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고3 아이들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했을까요?
오늘은 정말 우울한 하루였어요. 마음이 잘 추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심란하고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힘이 들었어요.
지난주 아들이 옆 반 친구가 사라졌다는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아이가 가출을 하거나 어디 PC방에 가서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는 거라고 생각을 했죠. 뉴스가 나오고 지역 카페에 소년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도 부정적인 상상은 하지 않았어요. 아이는 순하고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어제는 아침 일찍 산에 올랐어요.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가 내려오는데 헬리콥터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거예요. 남편과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헬기 소리가 들리는 거냐고 궁금해했죠. 아마 근처에서 훈련을 하고 있나 보다고 우리는 생각을 했어요. 6월 말은 벌써 여름 날씨처럼 덥더군요. 산을 내려오는데 목덜미에는 땀이 흐르고 햇볕은 따가웠어요. 우리는 완만한 산등성이를 타고 최대한 그늘을 찾아 내려왔어요.
거의 산을 다 내려왔을 즈음에 대형 경찰 버스 여러 대가 길 가에 서 있는 게 보였어요. 버스는 6대나 7대쯤 되어 보였고 경찰들도 아주 많아 보였죠. 우리는 근처에서 무슨 시위가 있나 보다고 생각을 했어요.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남편은 핸드폰을 보고 있던 전경에게 말을 걸었어요. 근처에 혹시 무슨 집회나 시위가 있는 거냐고 물었죠. 경찰은 이 근방에서 실종 학생을 수색하고 있다고 대답을 했어요.
수색이라니. 수색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컹했어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도 같았죠. 수색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지만 수색이라는 건 보통 사건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하는 조치가 아닌가 싶었어요. 집으로 오는 길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왔는지 모르겠어요. 머리는 웅웅 거리고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렸어요.
오늘 출근하고 나서 결국 보고야 말았어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어요. 그냥 울고 싶더군요. 사무실이라는 것도 잊고 그냥 소리 내서 울고 싶었어요.
회사 사람들은 나와 생각하는 게 달랐어요.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은 요즘 젊은 아이들은 너무 나약하다고 말했어요. 누군가는 아버지가 아이를 혼냈다고 그렇게 홧김에 죽다니 말도 안 된다는 말도 했어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주 심약한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요즘 아들은 불안장애가 심해져서 소아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겪는 불안에 대해서 아주 가깝게 실감하고 있는 편이에요.
저는 아들을 통해서 제가 이제껏 보지 못한 세상을 가끔 들여다 보고는 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세상에는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해요. 그 말은 저의 진심일까요? 저는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겠어요. 왕년에 공부 좀 한다고 으스대며 살았거든요. 덕분에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어요. 하루에도 수만 가지 사건들이 일어나고 불안 불안한 세상에서 이 직장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나의 삶은 어땠을까 생각하면 두려움이 일 때가 있어요. 나이 많은 아줌마가 이럴진대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삶이란, 세상이란 어떤 걸까요?
내가 아들에게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도 아들은 믿지 않아요. 왜냐면 아들은 이미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경험해 왔거든요.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선생님들도 만나 봤고 학원에서조차 사람 취급받지 못한 일도 있어요. 아들은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경험하거나 감지해 왔어요. 그래서 아이는 어쩌면 자기는 정말 그렇게 하찮은 사람일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엄마나 아빠가 아무리 아니라고 얘기를 해도 아이는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해요. 이미 여러 번의 경험과 아픈 상처를 통해서 세상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세상은 실패자에게 관대하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실패자로 간주하죠. 어떻게 하면 너희들이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끊임없이 닦달하고 주입을 해요.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언론에 나오는 기사들 보세요. 얼마나 천박한 기사들이 많이 나오나요. 쿠팡 라이더에게 너는 배달 한 건 할 때 3천 원을 벌지만 나는 일주일에 몇천만 원을 벌고 있다고 갑질하는 학원 선생님이 있어요. 이건 실존하는 인물이에요.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갑질과 수직적이고 불합리한 관계에 맞닥뜨리잖아요. 그렇다고 그 상황에 일일이 도전하기도 힘들어요. 너무나 일상화된 상황들이 많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상황에 순응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세상은 힘 있는 자들, 가진 자들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실제 목도하고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부정해도 세상은 그런 힘의 논리로 굴러가고 역사를 만들어 왔어요.
아이에게 세상에는 성적이 아니라 더 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 성적이 좋지 않아도 너의 삶은 충분히 행복하고 멋질 수 있다는 말이 과연 와닿을 수 있을까요? 공부를 못 하는 이유로 부당하고 불합리한 처분에 순응해야 하는 아이들, 어른들의 잣대로 자신의 삶을 평가받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생각처럼 냉혹한 세상이 아니라는 말이 얼마나 와닿을까요?
그냥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모르겠어요. 왜 세상은 생각처럼 공정하고 아름답지 않은 걸까요? 왜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게 두렵고 막막한 걸까요?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이 아이의 죽음을 두고도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의 반응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이런 불행이 오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사건을 기회로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또 어떤 부모는 아이가 이런 위기를 겪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합니다.
회사에서 티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기회만 되면 상대방의 부동산 자산이 얼마인지 묻고 확인합니다. 심지어는 옆 직원이 부동산으로 어떤 기적을 이뤘고 현재 자산이 얼마라고 얘기합니다. 다들 부러워하고 입을 떡 벌리고는 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투자가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요?
어린 학생들에게 어떻게 핑크빛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 비치는 세상은, 그리고 어른들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이 부끄럽고 많이 눈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