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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게 걷기 Jun 17. 2021

나의 아들은 수포자입니다.

아니, 수포자였습니다

 아들이 수학 머리가 없다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사실 수학이나 과학 분야는 일정 부분 타고난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은 읽고 쓰는 것은 곧잘 했지만 수학적 사고는 버거워했다. 그래도 설마 수포자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초등학교 때는 수학 영재학원에 아이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여러 나라의 수도를 척척 외우는 아들을 보며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아마 어린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도 나와 비슷한 착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동네에서 가장 비싼 수학학원에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곧잘 따라갔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2학년이 되고 사춘기가 절정에 달하자 아들은 제일 먼저 수학학원을 그만뒀다. 그래도 수학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들을 달래 과외를 보냈다. 아들은 가방을 메고 열심히 갈 때도 있고 늦게 갈 때도 있고 가다가 옆으로 샐 때도 있고 아예 퍼져서 자느라고 안 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싸우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가끔은 인자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기도 했다. 인자한 엄마 코스프레는 방문 밖에서 이뤄졌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방문 밖에서 " 아들, 오늘은 쉬려무나. 내일 더 힘내서 하자"라고 다정하게 아들을 격려했다. 그러나 아들은 나의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기 일쑤였고 며칠 후에는 무단으로 학원을 빠지는 것 때문에 큰 소리가 나고는 했다.


 아들은 수학에서 점점 멀어지더니 급기야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나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실 나도 참 딱한 것이 아들 다니는 수학학원을 자주 찾아갔었다. 갈 때마다 박카스며 비타민 음료를 사서 열심히 날랐다. 그러다 보면 선생님이 아들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 거고 아들도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부질없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은 부질없었고 학원 선생님들과 나는 더욱 친해졌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싶다.


 아들은 결국 수학을 포기했다. 완전한 수포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나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했다. 매월 수학학원에 50만 원 가까운 학원비를 냈고 그것은 학원 전기세, 수도세를 내는 격이었는데 이제 그런 바보짓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들은 고2 겨울 방학을 맞았다.

  어느 날 저녁, 아들과 남편은 식탁에 앉아서 입시요강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런 둘을 보면서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 성적이 어느 정도 나와야 입시 전략이라는 걸 세우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입시 전략을 세운다는 거야? ' 이런 삐딱한 생각을 하며 냉소적인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수학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수학이라니? 처음에는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아들은 꽤나 진지해 보였고 오래 고민했다고 말을 꺼냈다. 남편은 무조건 아들을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남편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시작해 보자고 아들에게 힘을 보탰다.


  나는 일단 동네에 있는 학원과 과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비 고 3의 수학 학원비는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이었다. 소규모로 운영하는 학원 같은 경우 한 달 학원비는 60만 원대였고 대규모로 운영하는 학원은 50만 원대였다. 과외는 더 문턱이 높았는데 회 당 10만 원이었다. 그러니까 주 2회면 한 달에 80만 원, 주 3회면 한 달에 120만 원이었다. 그 돈을 내고 가망 없는 수학을 다시 시작하는 게 맞는 건가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몇 군데 학원에 전화를 하면서 나는 내가 엄청난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원에서는 우리 아들을 받아 주지 않았다. 과외도 마찬가지였다. 기초가 없는 아이를 붙들고 가르치면 힘은 더 들고 성과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받기 부담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나마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경우는 나은 경우였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한 학원 원장님과의 통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처음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만 해도 남자 원장님은 친절했다. 전화기 너머를 통해 들려오는 과도한 친절과 저자세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원장님은  별도로 주말에 더 아이를 봐줄 수도 있다고 설명을 했다. 그런데 통화가 길어지고 아이의 현재 수준을 듣고 나자 원장의 태도는 돌변했다. 목소리는 쌀쌀맞았고 노골적으로 그 학원에서는 아이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빨리 통화를 끝내고 싶어 하는 목소리에 주눅이 든 나는 전화를 끊고 말았다.

