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의미는 많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지에 도착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떠나는 것 자체가 주는 기대감과 설렘이 더 큰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결과나 성취 등과는 별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비슷한 결로 나타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실수와 실패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교훈을 발견하거나 다짐 또는 결심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믿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또 더 나은 내일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자양분이 되고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첫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에 갔을 때 그 나라에 가면 뭘 볼 수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공항에 머무르고 탑승수속을 밟는 그 일련의 과정이 주는 바이브에 크게 매료되었거든요. 집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흥겨운 스텝을 밞던 첫째의 모습이 아주 눈에 선합니다.
이처럼 여행의 목적지 자체보다 가는 과정 그 자체를 만끽하고 몰입하여 즐기는 태도를 스페인어로 '바실란도' (Vacilando)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분노의 포도'로 유명한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스타인백의 저서 '찰리와의 여행'에 등장합니다. 스타인백은 이 단어를 '어딘가로 가고는 있지만, 그 목적지에 도착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감자 산지인 아루스투크에 가겠다는 '방향'은 정했지만, 실제로 감자를 한 알도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바실란도' 상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에게 있어 '동해 바다'를 여행한다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동해안에 가서 근 몇 년간 해수욕을 한다거나 서핑, 스노클링 같은 수상레포츠를 즐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뭐 특별히 가고 싶은 명소나 명당도 없고요. 그저 그곳을 갈 수 있는 짬이 나서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 그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평온함과 여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가는 것뿐입니다. 저만의 '바실란도' 상태를 만끽하기 위해서죠.
이러한 바실란도(Vacilando)가 내포하는 특징은 많은 철학자들이 행한 사유의 여로에서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조르주 판 덴 아빌(Georges Van Den Abbeele)의 저서를 티모스 머레이가 비평한 『몽테뉴에서 루소까지 : 은유로서의 여행』에서 '여행'이 단순한 이동을 넘어 어떻게 철학적 은유로 사용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여행이란 집을 떠나는 손실의 행위일 수 있으나, 결국엔 다시 회귀함으로써 그 공백을 메우고 자아의 연속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으로 묘사합니다. 그 끝에 결론이 나거나 획기적인 깨달음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여행 자체가 '나'를 다스리는 데 있어 효과적인 도구라는 이야기입니다. 존 스타인백의 『찰리와의 여행』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저 정처 없이 흘러가는 여정 속에서 60년대 초 미국의 실상과 정취를 직접 보고 느끼면서 각종 사회 문제와 표준화 현상 등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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