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와 서울로 교대로 출근을 하고 있다. 주로 경기도로 출근을 하고 서울은 주 1회 정도 출근을 하는데 그 날이 우리 팀원들을 만나는 날이다. 그래서 그 날 우리 팀은 정기 팀 회의나 이슈 회의를 한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서울 근무지로 출근을 한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팀원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그렇게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팀 직원들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는 성향들이 아니기도 했고 이제까지 5년 넘게 같이 일 해 왔지만 한 번도 도시락을 싸오자거나 하는 얘기를 꺼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수험생이라서 누구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이 차장, 어린이집을 보내는 꼬맹이 때문에 화장도 못하고 출근하는 김 과장, 그리고 대식가이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흐뭇하게 기다리는 차 과장까지, 이 세 사람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시락으로 무엇을 싸 가지고 왔는지 그리고 갑자기 단체로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로 한 속사정이 있는지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근처 김밥집에서 샐러드 김밥을 한 줄 사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4명의 팀원은 점심을 먹기 위해 2층 회의실로 이동했다. 이 차장의 점심 메뉴는 파리바게트 샌드위치였다. 샌드위치하고 믹스 커피 한 잔이라, 저렇게 먹고 하루 종일 버틸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이번에는 차 과장의 점심식사를 구경해 보았다. 차 과장의 점심식사도 샌드위치인데 집에서 만들어 온 것 같았다. 샌드위치 두 쪽에 닭가슴살과 계란을 올리고 머스터드소스를 뿌린 간소한 샌드위치였다. 얼핏 보아도 100킬로 가까이 체중이 나갈 것 같은 차 과장이 저렇게 얇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다니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린 꼬마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출근한 김 과장의 도시락은 삶은 달걀 2개, 바나나 2개, 컵수프였다. 몸이 야리야리하고 날씬하지만 먹는 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 과장의 도시락 치고는 실망스러웠다. 그 사이에서 나도 김밥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창문도 없는 좁은 회의실에서 먹는 지나치게 소박한 도시락이라니. 그래도 다들 자기가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다.
" 참,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홍대리는 식사를 어떻게 하나요?"
내 질문에 세 명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 우리 팀에는 새로 발령받은 직원이 한 명 있었다. 홍대리는 키가 180이 넘는 미남형의 외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얼굴이 반듯하고 눈썹이 진한 데다가 이목구비가 반듯해서 아주 잘 생긴 젊은 직원이었다. 그는 SKY 중에 한 대학교를 졸업했고 전공도 아주 유망한 학과를 졸업했다. 그야말로 스펙으로 본다면 아주 고성능 스펙의 소유자라고 할만했다.
" 홍대리는 옆 팀에 친한 직원이 있어서 그 분하고 식사를 해요. 아침을 안 먹고 나온다고 점심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도시락은 싫다고 해서요. "
김 과장이 변명을 하듯이 자세히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 짧은 사이 나는 우리 팀원들이 왜 여기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홍대리를 피하기 위한 나름의 작전이었다.
홍대리는 입사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과장으로 승진을 하지 못한, 말년 대리였다. 잘 생긴 외모에 낮은 저음의 목소리, 훤칠한 키에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까지 도대체 그가 왜 아직 대리인지 미스터리했다.
그런데 그와 같이 근무한 지 며칠 만에 우리는 그의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의 지나친 자신감이었다. 그는 말할 때마다 임원이나 높은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 제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 친구는 저하고 동기죠"" 그 부사장님이 저를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총애를 하셨죠"
게다가 본인의 실력이 최고인데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승진을 하지 못했고 억울하다는 얘기를 시시때때로 늘어놓았다. 새로 왔으니 힘들까 봐 친밀하게 말을 붙였다가는 홍대리에게 붙잡혀서 30분 넘게 그의 신세한탄을 들어야 했다. 그런 레퍼토리가 이어지다가 다시 자신에 대한 자랑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그러면 또 긴 연설이 시작되었다. 며칠 만에 새로운 업무를 다 파악했다느니 다른 직원들 업무를 자기가 다 도와주었다느니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니 결국 마음 약한 우리 팀원들이 홍대리와 밥 먹는 것에 다들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도시락을 싸 오는 초유의 사태가 생겨나게 된 것이었다. 홍대리와 말을 하면 이상한 쪽으로 대화가 전개되거나 가끔은 너무나 해맑게 직원들끼리 나눈 얘기를 팀장님 앞에서 그대로 전달하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오기로 한 것이다. 이 추운 날 회의실에 앉아서 차가운 샌드위치를 씹어 먹으며 점심을 때울지라도 차라리 그 편이 속 편하고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나도 홍대리 때문에 당황한 사건이 있었다. 홍대리는 나를 찾아오더니 다음날 8시 40분에 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왜 8시 40분이에요? 무슨 사정이 있나요?"
나는 의아해서 질문을 했다. 정식 출근 시간이 9시까지인데 출근 시간 전에 회의를 하자니 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대리의 대답은 자기가 너무 바쁘기 때문에 그 시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해서 알겠다고 하고 다음 날 일찍 출근을 했다. 그런데 홍대리가 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홍대리가 갑자기 어딘가 출장을 갔나 생각을 했다. 그런데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홍대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니 미소를 지으며 늦잠을 잤다고 천진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의 한 손에는 커피가 들려 있었다.
그 사건만 보더라도 홍대리가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살짝 바람이 들어가 있고 약간 허세가 있는 데다가 자기애가 아주 강한 스타일, 악의는 없지만 자주 말실수를 하는 사람. 그렇게 홍대리는 우리 팀에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홍대리가 온 후로 사무실은 유독 조용해졌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아주 밀도가 높은 정적이다. 팀원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가벼운 농담이나 말 조차도 꺼내지 않았다. 사무실에는 전화 소리나 키보드 치는 소리만 하루 종일 들려왔다. 가끔은 숨쉬기조차 답답할 정도로 심각한 적막이었다.
키가 훤칠하게 큰 미남형의 남자 직원이 들어온다고 이제 팀 분위기가 더 활기찰 것 같다고 기대를 했는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무실의 침묵과 반강제 도시락 식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조용한 사무실 정적을 깨고 갑자기 홍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점심 도시락 다들 어디에서 드세요?"
옆 자리의 김 과장이 고개를 들고 홍대리를 바라보았다.
" 2층에 있는 소회의실에서 먹어요. "
" 아, 그렇구나. 저도 다음 주부터 도시락 싸오려고요. 날씨가 춥고 코로나 때문에 나가기도 그래서요"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쳐 들렸다. 사람들은 아 그래요. 같이 먹어요.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표정이 만들어낸 미소가 아니라 입만 웃고 있는 애매한 미소였다.
"도시락 싸와서 먹으면 점심시간에 쉴 수 있겠어요"
홍대리는 뭐가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어 보였다. 도시락 부대가 움찔하였지만 다행히 홍대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홍대리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도시락 파티가 2층 소회의실에서 열릴 것이다. 이제 또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 도시락 부대의 시름이 깊어지는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