라는 듯이 눈빛을 흘기며 대답한다.
“윤표쌤이 작년에 우리 영어쌤이었는데 체육도 하셨나?” 하은이가 4층으로 계단을 내려오며 은정에게 말한다.
“뭐 작년 오빠들 우승시키셨으니까 뭔가 잘 알려주시겠지. 윤표쌤 영어도 재밌잖아. 만날 게임하고.” 은정이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