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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치열함 그리고 고요함

눈물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by 홍윤표

“다음 경기가 몇 시에 있을까요 홍 부장님?” 교장, 교감선생님이 윤표선생님에게 묻자 윤표쌤이 다음 경기는 오후 4시에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럼 저희는 장학사님 모시고 먼저 서울 올라갈게요. 너무 늦어버리면 안 되니까.”

“네, 그러시죠. 멀리까지 오시느라고 고생하셨는데 좋은 결과를 못 보여드려서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나머지 경기 잘 마무리해 주시고 아이들 안전 신경 써서 서울로 올라오세요. 먼저 갑니다.”

그렇게 주차장까지 가는 길을 모셔다 드리고 윤표쌤은 돌아오는 길에 학생들과 함께 타고 온 대형 버스에 들렀다.

그리고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들고 세라초 대기석으로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 이거 어제 저희가 만든 캠페인 자료 아니에요?”

민하가 윤표쌤에게 말하자 윤표쌤은 싱긋 웃으며 말한다.

“경기에선 지더라도 추억 만들기에서는 지면 안 되겠지? 앞으로 대기시간이 5시간 넘게 있으니까. 좀 도와줄래?”

“네. 좋아요.” 민하는 웃으며 대답하고 어제 함께 방을 썼던 친구들을 모아 캠페인 영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뭘 또 이렇게 준비하셨어요?” 6학년 부장 은남쌤이 윤표쌤에게 넌지시 와서 묻자 윤표쌤이 답한다.

“그냥요. 이렇게 1년 열심히 즐겁게 보냈는데 기왕이면 아이들도 이 순간을 기록했으면 싶어서요. 솔직히 학교 밖에서 친구들이랑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하는 게 당연히 주어지는 추억은 아니잖아요.”

“또 이거로 아이들 학교 폭력 예방도 되고 인성 교육도 되니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학교에서 하는 것이랑 확실히 와닿는 게 다르니까.” 은남쌤이 말을 들으며 윤표쌤은 전날 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캠페인 자료를 꺼냈다.

“쌤 그럼 제가 주인공인거죠?” 민하의 말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주은이가 윤표쌤의 디렉팅을 받아 주연을 맡기로 하고 그렇게 모인 6명은 학교폭력예방 캠페인 동영상 제작에 참여했다. 전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윤표쌤은 각 방 별로 5 글자씩 학교폭력 예방 문구를 꾸미도록 했다. 그중 가장 성실히 참여했던 6명을 모아 점심시간 전까지 영상을 찍기로 했고

“폭! 력! 은! 잠! 깐!”

“상! 처! 는! 평! 생!”

“민서야, 너무 잘했는데, 영상 찍어보니까 각도가 살짝 밀리는 느낌이 있다. 왼쪽으로 5발만 움직여 볼래?”

“이 정도면 될까요?” 민서가 윤표쌤과 발끝을 번갈아 곁눈질하며 각도를 조정했고 윤표쌤은 바로 오케이 사인을 했다.

“자, 잔디밭 배경은 다 했고, 우리 이제 본부석 쪽으로 가서 또 한 컷 찍어보자.”

운동장을 크게 돌아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촬영 장소를 옮기는 도중, 남학생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익숙한 얼굴이 있어 살펴보니 남자 초등부 곡현초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태웅아~ 11번 태웅이 잘해라~!!” 아까 받았던 응원에 보답하듯 윤표쌤이 크게 소리쳤고 곡현초 태웅이는 알았다는 듯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화답했다.

‘아 맞다. 우리도 아직 2경기가 남아 있지. 점심 먹고 나서 열심히 연습시켜야겠다.’

“선생님, 저희가 봉진초를 이길 수 있을까요?” 은정이가 점심을 먹고 나서 윤표쌤에게 와서 묻는다.

“봉진초는 키는 그렇게 크지 않은데 공간을 진짜 잘 쓰는 것 같아. 그리고 기본기가 진짜 탄탄한 것 같고.”

“그럼 어떻게 해요? 이기고 싶은데?” 은정이 옆에서 씩씩 거리는 효주가 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떻게 하긴, 해 왔던 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지.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전술이나 전략은 익히기 힘들어.”

“쌤. 근데 진짜 포기만 하지 마요.” 하은이가 신신당부하는 말투로 윤표쌤에게 말한다.

“포기를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막 A조가 5점 이상씩 차이 나도 괜히 아까처럼 B조, C조랑 바꾸지 말라고요.” 윤표쌤의 질문에 하은이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 대신에 하은이도 이제부턴 멘털 챙겨. 아까 있었던 일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이미 지나갔으니까.”

눈물을 쓰윽 훔치며 하은이가 알겠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너희는 열심히 뛰어. 나도 죽기로 소리치면서 지도해 줄 테니까.’

“제14경기 대전 봉진초 대 서울 세라초의 경기가 펼쳐지겠습니다. 선수들 라인 업 해주세요.”

심판의 안내 방송을 듣고 대전 봉진초 선수들과 서울 세라초 선수들이 일제히 그라운드에 모여 정렬했다. 봉진초 선수들은 능성초와 정반대로 선수들 모두가 까무잡잡한 피부에 듬직한 체형을 갖추고 있었다. 타고난 피부가 아니라 뜨거운 태양빛으로 그을은 모양새였다. 봉진초의 코치도 선글라스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피부가 새까맣게 타 있는 것을 보고 윤표쌤은 생각했다.

