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중에서
새가 알에서 나와 세계를 마주하듯, 각자는 세계로 향하는 자신의 껍질을 부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몸부림의 시간은 길고 외롭지만,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해야 나를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새는 그저 ‘알’로 남는다. 때문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삶은 알껍질의 연속이다. 그 덕에 알을 깨어내는 행위도 끊임없이 계속된다. 내가 세상을 다 알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나를 덮쳤다. 어려운 형편이 엄마를 길거리 사과 장수로 내몰았던 순간, 아빠가 집이 답답하다며 문을 박차고 나가던 순간에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 나를 감쌌다. 사람들이 나를 어른이라고 부르던 순간, 헤어짐까지도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던 순간, 그리고 나만 외로운 것 같다고 느껴졌던 모든 순간마다 삶은 새로운 국면의 연속이었다. 다 알 것 같던 세상은 무너지고 이내 낯설고 두려운 세상이 나를 휘감았다.
그때마다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책에는 저마다의 알을 깨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적혀있었다. <연금술사>는 나에게 꿈을 가르쳐 주었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얼마든지 방황해도 좋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에토스를 점검해주었다. 바울은 불완전한 나를 격려해주었고, 예수는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이해하려던 사람들 덕분에 힘껏 몸부림 칠 수 있었다.
인문학이 멸시받는 시대다. 실용주의 시대에 뒤떨어지는, 돈 못 버는 학문이라고 조롱받는다. 나도 내 밥벌이를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하다. 때로는 ‘세상에 나만한 한량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인문학이 좋다. 누군가에게 인문학이 멸시받더라도,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 같은 것이더라도 나는 충분히 괜찮다.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가 없다. 그저 내 삶의 순간을 면밀하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그 문장이 좋고, 책이 좋고, 생각이 좋고, 글이 좋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인문학이란 가장 실용적인, ‘내 부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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