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맡은 교과는 4학년 음악. 업무는 영재업무였다. 수년간 학년부장과 특수부장을 겸했던 터라 맡은 과목과 업무의 부담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 교과 특성상 아이들의 음악적 역량을 기르고 일상생활에서 즐겁게 음악을 자유로이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래서 택한 것이 나는 케케묵어 방 한 칸을 자리 잡고 있던 Djing 기계들이었다. 코로나 시국이 계속 지속되어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하던 시기. 비대면 수업 때는 패들렛, E학습터, 뉴쌤 등의 플랫폼을 활용해 교과서 제재곡을 익혔고 대면 수업 때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Djing 기계를 활용해 직접 플레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나는 몇 개월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교직 생활에 금세 적응했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렇게 교과 시간을 마치고 교재연구를 마치고 나면 오후 2시 40분. 별다른 회의나 연수가 없는 날에는 매일 2시간씩 주어지는 '육아시간'을 쓰고 이른 귀가를 할 수 있다. 좋은 말로 할 때 귀가이지만 이제 육아대디로 거듭난 이상 '귀가'가 아니라 '온 앤 오프'라고 하는 편이 낫다. 학교에서의 업무 버튼은 'off'하고 아빠로서의 업무를 'on'하는 것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이제 제법 배가 부른 와이프와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는 첫째가 있다. 9월이긴 하지만 3~4시 경은 아직 무덥기에 실내에서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기로 했고 때마침 우리 오피스텔 1~2층에 실내 동물원이 생겼다는 소식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1층은 실내 동물원으로 도롱뇽, 풍뎅이, 토끼 등의 작은 동물부터 알파카 등의 큰 동물까지 여러 종의 동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2층은 식물이 무성한 베이커리 카페와 한쪽에 200명 정도 동시 수용이 가능한 키즈테마파크가 있었다. 건물 자체가 공실이 많아 평일 이 시간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어 휑했는데 모처럼만에 아이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니 사람 사는 동네 같아서 좋았다. 아들은 늘 그렇듯 탐색하고 관찰하는 데에만 1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했고 엄마아빠의 적극적인 응원과 설득에 힘입어 동물원 입성에 성공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인간 이외의 타 생물체에 대해서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은 듯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다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토끼와 햄스터를 보고 달려갈 때 우리 아들은 소스라치며 엄마와 아빠의 품을 찾았다. 동물원 방문은 아직 시기상조인 듯싶어 2층 키즈카페에서 볼풀공과 슬라이드를 타며 놀았고 편백나무 조각과 블록을 활용한 장난감도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다.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아들은 지금도 한결같이 동물은 싫어하고 키즈카페를 좋아하는 걸로 봐서 그냥 선천적으로 타고난 취향이 저 때부터 확고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출퇴근을 반복하고 온 가족과 저녁시간을 함께 하던 어느 날 밤, 아들이 화들짝 깨더니 집이 떠나가라 꺼이꺼이 운다. 근래에 이렇게 서럽게 운 적이 없어 당황해하며 몸을 만져보니 불덩이 같았다. 체온계를 급히 찾아 열을 재어보니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와 있다. 코로나 양성인가, 응급실을 가야 하나, 해열제로 일단 열을 잠재울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우선 가재수건에 찬물을 적셔 온몸 구석구석 닦아 주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다음 와이프가 가지고 온 해열제를 먹이고 다시 고요함이 감돌 때까지 아들을 하염없이 안아주었다. 그렇게 3~40분이 지났을까. 울 힘조차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된 아들은 완전 파김치가 되어 잠이 들었고 그 이후에도 2~3번은 더 자다 깨다를 반복 하며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후, 병원을 다녀온 와이프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양성인줄 알았는데 돌발진이래. 이 맘 때 아기들은 다 한번씩 겪는 성장통이래"
살면서 처음 듣는 단어였다. 돌발진이란 일명 '돌치레'라고 으레 알려져 있는 육아 용어로, 생후 12개월을 전후로 해서 온몸에 수포가 난 것처럼 발진이 일어나고 원인 불명의 고열을 동반한 증상을 말한다. 전날 그렇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한 아들의 몸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빨간 점들이 가득했다. 아기들이 이 시기에는 꼭 한 번씩 겪는 성장통 같은 현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란다. 이 과정을 겪어야 면역력이 한껏 상승하고 추후의 잔병치레를 덜 하게 되어 오히려 겪으면 좋을 현상이라고 덧붙여서 설명해 주셨단다. 그렇게 한껏 돌발진을 겪은 아들은 다음날 정말 희한하게도 온몸을 휘감고 있던 빨간 점박이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이 날을 기점으로 한껏 걸음마가 훨씬 자연스럽고 힘이 실리는 모습이었다.
누구보다 아프고 괴로워했을 아들을 위로하듯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곧바로 찾아왔다. 코로나 시국이 2년 이상 지속되었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반화되던 시기라 추석은 조용히 처가댁과 본가에서 식사 한 끼 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과 나누어 먹고 그 와중에 아들의 개인기 타임이 점점 시간이 늘면서 마음만큼은 풍성한 한가위였다. 아들은 걸음마 보조기를 거의 한 몸인양 지니고 다니면서 처가댁과 본가 여기저기를 탐방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허벅지와 종아리에 균형을 잡고 발을 딛는 모습도 일반 사람들이 걷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때마침 처가댁이 주상복합 아파트라서 상가동 주변은 걸어 다닐 수 있는 장소가 꽤 많았기에 아들 걸음마 훈련도 시킬 겸 데리고 갔고 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걸음마 연습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주한 9월이 지나가고 드디어 우리 아들이 태어난 10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아들의 첫 번째 생일을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지 즐거운 고민을 하던 시기이다. 블로그나 주변 육아 선배들의 조언을 종합해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아들이 생일 때 입으면 어울릴 모자와 의상, 신발 등을 고르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