‘그 더운 7,8월에도 꿋꿋하게 실내가 아닌 운동장에서 연습한 흔적이다. 이번 경기도 쉽지 않겠어.’

“선발 라인업 정렬해 줄게. 은정, 우림, 하은 3명이서 후방에서 수비와 볼 배급을 동시에 할 거야. 그리고 허리 라인은 유서윤과 정서윤으로 할게. 유서윤은 왼쪽 사이드 라인, 정서윤은 포핸드가 좋으니 오른쪽 사이드 라인을 맡을 거야. 그리고 최전방은 안효주, 이주은이 맡고. 질문 있는 사람?”

“없습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최선을 다해보자. 구호 시작.”

“세라! 세라! (쿵)(쿵) 파이팅!”

그렇게 2경기의 서막이 올랐고 세라초의 풀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봉진초 선수들은 선수들 하나하나를 일대일 마크를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지역 방어 시스템으로 사람을 막는 게 아니라 공간을 막는 플레이를 구사했다. 그러다 보니 은정이와 우림이가 패스가 우리 팀에 채 닫기도 전에 중간에서 끊기기가 일쑤였다.

“서윤이랑 서윤이! 상대편 뛴다. 쫓아가야 돼!” 윤표쌤의 목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봉진초의 양 쪽 사이드 라인에서 질풍처럼 두 명의 봉진초 선수가 뛰어 들어갔다. 한 템포 빠른 경기력을 구사하는 탓에 경기의 흐름을 쫓아가기 힘든 세라초는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뛸 뿐이었다.

“캐치! 봉진초 득점”


‘공간 수비에 능한 팀이라면 공간을 뚫고 지나가기만 하면 대책이 없으리란 말씀.’

“선수 교체 하겠습니다.” 선수 교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은이가 윤표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기하지 말아요 제발. 윤표쌤. 부탁이에요.’

“걱정하지 마! 포기 안 해! 선수 교체요! 조민아, 안효주랑 교체.”

민아가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부리나케 그라운드 쪽으로 나왔다. 늘 해맑던 민아의 두 뺨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채로 말이다.

“민아야. 걱정하지 말고. 은정이랑 우림이를 믿고 엔드 라인 근처에서 기회가 나면 뛰어들어가 알았지?”

“흑흑. 알겠어요. 선생님. 흑흑”

민아는 그라운드에 들어가자마자 윤표쌤의 주문대로 봉진초 선수들의 시선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 사이 빈 틈을 발견한 우림이는 지체 없이 롱 패스를 뿌렸다.

“캐치! 세라초 득점!” 세라초의 벤치에서 다시 한번 환호성이 울렸고 윤표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응수했다.

“아직 5분이나 남았어. 지금은 3점 차이 밖에 안나. 포기하지 마! 라인 올리고 앞에서부터 커트하라고”

“커버가 늦어. 내가 말하는 순간 이미 늦은 거야.”

고요한 봉진초의 벤치와 달리 쉴 새 없는 주문과 격려로 세라초의 벤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우림아, 더 길게 봐야 된다.”

흑흑흑....


“선생님.... 눈물이 멈추지를 않아요... 엉엉”


저 멀리서 민아가 경기와 상관없이 뛰어와 윤표쌤에게 말한다.

흑흑흑...

그 말을 들은 벤치의 선수들은 하나 같이 모두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울부짖음이 짙어질수록 윤표쌤의 근심과 걱정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윤표쌤은 힘에 잔뜩 들어갔던 주먹을 내려놓으며 선수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내가 좀 더 유능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경기 종료! 대전 봉진초 대 서울 세라초의 경기는 9:3. 봉진초가 승리했습니다. 양 팀 정렬하고 상호 간의 인사.”

“선생님, 진짜 봉진초 선수들 싸가지 겁나 없어요. 저랑 아까 부딪혀 놓고 입 모양으로 ㅅㅂ하고 갔어요.”

경기가 끝나고 은정이가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윤표쌤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심판이 그래서 주의 주고 물러갔잖아.” 윤표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러면 저런 것은 비매너로 퇴장 주고 재경기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은정이가 분이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씩씩거리며 얘기하는 것을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았다. 아니, 동조해주지 못했다. 그만큼 세라초는 전국대회에서 실력의 큰 한계를 느끼고 조별리그 최하위로 경기를 마쳤다.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선수단은 일제히 학생 버스에 올라 서울로 상경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오늘따라 더욱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동안 버스에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저 새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볼 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뜨겁게 타오르던 세라초의 열정은 이미 다 타고 없어졌으며 야속하게도 노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발갛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다녀왔어.” 윤표쌤이 들어가니 불은 다 꺼져 있고 사방은 조용하다. 슬쩍 안방 문을 열어보니 와이프와 아들, 딸 모두 세상모르게 곤히 잠들어 있다. 윤표쌤은 짐을 풀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 검은색 봉지를 열어 자은 소반에다 올려놓는다. 윤표쌤이 집에 들어오면서 포장해 온 옛날 통닭이었다. 날개를 하나 뚝 떼어 우적우적 씹으며 TV를 본다. 그저 TV를 켜놓았을 뿐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날개를 한 입 더 베어 문다. 우적우적 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렇다. 윤표쌤의 눈에서 눈물이 멈출 줄을 모르고 솟아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린 정말 치열했고 멋진 한 해를 보냈어. 져서 흘리는 눈물일까. 모든 게 끝이라서 아쉬움에 나오는 눈물일까.’

윤표쌤의 눈물은 그렇게 밤이 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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