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기본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니
“선생님, 오늘은 왜 연습 안 해요?”
주은이가 교실로 들어오며 볼멘소리를 한다.
“아니, 내가 그토록 SNS에 서로 비방하는 이야기 쓰지 말라고 했는데. 연습 같은 소리가 나와 지금?”
윤표쌤이 눈을 부릅뜨면서 주은이를 비롯한 플라잉디스크 부원들을 쳐다보며 쏘아붙인다.
“은정이. 하은이. 일어나 봐.” 은정이와 하은이가 서로를 곁눈질로 쓱 보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거 내가 어제 제보받은 글인데 이걸 보면서 느끼는 게 있으면 얘기해 봐.”
윤표쌤이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여주니 그림 한 장이 캡처가 되어있다. 캡처된 그림엔 초성으로 된 장문의 글이 적혀있었다.
'ㄱㅁㅅ ㅈㅉ ㅁㅍ ㅇㅈ? ㄴㅊㅇㅇㅁ ㅇㅇㅅ ㅈ ㄴㄱㅈ?'
“선생님이 척 봐도 누구한테 무슨 이야기하는지 알겠는데? 내가 정답을 말할까? 아니면 너희들이 먼저 얘기할래?”
윤표쌤이 은정이와 하은이를 보며 넌지시 묻는다.
“구민서 진짜 민폐 인정? 눈치 있으면 알아서... ”
“어. 됐어 됐어. 그 멘트를 다 듣고 싶은 건 아니었어. 어제 아침에 분위기 좋았다가 하루아침에 팀 분위기를 망치는 행위가 나온 게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나는.”
은정이와 하은이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어제 우리가 뭐 했지? 어제가 월요일이었으니까... 아! 방송 조회!’
그랬다. 지난주 있었던 플라잉디스크 대회 우승을 한 기념으로 교장선생님께서 임시 방송 조회를 열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플라잉디스크 부 전원은 교장선생님 앞에서 메달을 받고 우승 깃발을 들어 기념 촬영까지 했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세라초 전교생이 볼 수 있도록 TV로 송출되었고 플라잉디스크 부원들은 하루아침에 학교에서 인기 스타가 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은정이가 SNS에 민서를 저격하는 글을 올렸고 그 사실이 윤표쌤의 귀에 전달이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학교 생활 할 거라면 난 이걸 너희한테 보여주는 의미가 없다고 봐.”
윤표쌤이 실망이 가득하다는 눈초리로 플라잉디스크 부원들을 쓱 훑어본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을게요.” 플라잉디스크 부원 전원이 윤표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고. 또 이런 일이 생길 경우에는 난 과감히 기권하고 전국대회 안 나갈 거야. 그런 줄 알아.”
“네.”
“자, 이 얘기는 그만하고. 화면부터 봐봐.”
윤표쌤이 TV를 켜니 네모진 칸에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축구 경기장과 비슷한 형태의 녹색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이게 뭐예요?”
“제17회 전국 학교스포츠클럽 대회 일정표와 너희가 가게 될 밀양의 플라잉디스크 경기장 그림이다.”
“여학생들 숙소를 잡기가 좀 어렵긴 하네요. 21명을 한꺼번에 수용할만한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종석쌤이 펜션과 호텔 자료를 인터넷으로 비교해 보며 윤표쌤에게 말한다.
“호텔을 들어가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죠?” 윤표쌤이 묻는다.
“이게 지금 그날 전국에서 초, 중, 고 100개 학교가 동시에 밀양으로 들어오잖아요. 게다가 주말이라서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그렇다고 애들 허름한 펜션이나 모텔에서 재우는 것도 안 되잖아요.”
종석쌤이 좀처럼 마땅한 방법이 나오지 않아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그리고 그것도 들으셨죠? 교장선생님한테?”
“아. 여자 선생님 2~3분 모시고 가야 한다는 거요?”
“여학생들이 생각보다 더 겁이 없고 경거망동하게 행동할 수도 있어요. 막 새벽에 몰래 숙소 뛰쳐나가서 사고라도 나면 정말 큰일이에요.”
“그렇게 되면 교사 숙소도...”
“그렇죠. 교사 숙소도 2개 잡아야 돼요. 음... 아무래도 밀양 주변에 청도 이쪽에 숙소가 있는지 알아보고 또 연락드릴게요.” 종석쌤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며 말한다.
