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었다. 옆 팀의 안 과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안 과장은 50을 갓 넘긴 남자 직원이다. 그는 아주 순수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무슨 회의만 있으면 전체 직원들 커피를 사 가지고 오는 것을 회사 다니는 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핸드폰 문자로 ' 힘들어 보이십니다. 다음에 밥을 제가 사겠습니다.' 이런 따뜻한 격려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대체로 착하고 우직하고 그런 남자였다.
그런데 이 남자가 기가 푹 눌린 목소리로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러세요? 아, 그게 이선영 차장이라고 있는데 아주 힘들게 합니다. 안 과장은 그렇게 말해 놓고 나서도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선영 차장은 타 조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전사적으로 대외 기관 대응 업무를 하는 사람인데 우리 조직에도 이런저런 요구를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담당자인 안 과장에게 전화를 해 오는데 같이 일 하는 게 아주 죽을 맛이라는 게 안 과장의 설명이었다. 안 과장은 나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감정이 북받쳤는지 나중에는 울먹울먹 하고 있었다.
이 남자 참 딱한 사람이네.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착하기만 한 안 과장이 일을 기민하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이군. 그래서 이선영 차장이라는 사람한테 된통 당하고 있는가 보군. 이게 첫 번째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참 독한 여잔가 보네. 어떻게 하면 50이 넘은 남자를 5살짜리 꼬마처럼 울게 만드는 거야. 이런 것들이었다.
어쨌든 이선영 차장이라는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그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직도에서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조직도에는 직원의 사진도 올라와 있다. 그녀는 흠, 꽤나 미인형의 얼굴이었다. 나이는 4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에 얼굴선은 날렵한 편이고 머리는 어깨 위에 닿을락 말락 짧은 단발머리였다. 눈은 적당히 큰 편인 데다가 얇은 쌍꺼풀이 있고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이목구비 덕분에 미인형에 가깝다고 할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얼굴을 한 번 검색하고는 다시 그녀와 부딪힐 기회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것이 나비효과에 해당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상 일이란 아주 예측불허인 데다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는 법이다. 그것인즉슨 바로 안 과장의 업무가 나에게로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얘기하자면 아주 복잡하다. 안 과장이 빠르게 대응을 하지 못하니 이선영 차장이 아마 부글부글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나 당돌한지 우리 조직의 상무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업무 협조가 잘 되지 않으니 담당자를 바꿔 달라는 항의성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 결과 담당자를 누구로 바꾸고 이 일을 어느 팀에서 할 것인지가 이슈가 되었다. 당연히 서로 맡지 않으려고 난리가 났다. 실적도 나지 않는 업무인 데다가 타 기관과 계속 부딪혀야 하는 업무다 보니 서로 미루는 양상이 벌어졌다.
그 사단이 난 와중에 방콕 휴가를 가려고 공항에 있던 우리 팀장은 그 업무를 우리 팀에서 맡겠다고 덜컥 나의 이름을 회신해서 보냈다. 보지 않아도 상황이 뻔하다. 아마 다들 휴가도 가지 못하고 업무에 매달려 있는데 우리 팀장 혼자 골프 휴가를 간다고 휴가를 1주일이나 냈으니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골치 아픈 일을 덥석 하겠다고 한 것이다. 실무자인 내가 죽든지 말든지 알 바 아니다 하고 그런 회신 메일을 보내고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에 가볍게 탑승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일을 하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녀의 시달림에 무방비 상태로 맡겨졌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전화로 5분 정도만 이야기를 해 보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온다. 대책 없이 무능력한 사람인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인지 아니면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인지 목소리에 신기하게도 다 묻어 나온다. 그녀와 처음 전화를 했을 때 나의 솔직한 느낌은 재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하이톤이었다. 지나친 자신감이 목소리에 팽팽하게 묻어 있었다. 앞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불안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부터 그녀와의 이 지루하고 소득 없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그녀는 세 가지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빈정거리기, 콧방귀 뀌기, 말꼬리 잡기였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용건을 산뜻하게 전달하는 법이 없이 상대방 속을 들쑤셔 놓는 것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 이번에 보낸 자료 검토하고 보내신 건가요?"( 콧방퀴 뀌며)
"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 제가 보낸 메일에 뭐라고 되어 있나요? 그 부분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또다시 콧방귀 소리)
" 제가 몇 번 확인했는데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죠? 정확하게 알려 주세요. "
" 그러니까요. 내가 보낸 메일을 다시 보라고요. 그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뭐가 빠졌는지"(여전히 콧방귀 소리)
그녀와의 통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지치지도 않았다. 전화를 하면 하려는 말을 바로 하지 않고 빈정거리거나 말꼬리를 잡거나 사람을 지치게 했다. 상대방을 가르치는 말투는 덤이었다.
