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지금 전혀 소통하고 있지 않아.
“와, 김지우. 그림 실력 보소. 엄청 잘 그렸네. 야, 장다 이것 좀 봐봐.”
주은이가 SNS에 올린 지우의 그림을 보고 다언이를 툭툭 치며 말한다.
“몰랐어? 지우 얘 원래 꿈이 예고 가는 거였을걸. 쉬는 시간마다 그 뭐냐 캐리커처? 그런 거 그리면 대박 똑같았음.”
다언이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뭘 그런 거 가지고 놀라냐는 식으로 반문한다.
“좋아요도 엄청 많이 눌렸네. 아니 나는 태권도 시범도 올리고 피아노 콩쿠르도 올렸는데 좋아요가 지우 반도 안되네.”
“음... 아무래도 얼굴 때문이지 않을까? 히히히.”
“야, 너나 나나 어차피 똑같이 생겼고 똑같이 남친 없거든. 근데 오늘 윤표쌤이 뭐 간담회인가 한다던데. 뭔지 알아?”
다언이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며 주은이를 바라보는데 멀리서 소리친다. 길쭉하고 안경 쓴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오은서다.
“야. 오은서. 넌 어떻게 어제보다 더 길쭉하냐. 빼빼로만 먹고 자랐냐?” 주은이가 볼멘소리를 하며 은서를 흘겨본다.
“어머. 사람을 보자마자 그렇게 칭찬을 하면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잖아.”
은서가 웃으며 주은이의 팔짱을 낀다.
“야. 장다. 그래서 간담회가 뭔지 아냐고.” 주은이가 재촉하며 다언이에게 묻는다.
“음... 내 생각에는... 간담회니까...” 다언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민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얘기한다.
“간담을 서늘하게 해 줄 정도로 무서운 시간일 거야. 히히히.”
“우리 이제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너 남자애들 앞에선 그러지 마.”
주은이가 어이없다는 식으로 다언이를 바라본다.
‘간담이 서늘하니까 간담회라니... 크크크... 일단 기억해 놨다가 나중에 써먹어야지... 아... 너무 웃기네...’
주은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은서, 다언이와 교실로 들어간다.
“오늘 갑자기 모이라고 한 이유 아는 사람?” 윤표쌤이 21명의 플라잉디스크 부원들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교실 안이 새벽녘 공원 산책길처럼 고요하고 침묵만이 감돈다.
“혹시 어느 학교랑 붙는지 알려주시려고 부른 거 아닌가요?” 담희가 손을 들고 윤표쌤의 질문에 대답한다.
“크, 멋진 추측이었어. 하지만 아니다. 아직 공식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어. 또 다른 사람?”
‘캬, 역시 담희는 이럴 때마다 카리스마를 보여준다니까. 운동장에서는 패기가 넘치는데 교실만 들어오면 태도가 달라져.’ 우림이가 같은 반 친구인 담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한다.
“오늘 모이라고 한 이유는 너희의 정신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윤표쌤이 침묵을 깨고 엄숙하게 말한다.
일순간 21명 학생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웅성거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8시 10분부터 50분까지 시합을 한 지 2달이 넘었는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40분에 나타나는 학생.” 윤표쌤이 말함과 동시에 모두가 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언이었다.
“연습한다고 해서 플라잉디스크 빌려줬더니 5개나 잃어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학생.” 윤표쌤이 말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윤아를 바라보았다.
“하루종일 SNS에 실력도 없으면서 왜 나오냐고 빈정거리는 학생. 아니지. 주장님.” 윤표쌤이 이번에는 은정이를 콕 집어 가리키며 말했다. 셋 다 모두 자기의 이름이 나오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외 나머지. 하나하나 다 열거하다 보면 밤 열두 시까지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야.” 머리를 연신 흔들며 윤표쌤이 푸념하듯 이야기하더니 책상을 탁 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희는 지금 전혀 소통하고 있지 않아.”
“지금까지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들 오늘 이 순간으로 더 이상 얘기하지 않을게. 6학년씩이나 되었으면 이렇게 한 번 얘기했으면 다 알아들으리라고 마지막으로 믿어본다. 다들 책상 위에 연필이랑 지우개 준비해 봐.” 윤표쌤이 단호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쓱 훑어보며 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 준다.
‘이... 이건....? 내 친구의 강점은?’
“선생님이 지금까지 주야장천 너희들의 단점만 이야기했다. 너희들끼리 서로 느꼈을 단점도 있고 선생님이 오해한 단점도 있겠지. 그것들은 오늘 이 시간 부로 잊는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장점과 강점을 찾아서 그것들을 기르는 방향으로 훈련을 한다. 시간이 많이 없어. 그리고 이걸 파악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야.” 윤표쌤이 차분한 말투로 학생들에게 말한다.
