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에세이 챌린지] 41. 생활계획표

감히 육아대디가 생활계획표대로 살고 싶어 하다니

by 홍윤표

이 맘 때가 되면 초등학생들은 방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방학계획표를 작성한다. 미술 실력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방학 때도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 최대한 지켜보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로 진행하는 것이다. 동기 유발 자료로 '안녕 자두야' 생활 계획표 편을 보여주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듯 영상 속 담임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생활 계획표를 정성껏 작성하도록 하셨다. 학생들은 저마다 동그란 원에 자로 예쁘게 줄을 긋고 자신이 방학 때 할 활동별로 구역을 나눈 뒤 알록달록 색을 칠해 각자의 생활 계획표를 제출했다. 그런데 예상 치 못한 곳에서 인생의 큰 메시지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주인공 자두의 생활 계획표를 보고 나서다.

"방학 중 생활 계획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물론 실제로 이렇게 작성해 온 답을 본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이내 다시 들어가서 좀 더 자세하고 깊이 있게 생활 계획표를 작성해 오기를 권장할 것이다. 잠은 얼마큼 자는지, 운동은 어떤 운동을 언제 할 것인지, 학원 스케줄은 요일별로 어떻게 되는지 적어서 잊어버리지 말고 스케줄을 진행해 보라고 유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초등학생인 너희들이 부럽기 때문이다. 적어도 너희들은 학원 끝나고 친구들이랑 PC방을 갈 수 있고, 상가 앞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를 삼삼오오 먹을 수 있지 않는가. 특히 6학년 여학생들이 생활 계획표에 학원 끝나고 무엇을 하며 어디를 갈지 빼곡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코인 노래방 가기, CGV 가서 영화 보기, 친구들과 팥빙수 먹으러 가기 등 듣기만 해도 설레고 재미있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빠인 나는 이번 방학도 꼼짝없이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육아대디의 사명인 것을.


생활계획표 작성 시 도움이 될 동기 유발 장면으로 '무한도전 생활계획표 특집'을 보여준다. 각자 스타일대로 생활계획표를 개성 있게 작성하도록 안내하기에 좋은 자료이기 때문이다. 6명의 멤버가 주어진 여비를 가지고 자신만의 하루 계획표를 작성하며 움직이는 데 유독 정형돈만큼은 숙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침에 잠시 밖으로 나와 점심,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간 다음 하루종일 숙소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마음속 한 구석에서 자리 잡은 외마디가 똬리를 틀며 입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쓴다.


"부. 럽. 다."


우선 12시부터 8시까지 취침시간이 철저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삼시 세 끼를 온전하게 챙겨 먹을 수 있으며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마음껏 시청할 수 있다. 주변이 조용하고 환경이 고요하니 음악감상이나 독서도 가능하다. 심지어 오후 8시부터 12시까지 '휴식 및 개인정비'시간이니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해도 되고, 누군가와 근사한 밤을 보내기 위해 요리를 준비해도 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해 써도 되니 이만큼 근사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무엇보다 우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하루 중에 제일 뜻깊고 즐겁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다 퇴근하고 그 이후가 세상 무엇보다도 더 정신없지만 말이다. 육아대디인 아빠는 오늘도 학생들의 생활 계획표와 정형돈의 생활계획표를 보며 대리만족을 했다. 개인정비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오늘을 마무리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결국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자랄 테니 오늘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음을 감사하련다.


"여름방학이 34일이나 되네... 이번 방학엔 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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