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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인간적으로 졸업식날 플라잉디스크 하는 건 좀 아니지

by 홍윤표

“야, 은정. 너 레벨테스트 봤어?”

하은이가 은정이에게 묻는다.

“어. 어제 엄마랑 얘기해서 봤는데 문제가 쉬웠는데 실수를 좀... 야 너는 물어봤으면 사람 얘기를 들어야지 뭐 하냐?”

은정이가 하은이의 말에 대답하다 말고 성질을 부렸다.

“아, 오늘 4시에 단어 테스트 있는데 재시 보면 엄마가 가만 안 둔다 그래가지고...”

“와. 경하은 폼 미쳤네. 걸어 다니면서 단어 외우는 거 봐. 하버드 가는 거 아냐 이거?”

하은이와 은정이 옆에 슬쩍 우림이가 붙어서 너스레를 떤다.

“우림 너는 중학교 가는데 학원 안 가?”

“아빠가 공부는 동생들이 먼저 급하다고 나한테는 별 말 안 하더라. 중간만 가면 된다고 하시던데.”

우림이가 가방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터는데 익숙한 시험지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에이. 야 송우림 거짓말 진짜. 와~. 너도 여기 레벨테스트 봤네. 학원을 안 다니기는 뭘 안 다녀?”

은정이가 시험지를 쏙 빼서 살펴보니 어제 자신이 본 학원 시험지와 똑같은 것이었다.

“으흠.... 으흠... 켁. 켁. 이상하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우림이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 근데 졸업이 다음 주인데 뭐 재미있는 거 하나도 없네. 너희 반도 진도 다 나갔지?”

“우리 반은 그래서 매일 명심보감 필사해. 담임선생님이 요즘 매일 문해력 문해력 그러시면서 완전 명심보감에 꽂혔음.” 하은이가 보다 말던 단어장을 가방에 집어넣고 가방을 다시 등에 메면서 말한다.

“아 진짜 플디 안 하니까 학교 오는 재미가 하나도 없네.”

그때 ‘띠리리 띵띵 똥똥’ 은정, 우림, 하은이 셋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알림음이 울렸다.

“어, 윤표쌤이 공지 띄웠다. 뭐지?” 집중해서 공지를 읽은 셋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와 이주은 나이스. 오예!”

“와 이따가 이주은 볼때기에 뽀뽀 겁나 해줘야지. 재밌겠다.”


‘공지. 하도 플디 하게 해달라고 보채길래 다음 주 화요일 하루 딱 체육관에서 아침에 플라잉디스크 연습하겠습니다.’ - 윤표쌤 -

“아니 무슨 내일 졸업하시는 분들께서 학교 사랑이 너무 과하시네. 중학교 가서 플디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윤표쌤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귀찮다는 듯 말한다.

“쌤 우리가 학교에 해놓은 업적이 있는데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잖아요.”

주은이가 애교 섞인 말투로 윤표쌤의 말을 맞받아친다.

“그리고 오늘 저희 마지막이라 제가 타임라인 걸어서 기록에 남길 거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한 3달 만에 하는 건데 감이 아직 살아있나 모르겠네. 흩어져서 10분간 주고받기 해보세요.”

그때 마침 해맑은 얼굴을 하며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 한 명이 뛰어들어온다.

“와 윤표쌤. 저 오늘 플디 한다고 해서 버스 2번 갈아타고 지금 왔어요? 잘했죠?”

살펴보니 작년에 남양주로 이사 간 서윤이었다. 6학년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 꼭 세라초에서 졸업하겠다던 서윤이의 모습을 보니 윤표쌤은 되려 마음이 짠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서윤이는 이제 고생 좀 덜하겠네. 가서 연습해.”

그렇게 윤표쌤은 말하고 쓱 둘러보며 학생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다. 듣자 하니 몇몇 학생들은 벌써부터 내신 준비를 하느라 매일 밤 10시까지 학원 생활을 한다고 한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내신 200점 만점에 190도 힘들다며 수군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윤표쌤은 생각한다.


‘그래. 이젠 공부할 사람은 해야지.’


“자 A조랑 B조부터 먼저 경기 시작해 보자. 풀!”



“선생님, 한 해 동안 저희 아이들 지도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아이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진짜 우리 민아가 절대 학교 일찍 가는 애가 아니었는데 아침에 운동하는 거 너무 재미있다고 이렇게 부지런해질 줄 몰랐거든요. 아무튼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민아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면서 케이크 1 상자를 윤표쌤에게 건넨다.

“댁에 애기들이랑 같이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 사 왔어요. 냉동실에 보관해 두셨다가 종종 드세요.”

“아이고. 이런 거 받으려고 한건 아닌데. 아무튼 성의를 생각해서 감사히 받겠습니다. 졸업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졸업식을 마치고 윤표쌤은 마주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매년 하는 졸업식이지만 올해는 무엇보다 특별했고 좀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밖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졸업식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민아 부모님과 인사하며 교실로 돌아가는 데 담희가 사진을 찍자고 해서 함께 찍었다.

“어머나, 선생님. 우리 담희가 오늘 하루 종일 안 웃었는데 선생님 옆에서는 웃네요. 신기하기도 해라.”

담희 어머님께서 윤표쌤과 담희의 사진을 찍어주시면서 말한다.

“제가 좀 재미있게 생겨서 그렇죠 뭐. 담희야 졸업 축하하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윤표쌤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다.

“선생님 저희 민서에게 둘도 없는 추억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애기들 주세요.”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민서 아버님이 윤표쌤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저도 학교 다닐 때 윤표쌤 같은 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답니다. 감사드려요.”

“아이고, 제가 뭐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아무튼 너무 감사합니다.”

민서 아버님의 인사에 귓불까지 빨개진 윤표쌤은 황급히 자기 교실로 돌아와 한숨 돌린다. 입고 있던 정장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려는 데 누가 교실문을 똑똑 두드린다. 살펴보니 은정이었다. 늘 그렇듯 무표정한 채로.

“선생님, 저희 은정이가 윤표쌤한테 꼭 사진 찍고 가고 싶다고 해서 이리 왔습니다.”

“선생님. 옆에 서요.” 은정이가 윤표쌤에게 무심한 듯이 툭 내뱉는다.

“그래. 은정아. 너처럼 사람이 그렇게 한결같아야지. 그렇지?” 윤표쌤이 옆에서 너스레를 떨며 은정이 옆에 착 붙는다.


“스승의 날 때 올게요.”

“알았어. 나 그날 조퇴할게.”

“왜요?”

“아 진짜.... 센스 하고는 정말.”

“스승의 날 제가 찾아온다는 데 조퇴를 왜 해요?”


‘내가 얘네들 데리고 대회를 어떻게 나갔지...? 진짜 그야말로 기적이다 기적.’


윤표쌤이 쓱 웃으며 교실 문을 닫는데 은정이가 문을 쾅 열면서 다시 묻는다.

“스승의 날 조퇴 왜 하냐고요?”

“아악~ 제발 그만하고 집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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