“지금부터 나를 제외한 20명의 강점을 찾아 이 종이에 적어주도록 한다. 나 스스로 혼자 적어도 좋고 돌아다니면서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적어도 좋다. 15분 정도면 충분하겠지. 실시.”
학생들은 다소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 이내 모두들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를 띠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 말이다.
‘호오. 웬일이야. 불 같이 따질 줄 알았더니 친구들을 위해서 골똘히 생각할 줄도 알고.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 남을 한 번 더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해. 그게 팀플레이의 기본이야.’
윤표쌤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저마다 종이에 머리를 푹 숙이며 친구들이 잘하는 것을 손이 부서져라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금세 교실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바뀌었고 다소 소극적인 학생들도 서로 대화를 나누며 박수를 치기도 했다.
“자. 너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쳐서 다소 미안하지만. 우리 한번 서로의 강점을 발표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먼저 발표해 볼 사람.” 그러자 21명의 학생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흠. 진작 이렇게 할 것이지. 요 녀석들아.’ 윤표쌤도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켰다.
“학원 숙제는 언제 할 건데 그래서?” 효주 엄마가 멸치를 볶으면서 효주에게 물어본다.
“그거 학원 선생님이 이번 주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숙제 안 내주셨는데?” 효주가 태연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면서 말한다.
“아오. 너 그거 진짜 핸드폰 내다 버리던지 해야지. 엄마가 얘기를 하면 엄마를 봐야지 핸드폰만 보고 있니?”
“아, 하면서도 다 듣고 있다고. 엄마는 오빠한테는 아무 잔소리도 안 하면서 만날 나한테만 뭐라고 그래.”
“이 가시나야. 내가 네가 알아서 잘하면 잔소리해? 그거 핸드폰 안 내려놔!!”
“어 안 내려놔! 아 진짜 나 집 나갈 거야!” 효주가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슬리퍼만 신은 채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간다.
“진짜 집이 감옥이나 다를 바가 없는 거 같아.” 효주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하소연한다.
“우리 집도 그래. 만날 언니 학원 데려다줘야 한다. 학원 주말 특강비 내야 한다면서 돈 없다 하고.” 효주의 말에 해린이가 대답한다. 집에서 나온 효주는 갈 곳이 딱히 없자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몇 분 안 되어서 해린이가 놀이터로 왔다. 효주가 좋아하는 초콜릿우유를 사서 나눠 먹으면서 말이다.
“내가 첫째로 태어났으면 나를 더 좋아했을까?” “아니 그건 절대 아닐걸.” 효주가 뱉은 말에 갑자기 누가 놀리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효주와 해린이가 뒤를 돌아보니 단비와 담희였다.
“담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첫째인데 우리 엄마는 만날 동생만 챙기고 나한테만 잔소리 함.” 담희가 효주의 말에 반문했다.
“난 솔직히 동생이 왜 있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이렇게 싸우기만 할 거면 동생이 왜 필요한 건지 참.” 단비도 담희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말한다.
“근데 갑자기 플디는 왜 갖고 왔어?” 효주가 단비가 들고 있는 플라잉디스크를 보며 말한다.
“윤표쌤이 어제 훈련 끝나고 개인 연습할 사람들은 빌려가라고 하셨잖아. 그래서 단비랑 피벗 연습하고 있었어.”
“와. 진짜 너희는 뭐 어디 모범생 초등학교에 다니냐. 선생님 말을 엄청 잘 듣네.” 해린이가 기가 차다는 듯 한 표정으로 말한다.
“모르겠어. 솔직히 학원에서 수학 공식 알려주는 건 계속 알려줘도 문제 풀기 싫은데. 플디는 선생님이 알려주는 거 연습하면 재미있는 거 같아. 어때 나 피벗 간지 나지?” 단비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벗 동작을 뽐낸다.
“에이. 아니야. 너 여기 왼쪽 축발이 땅에서 자꾸 떨어지잖아. 그럼 파울이야. 내가 보여줄게. 가지고 와 봐.” 효주가 그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럼 내가 효주를 수비할 테니까 효주가 해린이한테 패스하는 거 단비가 막아봐. 우리 2:2 하자.”
“그래 좋아. 자. 흩어져봐.”
적막이 흐르던 놀이터에서 소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울려 퍼졌고 그렇게 밤은 저물어 갔다.
“오! 장다언이!” 윤표쌤이 큰 목소리로 책가방을 메고 멋쩍게 걸어오는 다언이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 다언이가 오늘은 10분이나 일찍 와서 8시 30분에 왔다. 다 같이 박수!” “와아아아~”
“아 좀 선생님 하지 좀 마요. 창피해 죽겠네 진짜.” 다언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말한다.
“그러게 누가 늦으라니. 응? 자 다들 모여봐. 중요한 거 안내 하나 할게.”
윤표쌤이 훈련을 마치고 학생들을 모았다.
“드디어 나왔다.” 윤표쌤이 대답하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뭔데요?”
“플라잉디스크 본선 조별리그 대진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