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휘날리며 아빠는 펜을, 너희는 색연필을
오늘은 유치원이 아닌 조금 특별했던 아이들과의 주말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동네 광장에서 백일장&사생대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주말에 딱히 할 거 없었는데 잘 됐다는 마음으로 신청하여 다녀왔습니다. 나들이 가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회장에 갔는데 중, 고등학생들이 학원 선생님, 부모님과 대동해서 입시 미술을 선보이는 장이었고 우리 가족은 들러리에 가까웠죠. 쓱 둘러보니 우리 아이들과 같은 미취학 아동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오신 부모님들은 꽤 많았지만요.
'그렇담... 혹시...?'
하는 마음으로 미취학 아동 출전 명단을 살펴보니 4~5명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자유롭게 너희의 상상을 펼쳐보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고 아들, 딸은 잭슨 플록 빙의한 듯 '뜨거운 추상'을 마음껏 선보였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옆에 계신 어르신이 연필을 정갈하게 깎아 원고지에 글을 쓰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글을 쓰는 어른의 모습은 별로 없더라고요.
'그렇담... 혹시...?'
슬쩍 접수처에 가서 '백일장-일반부' 명단을 보니 마찬가지로 4~5명 남짓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쇼미더머니 6에서 지구인 응원 갔다가 떨어지는 거 보고 바로 현장 접수했던 행주의 모습 빙의해서 나도 백일장 현장 접수를 하여 글을 썼습니다. (참고로 행주는 그 시즌에서 쇼미더머니 우승을 거머쥡니다.) 30여 년쯤 되었나 봅니다, 원고지에 글을 써 본 지가. 어렴풋한 기억 되살려 20칸의 원고지를 눈짓으로 배분한 뒤 균형을 맞추어 제목을 쓰고 다음 줄 하단 오른쪽 정렬로 이름과 소속을 썼습니다. 아직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는데요. 교내 글짓기 대회 입상을 어지간해서 놓치지 않았던 덕분인 듯했습니다.
주제는 '남양주의 봄'이었는데 제가 사는 고장은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고 최근에 스페인 철학 '바실란도(Vacilando)'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기에 그것들을 잘 버무려 글을 썼습니다. 바실란도란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 그 여행 자체 과정을 음미하는 여유'를 나타내는 단어인데 오늘 제가 여기 온 이유와 결이 비슷했거든요. 나름 머리를 굴려 5~6 문단의 기승전결을 갖춘 글을 써서 제출했습니다. 발표가 5월 1일 금요일이라는데 근로자의 날 겸 자율휴업일이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어쩌면 예년과는 다른 특별한 5월 첫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봅니다. 결과가 기대한 것만큼 이뤄지지 않더라도 전혀 실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여기 와서 가족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만든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소망이와 구름이의 유치원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