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나라별 특징을 조사해 오라고 숙제를 내주신 적이 있다. 그 조사한 내용을 모둠원끼리 모아서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이었고 나는 내가 맡은 나라에 대해서 백과사전, 잡지, 인터넷을 뒤져가며 성실하게 자료를 준비해 갔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자료를 만드려고 각자 조사한 내용을 꺼내놓았는데 이게 웬걸. 아무도 제대로 준비를 안 해 온 것이다. 게다가 제일 쉬운 미국을 조사한 친구는 노트에 덜렁 '핫도그' 하나 써놓고 만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둠은 내가 조사해 온 자료를 가지고 하나의 나라만 조사해서 발표하는데 그쳤다. 그 이후로 나는 조별과제에 흥미를 잃었고 개인별 과제로만 온전히 평가받기를 원했다. 자료를 위해 들인 노력에 대비해 인정을 받는 총량이 턱없이 모자라다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니 도무지 조별 과제라는 늪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특히 대학 강의는 거의 90%가량의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진행했고 그때마다 이른바 '무임승차'를 노리려는 하이에나들은 여지없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조별 과제 시, 가장 오랫동안 과제와 씨름하는 입장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과제 초반에 주제 선정과 역할 분담은 리더가 하는 일이요, 과제 말미에 최종적인 검토와 발표를 하는 것은 발표자의 몫이었다. 그 사이에 끼인 역할을 좋아하는 입장으로써 늘 과제의 시작과 끝까지 과제의 끈을 가장 길게 갖고 있어야 했는데 이때마다 여지없이 '무임승차'들의 빌런짓이 내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12시까지 보낸다고 했으면 보내야 추가 자료를 만들고 편집할 것 아니겠는가. 바닷가 사는 것도 아니니 잠수 타는 것도 그만들 좀 하고.
그렇게 '무임승차'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살아가던 어느 날, 우리 아기들과 함께 아기상어 에피소드를 함께 시청했다. 내용은 핑크퐁이 바다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숨어있는 상어 가족들을 찾는 것이었다. 중간에 핑크퐁을 헷갈리게 하는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 등장하고 그 친구들은 각자의 대사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모든 상어 가족을 찾아낸 핑크퐁을 위해 파티를 진행하기로 한 마지막 장면. 나는 '무임승차'한 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급발진을 해버렸다.
"아니, 저 펭귄은 이야기 내내 어디 숨어있다가 파티한다고 지금 몰래 등장하냐? 치사하게"
나도 모르게 약이 바짝 오르고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정말 킹 받는 순간이었다. 펭귄은 정말 에피소드 내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핑크퐁을 헷갈리게 하는 숨바꼭질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고, 파티를 시작한다는 멘트에만 등장한다. 옆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와이프가 '또 시작이냐'며 비웃지만 나는 저 펭귄을 보면 초등학교 같은 모둠이었던 '핫도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 조별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싫어하는 친구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 아이들은 함께 하는 활동 자체가 불편하다기보다 혼자서 과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과제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게임 형식의 플랫폼을 굳이 더 많이 도입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그래야 무임승차자도, 개인플레이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각자의 방식대로 노력하고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무임승차'자는 개선의 여지가 뚜렷하다.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배움이 아직 느리기 때문에 회피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초학력부터 차근차근히 도와주고 격려해주면 된다. 선생님이 도와줄께. 대신 커서는 그러지마. 누군가가 급발진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