‘남학생들 데리고 전국대회 나갔을 때 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훨씬 많네.’
윤표쌤은 생각했다.
“윤표 부장님, 잠깐 나 좀 봐요.”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학생들과 자체 청백전 게임을 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윤표쌤을 부르신다.
“쟤네들 요즘 교실에서 담임선생님들 힘들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
교장선생님이 운동하는 여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넌지시 말한다.
“전국대회 나가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학교 위상을 드높이는 거 나도 너무 잘 알아. 그런데 수업시간에는 수업을 열심히 듣고, 숙제도 해가면서 운동을 해야지. 그렇지 않아요?”
“네. 그거야 당연한 말씀이죠.”
“그런데 쟤네들 플라잉디스크 연습한다고 숙제도 안 하고, 밤늦게까지 부모님한테 연락도 안 하고 플라잉디스크 연습하다 들어간대. 학교로 민원 전화가 요즘 계속 들어와서 교무실에서도 난처해한다고.”
“저도 요새 아이들 계속 수시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따로 모여서 잔소리했고요.”
“부장님이 애쓰시는 것은 잘 알겠는데. 좀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도 많이 있는 것 같아서 한 마디 했어요. 좀 잘 지도 부탁드릴게요.”
교장선생님께서 신신당부하시며 교장실로 올라가는 모습을 윤표쌤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선생님 근데 밀양에 로제 떡볶이 파는 데 있어요?”
“로제 떡볶이 같은 소리 하네. 선생님이 공지 사항 하나 전달 할게. 앞으로 일주일 간 아침에 연습 없다.”
“네. 왜요? 저희 그럼 전국대회 가서 지면 어떻게 해요?”
“지면 지는 거지 뭐 별 수 있나. 대신에 숙제를 줄게.”
“첫째. 주말에 백핸드 100번, 포핸드 100번, 피벗 동작 100번, 친구랑 주고받기 100번 해서 기록할 것.”
연습도 갑자기 안 하는 마당에 숙제까지 받아 들게 된 선수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둘째. 앞으로 1주일 동안 담임 선생님들을 포함한 모든 선생님께 인사 잘하기.”
“셋째. 잘못된 행동을 해서 선생님들한테 혼나지 않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나한테 질문하지 않기. 궁금한 것이 있어도 꾹 참고 기다릴 것. 정 궁금하면 스스로 찾아낼 것. 1주일 동안 숙제를 잘해올 수 있도록. 이상.”
윤표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올라갔고, 나머지 학생들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듯이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근데, 솔직히 우리가 요즘 심하긴 했어. 막 선생님 허락도 안 받고 플라잉디스크 꺼내서 놀다가 늦게 들어가고 그랬잖아.” 윤아가 친구들에게 말한다.
“아니 솔직히, 장다언이 너는 도대체 왜 연습은 늦고 쉬는 시간에는 왜 플디하는건데? 연습을 일찍 와.”
은정이가 다언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한다.
“그게 아니라, 밤에 잠이 안 와서 늦게까지 만화 보다가 자서 그래. 어제는 주은이가 갑자기 짜파게티 끓여 먹자고 해서 그거 저녁에 먹었거든. 라면 먹고 바로 자면 얼굴 붓잖아.” 다언이가 애교 섞인 말투로 은정이의 말에 대꾸한다.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 기본기가 많이 약해지긴 했어. 수비도 귀찮아서 맨날 담희랑 단비만 막잖아. 아무도 손을 안 들고 그냥 있고.” 우림이가 한탄하듯이 말하니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그래. 그럼 우리 1주일 동안 진짜 쥐 죽은 듯이 있자. 선생님한테 잔소리 하나도 듣지 말고. 오케이?”
“오케이!”
그렇게 21명의 플라잉디스크 부원들은 1주일은 정말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숙제가 무엇인지 단체 채팅방으로 공유해서 착실하게 해내고, 점심시간에도 점심만 딱 먹고 교실로 올라갔으며, 방과 후에도 다 같이 도서관에 모여 학원 숙제를 함께 하기 시작했다.
‘막상 하니까 이것도 괜찮은데...?’
착실히 해야할 것들을 하고 나니 무언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윤표쌤이 단체 채팅 방으로 사진을 하나 전송하였다. 무슨 공무원들이 작성한 것 같은 보고서 같은 글이었다.
“11월에 전국대회 학교스포츠클럽 대진표 떴다. 우리랑 붙는 팀이 어딘지 확인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