  다음 학원도 비슷했다. 아이가 학원으로 갔는데 상담을 하더니 아이를 다른 지점으로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다른 지점에 있는 선생님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아이는 결국 쫓기듯이 마을버스를 타고 다른 지점으로 가서 수업을 받았다. 그 반 학생은 2명이었는데 수업을 담당하는 여자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내 카톡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질문을 하면 짜증스러운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아이는 눈치가 많이 보였던 모양이었다. 결국 아들은 집으로 와서 이 학원에 못 다닐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더 이상 다른 학원을 알아보거나 과외를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들은 상처를 받아서 방에 틀어 박혔고 나도 막막한 기분에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그때 가까이 살고 있는 동생이 출동했다. 동생은 나와 성격이 사뭇 다르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은데 비해서 동생은 저돌적인 행동파다. 가끔은 주책스럽기도 하고 뻔뻔하기도 한데 어떤 상황에서는 당차고 할 말을 다 하는 성격이다. 동생은 풀이 죽어 있는 나에게 이럴 일이 아니라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 아이를 받아 주겠다는 학원을 한 군데 찾아냈다. 심지어 학원비도 알아본 곳 중에 가장 저렴했다. 선생님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었다.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얼굴형은 둥글둥글했다. 그 선생님이 아들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돈 내고 학원 보내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비굴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그 선생님과 아들은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선생님은 카톡으로 이렇게 고집 센 아이는 처음 보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고 아들은 이렇게 꼰대 같은 선생님은 처음 봤다고 성질을 냈다. 그러나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서 아들이 수학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그 후로 다행히 아들은 선생님과 잘 지내고 있고 수학 공부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점수로만 본다면 형편없지만 그래도 찍지 않고 풀어서 맞히는 문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며칠 전 아들과 저녁을 먹는데 아들이 수학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 엄마, 수학을 포기했을 때는 학교 수학 시간이 지옥 같았어요. 선생님이 칠판에 뭔가를 쓰기 시작하면 모르는 라틴어 같은 언어를 보고 있는 것 같고 혹시라도 나와서 풀어 보라고 지목할까 봐 가슴이 뛰어서 쓰러질 것 같았거든요. 요즘은 이해하는 문제들이 생기고 시험에서도 아는 문제가 나오니까 너무 신기해요"

" 아들, 대단한데.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도전해서 조금씩 해 나가고 있는 게 대단한 거야"

" 엄마, 수학은 저한테 단순한 수학 과목이 아닌 것 같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수학은 내가 도무지 손도 대지 못하고 발도 들이지 못할 것 같은 영역이었는데 그래도 하니까 된다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수학 문제를 제 손으로 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정말 수학을 다시 시작하기 잘한 것 같아요. "


 아들의 현재 수학 점수는 사실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수학 시간마다 자기가 까막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마음 졸이는 것처럼 스스로가 그렇게 부끄럽고 두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암호 같던 문제 중에 자기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그게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했다. 세상이 달라 보이고 자기 존재가 다른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수포자 아들을 키우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한 부분을 보게 된 것 같다. 나는 아들에게 과외를 하던 선생님을 존경했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했었다.  

" 어머니, 수학은 학교에서 가장 많은 수업 시간을 차지해요.  그래서 수학을 포기하면 아이는 그 시간 동안 멍하니 있거나 엎드려 자야 될 거예요. 학교가 지옥으로 변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잘하든 못하든 그냥 그 끈을 놓치지 않고 가지고 가도록 계속 격려해 주셔야 해요"


 아들이 수학을 포기하고 보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차마 다 헤아리기 힘이 들다. 수업 시간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 혹은 다들 교복을 입고 있는데 나만 사복을 입고 앉아 있는 기분, 그런 기분과 비슷할까. 아니 어쩌면 그런 기분보다 훨씬 자기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실망을 불러일으키는 비참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수학에서 몇 점을 맞는지보다 아들이 완전히 포기했던 무언가를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 사실이 감격스럽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학을 포기하게 된 어린 학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린 학생이 다시 해 보려고 용기를 냈을 때 어른이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효율의 논리, 경제성의 논리를 따져서 그 아이가 겨우 만들어 낸 용기를 다시 포기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수포자가 수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그저 수학이라는 과목을 다시 공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존재와 인생에 대한 엄청난 도전의 시작일 수도 있다. 그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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