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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요샌 겸상하기 싫습니다.

글쎄요 저는 밥상 앞에서 저래 본 적이 없어서

by 홍윤표

이사하고 나서 주방이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요리를 예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할 수 있게 되었죠. 요리 실력을 뽐내고 싶다기보다 전 그냥 주방에서 요리에 몰입하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제가 밥상을 차렸는데 잘 먹지 않아도 그것은 크게 저에게 서운한 일은 아닙니다. 저녁 먹기 전에 군것질을 해서 그럴 때도 있고, 차려놓은 반찬이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럴 때도 있죠. 그런데 무엇보다 저를 화나게 하는 것은 전날 미리 먹고 싶은 음식을 의뢰받아 차려놨는데 밥상에 앉자마자 다른 거 먹고 싶다고 하는 행위입니다. 어렸을 때 밥상머리교육을 엄하게 받은 세대여서 그런지 그런 말을 들으면 좀처럼 인내하기가 힘듭니다. 밥상 안 엎은 게 진짜 다행일 정도로 엄했기 때문이죠.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최대한 아이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있지만 이런 식의 리액션은 부모 입장에서 기분이 썩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누구보다 급식을 잘 먹는 아이인지라 '그래, 밖에서 사회생활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며 최대한 이해하긴 하지만 그게 올바른 교육인지는 의심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잘 먹지 않던 치킨, 피자 등의 배달음식에 눈을 떴는지 틈만 나면 배달시켜 달라고 합니다. 첫째는 그렇다 치더라도 둘째는 아직 좀 더 어린데 또래 아이들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 관리의 필요성도 다분히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틈틈이 소고기, 새우 등의 고단백 식사와 함께 오이, 상추, 당근 등의 녹황색 채소도 곁들여 건강한 저녁 밥상을 차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하원 후에 참새방앗간처럼 들렀던 편의점도 가지 않을 계획이고요. 요즘 티니핑 스티커에 푹 빠진 아이들이 티니핑 솜사탕이며, 빵, 젤리 등을 사달라고 해서 사 먹였는데 이건 좀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애들 하루 종일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했고, 몇 푼 한다고 이걸 안 사줄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사줬습니다만. 당분간은 횟수와 조건을 규정해 놓고 약속을 지키는 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른 집에서는 저녁 식사시간에 어떻게 교육시키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아이들은 식탁 앞에 좀처럼 오래 집중해서 앉아있지 못합니다. 밥 먹다 말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물 마신다고 정수기로 쪼르르 달려가기도 하죠. 또 소파를 이리저리 정글짐처럼 넘나들며 장소를 옮기기 일쑤입니다. 그 일련의 행위를 마주 보고 있을 때마다 저는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도무지 있을 수도 없었고 있었다간 밥을 굶거나 숟가락으로 맞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럴 때 저를 도와주는 것은 와이프입니다. 와이프가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해서 아이들을 한 술 더 뜨게 도와주니까요.


'저는 솔직히 아이들과 겸상하기 싫은데 와이프 눈치 보느라 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아이들의 올바른 식습관을 형성하는 데 좋은 아이디어가 무엇이 있을지 심사숙고해 볼 생각입니다. 한 번 아이들과 식사 과정을 함께 준비해 보는 것을 어떨까 싶었습니다. 쌀도 함께 씻어보고, 계란도 함께 까 보면서 말이죠. 그동안 불 앞이라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함께 안전하게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깨닫는 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조막손으로 자신들의 저녁을 만들어 먹었더군요. 실행력이 우수한 우리 와이프가 저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재료를 일일이 다 준비했더라고요. 혼자 회식하고 타코를 배불리 먹고 온 제가 되려 머쓱해진 순간이었습니다.

두 자식 상팔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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