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라톤 코치 빽마녀』를 읽고

저도 어떻게 수제자로 좀 안될까요...?

by 홍윤표

오늘 아침도 출근 전에 17km를 뛰고 왔다. 출근 전 새벽에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정신이 더 또렷해지고 소위 말하는 폼이 올라온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출근 전 새벽에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남은 하루가 더 힘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한다. 그런데 90~100분 달리기를 하는 동안 치울 것과 비울 것, 덜어낼 것과 정리할 것들이 몸과 마음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아 개운한 느낌이다. 오히려 뛰지 않은 날이 뛴 날보다 컨디션이 더 안 좋을 정도이다. 그리고 호기롭게 11월 마라톤 대회 풀코스를 신청해서 지난주부터 주말에 한 번씩 30km 이상 달리는 중이다.

달리는 과정이 늘 순탄치 많은 않다. 나는 소위 말하는 Long slow distance 러너 (일명 LSD 러너로 장거리를 느린 속도로 뛰는 러너) 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단축시키기 위해 페이스를 올렸다간 몇 km 채 뛰지 못할뿐더러 체계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독학 러너라 무리하면 바로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빽마녀' 의 피지컬이 매우 부럽다. 국제 대회 500개 이상에서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은 베테랑인 데가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그야말로 '넘사벽' 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격이 불같은 데다 속담이나 고사성어를 논할 때 실수가 조금 있긴 하지만.

그런 빽마녀에게도 시련은 존재하는 법. 주술시장님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빽마녀는 늘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식 마녀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녀에게 인간계로 내려가 인간들의 마라톤 대회에서 1위 선수를 만들어오면 공인 마녀 자격을 주겠다는 조건이 주어진다. 이 말을 들은 빽마녀는 마라톤에 재능 있는 아이를 찾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 초등학교의 육상부에 코치로 들어가 마법을 써서 사무실을 차리고 공개 오디션을 열어 선수 선발에 집중하던 찰나. 한창 즐겁게 뛰놀아야 할 아이들이 곤경에 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기록 칩으로 아이들의 능력치를 조사해 보니 충분히 마라톤 1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유망주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갑자기 배탈이 나기도 하고 발목을 다쳐 오기도 한다.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운동선수로서의 재능이 부족하다.', '그 정도 노력으로는 어림없다.'라는 말을 들으며 마음에 상처까지 안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소 까칠하지만 정의감 하나만큼은 최고인 빽마녀가 마법을 써서 원인을 분석해 보니. 아뿔싸! 모든 아이들의 아픔에는 어른들의 도덕적 해이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산책 중인 강아지의 똥을 치우지 않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떡볶이를 만들지 않나. 어른들은 하나 같이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긴커녕 문젯거리만 일삼는 못난이들이었다.

그렇게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주며 선행을 베푸는 빽마녀의 모습은 그를 뒤쫓고 있는 강법사와 토깽이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들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모여 살며 빽마녀에게 미션을 부여한 주술 시장이 보낸 스파이로서 빽마녀가 마법을 쓰지 않고 인간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지 철저히 감시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마라톤의 매력을 마음껏 인간들에게 전해주려는 빽마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시리즈물로 제작된 스토리라 1권에서는 빽마녀가 지금 찾아온 초등학교에 최정상급 마라톤 유망주가 보이지 않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른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앞으로의 여정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빽마녀는 마라톤 대회에서만 마법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고 판단한 탓인지 아이들을 도와줄 때나 사무실을 차리고 정리할 때 등 여러 군데에서 마법을 사용하여 임무 수행의 효율성을 더하고 있다.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러너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빽마녀에게 '원데이 클래스'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빽마녀는 팔 치기, 호흡 법에 대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치님은 아니시지만 (워낙 타고난 피지컬이 출중하신지라...) 뭐 하나라도 교정을 잘 잡아주시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서다. 아니면 평소 외우고 다니시는 주문법을 전수받아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몰래 마법을 쓰고 하루에 1번만 쓰겠다는 특약을 걸겠다고 어필을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렇게 빽마녀의 도전은 오늘도 진행 중이며 이에 발맞춰 나의 마라톤 도전을 향한 준비도 계속된다. 작가 이여주 님도 강화도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종종 러닝을 하신다고 하니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만나 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슬며시 해보았다.


'이러나저러나 안 뛴 것보다 뛰는 것이 낫기 때문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