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자화상

웃기고도 슬픈 풍경

by 느리게 걷기


바야흐로 회사도 평가의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평소에 일을 하지도 않고 존재감 없이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서 자신의 실익을 확실하게 챙기고 떠난 사람이나 1년 내내 열심히 일했는데 결정적인 순간 토사구팽 당한 불운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나 이 시기가 다가오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무대 뒤로 사라진 그 사람들 말이다. 오늘은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우리 회사는 매년 11월이 되면 일 년 동안의 성과를 보고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그 행사가 얼마나 거창하게 열리냐면 MBC 방송연예대상의 콘셉트와 비슷하게 진행이 된다.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나오는 음악이 웅장하게 나오고 무대도 거의 비슷하게 세팅이 되어 있다. 다른 점이라면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들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키가 크고 늘씬한 데다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활기차 보이고 멋진 슈트나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화려한 음악을 반주로 해서 무대 위로 올라오는 직원들은 대부분 생기를 잃은 사람들이다. 남자들은 대체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거나 약간의 거북목을 하고 있다. 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생활하는 바람에 명예로운 훈장처럼 달려 있는 뱃살을 숨기기 위해서 힘껏 숨을 참고 있는 데다 모처럼 꺼내 입은 불편한 정장 때문에 어딘가 촌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행사 중간에는 축하 공연이 열린다. 축하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행사 전문가가 아닌 바로 우리 직원들이다. 행사를 딱딱한 행사가 아니라 축제로 만들고 싶다는 부사장의 한마디가 부른 역대급 참사다. 사실 그 커다란 강당에 나와서 축하공연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다. 강당 맨 앞줄에는 임원들이 앉아 있고 그 뒷줄에는 상무보와 팀장들이 앉아 있다. 그 뒤에는 직원들이 앉아 있다. 수백 명의 직원들이 말없이 앉아서 오직 무대 위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의 강당 무대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득한 일이다. 그런 일이 술기운을 빌리지 않은 맨 정신으로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알 수 없다. 결국 부사장의 그런 소망 때문에 각 기관에서 축하공연을 할 사람들을 착출 했다. 우리 기관은 결국 희망자가 없었다. 평소 대학로에서 밴드 활동을 하는 직원에게 부탁했는데 차라리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1부가 끝나고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한 남자 직원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런닝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것은 런닝셔츠는 아닐 것이다. 목이랑 암홀이 심하게 파여 있는, 래퍼들이 입는 헐렁한 티셔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사람은 40대 후반의 심하게 마른 K과장이었다. 그는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목에는 굵은 실버 체인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에서 보면 역시나 그의 옷은 왠지 런닝셔츠처럼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살짝 리듬을 타는 듯이 몸을 흔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과감한 동작들을 선보였다. 그 춤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나오는 노래가 락이었으니 그 춤도 락커들이 추는 춤인 걸까. 하여간 열심히 추고 있는데 왠지 신나지는 않은 그런 춤이었다. 조금 더 솔직한 표현을 빌린다면 어딘가 안쓰럽고 좀 불쌍해 보이는 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그것도 직원들이 줄을 맞춰 앉아 있는 곳에서 무대에 올라 그런 의상에 그런 춤을 추다니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공연이었다. 끝날 듯 쉽게 끝나지 않는 그의 공연이 끝나고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기진맥진해 보였다. 땀을 흘리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런닝셔츠는 더욱 헐렁하고 늘어져 보였다. 음악이 멈추자 그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민망해하면서 무대 뒤로 빠르게 도망쳐 들어갔다. 우리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서 더욱 큰 박수를 보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다시 직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직원들은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였다. 어떤 여직원은 힘들었던 순간을 토로하다가 감격한 듯이 잠시 말을 멈추고 강당 뒤쪽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어서 어쩌면 눈물을 쏟을 것처럼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부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멘트를 하며 발표를 끝냈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비슷한 발언을 쏟아냈다.

" 부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사장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부사장님께서 제시한 방향으로 갔는데 결국 이뤄졌습니다" 판에 박힌 멘트에 사람들이 질려가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20대 후반의 젊은 아가씨였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통통하였고 볼에는 홍조를 띠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가지런히 정리하고 약간 상기된 얼굴의 그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이크를 들고 천천히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발표를 시작했다.

"저는 아부를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앞에 발표하신 분들처럼 입에 발린 말을 할 줄 모릅니다. "

뭐지, 일순 강당 안은 조용해졌다.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심하게 졸던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났다. 이 강당에 들어와서 2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행사 동안에 이렇게 신선한 멘트는 없었다. 심지어 이 멘트는 어딘가 솔직하고 순수한 느낌까지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 입에서 어떤 말들이 이어질지 자뭇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에게 집중했다.

" 그래서 저는 시조를 준비했습니다. "

그러고 보니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두루마리처럼 말려 있는 족자가 들려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펼치자 두루마리는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그곳에는 시조가 쓰여 있었다. 그것도 붓글씨로 말이다. 그 시조의 제목은 '용비어천가'였다. 그녀의 시조는 부사장님의 이름을 이용한 시조판 삼행시였다. 시조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사장에 대한 그녀의 절절한 존경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 발표 이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부의 말들을 노골적이고도 세련되지 못하게 표현하는 바람에 어떤 신선한 충격이나 감동도 선사하지 못한 것에 비해 그녀의 시조는 신선했다. 그녀가 직접 시조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꽤나 수준 높은 시조였다. 그녀의 예기치 않은 시조 공격에 가장 즐거워한 사람은 역시 시조의 주인공인 '부사장'이었다. 그는 행사 마지막에 일어나서 그 시조에 대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풀었다.

" 역시 아부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군요. 아부도 직장생활에서 꼭 필요한 지혜입니다. 저는 오늘 P대리의 시조를 듣고 너무 즐거웠습니다. "라고 그는 노골적으로 만족과 뿌듯한 감정을 드러내 보였다. 결국 그 날 행사는 즐겁게(?) 끝났다. 그리고 P대리는 그 해 연말에 승진을 했다. 수많은 직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재고 본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고 싶어 했던 그녀의 욕망대로 그녀의 용비어천가는 압권이었고 그녀의 이름 석자는 이제 부사장뿐 아니라 우리 조직에 있는 수많은 직원들의 머릿속에도 완전히 각인이 되었다.

그리고 러닝셔츠를 입고 이상한 춤을 추던 그 과장님도 승진을 했다. 그 날 날씨가 꽤나 쌀쌀했는데 그렇게 목이 많이 파인 런닝셔츠, 아니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을지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었다.


역시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먹고살기 참 힘들다는 것이다. 누군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어설픈 축하 공연을 하고 싶었을 것이며 또 누군들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 그런 낯간지러운 시조를 진심으로 낭독하고 싶어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연기의 달인이 되어 버렸다. 기분 나쁜 일에 눈을 질끈 감아 버리기도 하고 재미없는 상사의 말에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런닝셔츠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춤을 추기도 하고 용감하게 용비어천가를 읊기도 한다. 그 날의 부끄러움과 민망한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날 무대 위에서 벌거숭이처럼 춤을 추던 그 깡마른 과장님과 두루마리까지 구해서 시조를 읊어대던 젊은 청춘도 자신의 모습에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은 그렇게 눈을 감아야 견딜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감정을 숨기고 감정을 감추고 연기를 하면서 세상에 적당히 편승해야 그나마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갑자기 그 벌거숭이 과장님과 그 맹랑했던 대리의 얼굴이 동시에 오버랩된다.


슬픈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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