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촌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나는 촌스러운 DNA를 가지고 고있다. 이것은 자격지심인 동시에 정체성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경상도 출신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다. 번쩍거리는 서울로 이사온 건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나는아직도 서울에서의 첫 등교 전날 밤을 기억한다. 설레는 마음에 화장실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머리 가르마를 타보았다. 서울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삼척을 마음껏 자랑하고 싶었다.
삼척은 바다가 있어. 바닷가 사람들은 지평선을 보고 살기 때문에 시력이 매우 좋대. 나도 그렇거든.
몹시 설레던 등교 첫날, 기대와 달리 서울 친구들은 삼척에 바다가 있는지 나의 시력이 얼마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에 친구들은 나를 둘러싸고 구구단을 시켰다. 시골 촌놈이 구구단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 내기를 했다. 지금과 마찬가지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나는 셈이나 암기가 더뎠다. 나의 느림보같은 구구단 실력이 들통나자 온 몸이 힘껏 움츠러들었다. 서울에서의 등교 첫날이 조롱으로 얼룩진 이후로 내성적인 성격은 더욱 짙어졌다. 그때부터 나는 촌스러움이라는 내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다. 삼척에서 살았던 날보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날이 더 많다. 그럼에도 나는 문득 바다의 짠내를 기억한다. 나의 고향, 나의 촌스러움이 이제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파도가 보고 싶고 바다 짠내음이 맡고 싶다. 10여 년이 지나 시나브로 나는 내 촌스러움을 인정하기로 다짐했다. 이제는 나의 부모님이 사투리를 내뱉는 것, 농사꾼 집안이라는 것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
나는 프라푸치노보다 식혜가 편하고 마카롱보다 국화빵이 맛있다. 파스타보다 해물칼국수가 당긴다. 그것을 인정하고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촌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이 소중한 사실을 이제라도 말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나는 문득 수산시장의 축축함을 추억하고, 배 타는 아저씨가 주었던 생굴의 비릿함을 떠올린다. 이젠 더 이상 촌스러움이 부끄럽지 않다. 참고로 요즘엔 구구단도 곧 잘 외운다. 오늘 나의 촌스러움을 사랑하게 되어 다행이다. 외려 그동안 그것을 떳떳하게 여기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나는 촌스럽다. 나는 항상 바다의 짠내음을 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