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5도2촌을 택한 시기가 좋지 않았다. 무리해서 이사를 한 후 신용대출을 갚고 있었고,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대학병원을 다니던 때였다. 나 또한 프리랜서로 전향을 하고 벌이가 들쑥날쑥해졌다. 난생처음 투잡을 하기도 했다. 번 돈으로만 따지면 내 사회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벌었던 해였지만 손에 남는 것 하나 없이 삶은 피폐해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연고도 없는 서울로 왔을까? 삶이 버거울 때마다 '서울'이란 공간을 조금씩 미워했던 거 같다.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남편도 만나지 못했을 텐데 '그랬어도 괜찮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쳐있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라 했듯, 취직을 목표로 상경했다. 영화업을 하고 싶었는데 지방에서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지방보다 연봉도, 복지도, 근무환경도 나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짐을 풀었다. 그렇게 가진 내 첫 직업은 CGV 위탁점 슈퍼 바이저였다. 3교대에 연봉이 1,700만 원이었다. 이 자리도 내가 성실한 미소지기(CGV알바생)로 뽑혀서 갖게 된 기회였다. 공채로 가는 길이 쉬워질까 택한 선택지였는데 현실은 암담했다. 서비스직이다보니 고객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모두 막내인 나에게 풀었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 쌍욕은 기본, 그날은 숨소리도 죽이고 있어야 했다. 결국 본사직원은 꿈도 못 꾸고 다른 영화업종으로 이직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듯 그 다음도 그 다음다음도 꿈의 직장은 없었다.
늦지 않았으니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취업을 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만나서 26살에 덜컥 결혼을 했다. 나와 동향이었던 남편은 '서울에서 돈 많이 모아서 내려가자'는 말로 나를 유혹했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남편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 많이 모아서 내려가자'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나도 언제까지나 내려갈 생각만 하며 지낼 수는 없었다. 서울에 정을 붙이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했다. 문화생활을 즐기고 맛집도 가고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도 나갔다. 하지만 즐거움보다 기가 빨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른 그런 곳이 바로 서울인데, 내가 원하는 건 여기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고 싶었다. 그때부터 주말마다 교외로 떠돌기 시작했다.
교외 또한 서울의 외곽일 뿐이었다. 어딜 가든 핫플레이스가 존재했고 예쁜 풍경이라도 볼라치면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숨은 명소'라고 검색해서 찾아간 곳도 '덜 유명한 명소'라 불러야 할 만큼 역시나 붐볐다. 결국 내가 돌아올 곳은 서울이었으니 교통체증도 빼놓을 수 없었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그렇게 좋은 곳에 살면서 뭐가 불만이냐'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살아보려고 올라왔다가 포기하고 내려간 친구가 꽤 많았다. 어딜 가서 서울에 사는 걸 불평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모두가 꿈꾸는, 꿈의 도시 서울이었다.
강화도에서 5도2촌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년. 도시에서는 '시간아 얼른 흘러라'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그곳에서는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내가 5도2촌을 선언했을 때 남편을 제외한 모두가 반대를 했다. 농촌생활이 쉬워 보이지? 그거 할 돈으로 빚부터 얼른 갚아. 아직 네 나이는 버는데 집중해야지. 우리 나이 되면 그때 해도 안 늦어.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자. 경험이든 추억이든 뭐든 남는 게 있을 거야.맞다. 나에게 5도2촌은 서울에서 잘 살아내기 위한 투자였다.
어쩌다 보니 2촌집을 3주나 비웠다. 주말마다 일정이 많았던 탓이었다. 평일에 시간을 내서 드라이브도 할 겸 나홀로 2촌집을 다녀왔다. 올 가을은 유난히 강화도를 오가는 차가 많았다. 10월 어느 주말에 발을 들였다가 강화도를 빠져나오는데만 1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평일은 출퇴근 시간만 피하면 비교적 쾌적한 도로를 누빌 수 있다. 올림픽대로만 올라도 마음이 설렌다. 드라이브의 묘미는 창문을 열고 달리는 건데 어느새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 날에는 바람소리 대신 노래를 듣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곡을 한 바퀴 쭉 듣다 보면 어느새 인화리, 우리 마을이 나타난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농사도 끝나고 마을 전체가 고요하다. 주차를 하고 동네를 순찰하듯 둘러본다. 못 온 사이에 이웃들은 무얼하며 지냈는지 구경하기도 한다. 내가 바라던 아무도 없는 길을 비로소 걸을 수 있다. 억새가 흔들리는 소리, 철새가 지나는 소리, 인위적인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이다. 끼기긱- 새하얀 휀스가 열리는 소리가 꽤나 우악스럽다. 매끄럽게 움직이면 좋으련만 보수를 해도 그때뿐이다. 시골이라 아무나 들어올 거 같지만 아직까지 내 허락 없이 이곳을 침범한 사람은없었다. 오자마자 체크해야 할 것은 무너지거나 날아간 물건이 없는지를 봐야 한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땅으로 선택했더니 덤으로 똥바람을 얻었다.
마당을 점검한 후 아담한 복층집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면 목조주택의 특유한향기가 나를 반긴다. 짐을 풀고 나면 특별히 할 게 없다. 해 먹기 귀찮아서 싸 온 도시락을 먹거나 차를 끓여 마시거나 멍 때리며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가끔은 몰아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되도록휴대폰은 보지 않는다. 2촌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5도에서 하던 걸 안 하는 거다. 평온함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떠날 시간이 찾아온다. 언제든 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돌아가는 발걸음마저 가볍게 만든다. 특별한 거 하나 없는 하루가 아쉽지 않게 지나갔다.
프롤로그니까, 최대한 5도2촌을 F(Feeling)스럽게 풀어보았다.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를 통해 혹자는 시골생활의 꿈을 접을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프롤로그의 이야기를 떠올리길 바라며. 내일도 교통체증을 피해 새벽같이 시골 라이프를 즐기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