나라고 그냥 당할 수는 없었다. 몇 가지 전략을 구사해 봤다. 일단 그녀의 전화가 걸려 오면 받지 않고 메일이나 문자로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의 쨍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바스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의 소심한 성격상 그런 식으로 전화를 피하는 것은 못 견딜 일이었다. 무슨 중요한 용건일까봐 불안해졌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에 그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이번 전략은 저돌적인 공격 전략이었다.
" 왜 그렇게 말을 기분 나쁘게 하세요? 이행하라고 한 사항들에 대해서 잘 이행하려고 하는데 왜 지원해야 할 부서에서 계속 말꼬리를 잡고 그렇게 고압적으로 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이번 전략도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 흥분하거나 열이 올라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며 통화를 끝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약간은 그런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도 바로 끊지 않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반복하면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한 번 전화를 걸어오면 평균 통화시간은 20분을 훌쩍 넘어가곤 했다. 그 때마다 그녀의 빈정거림과 조소 섞인 말투, 그리고 상대방을 가르치는 반복적인 내용이 그 20분을 알차게 채우는 것이었다.
2년 만에 오프라인 회의가 잡혔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해야 하다니. 아직 회의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도 나는 벌써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 일이 생겼다고 하고 회의에 빠져 버릴까? 나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낼까?'
여러 가지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했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회의를 해야 하다니. 그것도 좁은 회의실에서 말이다.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2년간 당해 온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벌써 기가 질릴 것 같았다. 그러나 야속한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서 드디어 그녀와 회의를 하는 날이 되었다.
나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날 회의 참석자는 모두 7명이었다. 이선영 차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회의실에는 나 말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덩치가 큰 여직원만 앉아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핸드폰 벨이 울리고 그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이선영 차장의 목소리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짧게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랬다. 그녀가 바로 이선영 차장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조직도에서 보았던 사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일단 그녀는 덩치가 상당히 크고 퉁퉁한 체형이었다. 얼굴도 사진과는 다르게 후덕한 이미지였고 턱에는 살이 접혀 있었다. 눈은 쌍꺼풀이 없는 눈이었는데 작고 조금은 둔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내가 그 순간에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이 차장이 사진 앱을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요즘에 유행하는 그런 앱들 말이다. 40대 아저씨를 찍어 놓아도 아이돌 연예인을 만들어 놓는 그런 앱 말이다. 이선영 차장은 그런 앱을 사용해서 자신의 조직도 사진을 업로드 한 걸까? 나는 내 상상속의 이선영 차장과 완전히 다른 이선영 차장을 보면서 반은 신기해 하고 반은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그리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하는 내내 나는 이선영 차장의 빈정거리기, 콧방귀 뀌기, 말꼬리 잡기를 경험해야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것은 그녀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 날 회의에 참석한 자기 팀 직원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자기 팀장에게도 그런 식의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내가 그녀에게 느낀 것은 그래도 그녀가 일관성있는 사람이라는 정도였다. 나 혹은 안과장을 특별히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화법이 그냥 세상의 모든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을까? 회의가 끝날 때쯤에 나는 약간의 연민 같은 감정까지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 식사라도 하고 헤어져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음에 해야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이제 담당자가 바뀔 거라는 말을 전했다.
" 담당자가 바뀐다니요? 이제 이 차장님이 이 업무를 안 하시는 건가요?"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나의 놀라움과 기대감을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저는 이번에 이천에 있는 팀에 팀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그녀는 대답했다. 야호,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렇게 일이 진행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그동안 많이 지원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그렇게 회의는 끝이 났다. 회의가 끝나고 나오는데 웃음이 자꾸만 비실비실 나오는 것은 그저 회의가 일찍 끝났기 때문이겠지. 회사 정문을 나서는데 자꾸만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하늘이 더 푸르고 높은 것도 같았다.
아, 그런데 나는 이제 겨우 빠져나왔는데 이선영 차장이 팀장으로 가는 그 팀의 직원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조직도를 보니 자그마치 10명 가까운 직원을 거느리는 팀의 팀장님으로 가신다. 모르겠다. 지금 그런 걱정까지 내가 할 처지인가. 지금은 그저 해방을 맞이했던 우리 조상님들처럼 나는 이선영으로부터의 독립만세를 외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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