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야 꺼야 할꺼야 혼자서도 잘 할 꺼야
아들이 태어난지 9개월이 접어들면서 부쩍 혼자 힘으로 하고 싶어하는 게 많아졌다. 그 일환으로 이 달부터 자기주도이유식을 시도해보았다. 물론 먹는 것보다 바닥이나 식탁에 흘리거나 날리는(?) 음식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음식을 아기 스스로 탐구하고 오감을 활용해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하게 주었다. 아들은 자기주도 이유식 먹기를 꽤나 잘 해주었고 이 과정은 무엇보다 아들의 '내가 할 꺼야'라는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자기주도이유식을 시작했을 때 부터 분유의 양을 조금씩 줄이기 시작했다. 돌 되기 전까지 단유를 시도하고 싶었고 그게 발달단계 상 시의적절하다는 의견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분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조금씩 먹는 분유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아들의 '내가 할 꺼야' 습관은 생활 곳곳에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엘레베이터 버튼을 자기 스스로 누르고 싶어하고 초인종 버튼도 누르고 싶어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물체를 만져보고 시시각각 변하는 LED 숫자가 신기한 모양이다. 별 것 아닌 행동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이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아들은 떼를 쓰며 엉엉 울기 시작한다. 육아 선배들이 하나같이 '내가 할 꺼야' 습관은 되도록이면 인내심을 갖고 충족시켜주어야 발달 상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인내심을 갖고 되도록이면 하고 싶어하는 행동을 모두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인내하던 시기이다.
앉음마가 가능해지고 소근육이 발달하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이 놀잇감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당시 아들은 부엌까지 기어가서 서랍에 있는 주방도구를 꺼내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스테인리스 재질로 된 물건에 깊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직접 물고 빨고 만져보면서 가재도구를 탐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무렵 '아기 체육관'에 대한 관심은 시들고 'zany zoo'라는 놀잇감에 깊이 빠져있던 시기이다. 나무 장식들을 빙글빙글 돌리거나, 구슬 장식을 주어진 라인에 맞추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사물에 대한 판단력을 스스로 기르던 시기였다. 특히 이 놀잇감은 앉아서도, 일어서서도 할 수 있기에 신체 능력 향상에도 제법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도 아빠는 이유식을 만든다. 아들의 먹는 속도와 배변활동의 상태로 볼 때 충분히 중후반기 이유식을 도입해도 무리가 없는 시기였다. 갈은 소고기는 늘 빼놓을 수 없는 요리의 베이스로 놔둔 채, 여러 가지 야채, 두부 등을 쓰임에 맞게 혼합하여 이유식을 제조했다. 날이 더워 항상 이유식은 적당히 실온에서 식힌 뒤 바로 냉장고로 옮겨 두었다. 한편 이유식을 만들다보니 남는 식재료가 많이 발생하여 이유식 만드는 김에 바로 밑반찬도 5~6종으로 만들어 차곡차곡 보관용기에 담아두었다. 취사병 출신이기 때문에 음식 만들고 치우는 데에는 걱정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와이프가 퇴근하기 전 집안일까지 성실히 수행했다.
지난 6월, 강원도 여행을 다녀 온 후 세 가족이 장거리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부터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전국의 방방곡곡을 가보기로 했다. 어떤 주말은 경주를 방문하여 대릉원과 동궁과월지 야간 투어를 위해 다녀오기도 하고, 또 다른 주말에는 충청권의 단양이나 공주 등의 리조트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로누적은 전혀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미 연애할 때 왕복 150km씩 거뜬히 운전하던 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들과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동해 힘이 저절로 불끈 솟아났던 시절이었다. 이 때 너무 많은 곳을 경험했던 탓이었을까. 4살이 된 우리 아들은 요새 통 여행이란 것을 가기 싫어하고 가더라도 당일치기를 고집한다. 잠은 꼭 집에서 자야한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멋모를때 여기저기 많이 여행 갔던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그렇게 아빠로써 육아휴직을 5개월 정도 하며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와이프가 대뜸 나에게 진지한 태도로 제안을 하나 한다.
"오빠, 혹시 코로나이기도 하고
임신한 상태로 직장생활하기 좀 버거운데.. 조기 복직 해줄 수 있어?"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다소 당황하였지만 둘째를 생각해보았을 때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흔쾌히 승낙을 했다. 바로 이 사실을 근무하는 학교의 관리자에게 얘기해서 내 거취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고 다행히 학교에 내가 돌아갈 자리가 남아있었다. 8월 마지막 주 개학하는 날부터 2학기 학사일정이 시작되어 출근하라는 언질을 받고 나는 근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정리하기 위한 채비를 나름대로 갖추기로 했다. 와이프가 고맙다며 혹시 방학 중에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응, 우리 8월에 제주도 갔다 오자. 아들이랑"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코로나로 인해 해외로 가는 노선이 모두 막혀있었을 때, 태교 여행으로 다녀온 제주도. 복직하기 전에 셋이서 제주도를 다녀오는 것을 선물로 받고 싶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뱃속에서 듣고 느끼는 게 전부였을 제주도를 아들에게도 선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뜨거운 2021년 7월이 가고 8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설렘을 가득 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