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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08. 2022

에세이

삶에 제동이 필요할 때


요즘은 자고 나면 꼭 어딘가 불편하다고 몸이 징징거리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불안하다.


나무도 나이 들면 속이 빈다고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서 몸 곳곳이 말썽인 게다. 전날에 멀쩡하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아픈 것이 자다가 생긴 병인지 졸다가 생긴 병인지 이렇게 갑자기 아플 때면 알 수 없는 원인 때문에 불안이 온몸을 엄습하여 아픈 몸은 더 불행해진다.


침착하자!  서둘지 말고. 별 거 아니겠지 하는 위로 비슷한 변명들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채근해본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아픈 증상과 원인을 알아보니 감기로 인한 거나 과로 때문에 면역이 떨어지면서 생긴 임파절염일 수 있다는 글들이 줄줄이 나온다.


감기?  요즘 감기 증상은 위험한 징조다. 재채기만 해도 주변 공기마저 긴장해지는 코로나 시대에 감기라니? 기침도 하지 않고 열도 없는데 감기는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백신을 맞고 좌측 편두통이 오고 자고 일어나면 붓는 현상이 있었는데 백신의 부작용인가? 백신 후유증으로 여기저기서 불만과 증오에 가까운 호소들로 사회가 불안한데 그런 데까지 끼어들기는 싫으니 아니길 기도하면서 아픈 목을 만져보고 목도 좌우로 돌려보니 부은 목부분이 움직일 때마다 목 주변의 근육인지 신경인지 당기면서 통증을 유발한다. 마사지를 하면 좀 풀릴 것 같아 얼굴과 목에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목선을 따라 살살 문질렀다.  임파선에 동글동글한 뭉침이 만져지고 손끝이 스칠 때마다 통증이 얼굴과 머리까지 퍼져나가 저절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렇게 이틀 정도 마사지를 해도 효염은 없고 통증만 더 심해져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병원이 지척에 있어도 멀리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건강하다는 근자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 나이에 벌써 아파서 골골하는 몸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도 보여주는 것도 달갑지가 않아서인지 찌뿌둥한 얼굴로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긴 사람처럼 온 얼굴에 불만을 덫칠하고 간 병원에는 오늘도 아픈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아프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풍경도 위로가 되기는커녕 불안만 커진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시간은 곤혹이다. 불쾌한 소독수 냄새, 아픔으로 찌들어진 환자들의 신음소리와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눈을 감고  내 이름 석자를 불러주기를 고대하면서 시간을 먹고 있을라니 몸의 기운은 점점 빠져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아픔의 모든 의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념에 가까워졌는지 호명하는 의사가 바로 저 문 뒤에서 내 아픔을 싹 가셔 줄 것 같은 희망 때문인지 조금씩 차분해졌다. 드디여 익숙한 이름 석자가 귀속으로 들어오자 내 몸은 장동 장치가 붙은 로봇처럼 자동유리문쪽으 걸어 들어갔다.


선한 얼굴에 흰 가운을 입은 40대 초반의 남자 의사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준다. 의사 선생님의 문진이 시작되고 나는 금세 풀이 죽어 고분고분한  어린애가 되어 고스란히 아픈 부위와 증상을 말하고는 애원의 눈빛으로 아픔을 멈추게 해달라고 의사 선생님의 그 선한 눈 속에서 일말의 대책을 찾아보려고 매달린다.


의사 선생님은 파선이 붓거나 뭉침이 생겼을 때 마사지하면 더 붓는다고 내가 마사지를 했다고 한 말에 일침을 가하더니 아픈 부위를 만져보면서 뭉침이 크지 않으니 약을 먹으면서 며칠 더 지켜보자고 한다.  과로 때문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으니 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쉬면 좋겠다고 하신다.


살면서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일도 별로 없는 내가 쉬어야 할 일도 거의 없다.


세 번째 백신을 맞고 편두통으로 좀 아팠어요~ 약을 먹고 좀 괜찮았는데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나는 잠을 거부했어요~ 정말 이것이 문제 일가요?  잠이 오면 잠을 끝없이 자야 할까요?


생각을 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잠이 약이라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시간이 썩어나가도록 잠이나 푹 자볼까? 집에 돌아와 약을 먹기 위해 밥을 욱여넣고는 한 숨 쉬고 나의 아픔을 가셔 줄 알약을 삼켰다. 이제는 괜찮겠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많은 것을 나와 격리시키고 잠시나마 아픈 몸을 가만히 놓아주기로 한다. 눈을 감으니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고  늘 하는 일 없이 종종거리던 내가 집구석 구석에서 아른거린다. 어쩌면 하는 일이 없어서 오는 걱정의 과잉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종양으로 변신하여 파선에 인입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니 허무했다. 몸이 편하면 마음 스스로가 귀차니즘을 찾아가는가? 그런데 쉬라고 한다.  어떻게 쉬는 것이 쉬는 걸까? 몸뚱이가 편해서 잡생각만 온몸에 무색 균처럼 퍼져서 만연되여가는데…


나는 병든 솔개같이 늘 무엇을 찾아  집안 구석구석에서 서성거린다.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나를 보는 것 같아 그것이 스스로도 안쓰럽다. 책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여기저기에 책들이 널려있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책들이 펼쳐진 채 찾고 싶은 거 찾았냐고 따지듯이 쳐다본다. 글을 몇 글자 끄적거리고는 무엇을 해낸  것처럼 안심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내가 침대에서 뒹굴다가 다시 또 책을 집어 들고 삼매경에 빠진다.


파선이 붓고 아픈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일 수 있지만 아픔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한 자가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어쩌면 불치의 병일 수도 있다. 흔히들 타인의 잘못이나 나쁜 습관은 잘 짚어내고 이러쿵저러쿵 어찌어찌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스스로의 행동과 습관을 고치기는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를 의심하는 모든 세포들이 살아나서 나를 공격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나는 늘 예민하게 나를 몰아세운다. 스트레스로 생긴  파선의 불균형은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역량이나 능력을 믿지 못한 자신감의 부족이었던 나의 부정적인 세포의 미심쩍은 눈초리가 가한 의심병 인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아픔은 의사님께서 지어준 약을 먹고 낳을 수도 있지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수만 가지의 들쑥날쑥한 심지가 빠진 생각들은 또다시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 늘 괜찮지 않은 것 같은 나를 안고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스트레스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몸의 기관들을 어떻게 하면 쉬게 할 수가 있을까?


고삼을 졸업하고도 편두통으로 아픈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의사는 머리를 쉬우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스스로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것이 그때 나의 관점이었고 그때부터 편두통과 두통약은 나의 절친으로 쭉 반평생을 살아왔다.


두 의사 선생님의 생각을 멈추라, 잠을 자라는 말씀이 메아리가 되어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며 나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기라도 하려는 듯 달려든다. 내가 생각하고 또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들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습관만이 나의 아픔을 멈출 수 있다고...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몇십 년을 내 몸에 붙어 있는 기관을 통제하고 있던 습관들을 당장 어떻게 뜯어고치기에는 수일에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는 늘 어제의 못났던 나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래일이 가져다줄 생기지도 않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오늘 걱정하는 일은 래일 일어날 확률이 거의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늘 소심하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신을 의심하고 의기소침해서 안절부절못한다.


이제는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괴롭힘을 당하여 아픈 내 몸을 잠시나마 놓아주기로 하자!


두 의사 선생님은 생각으로 인한 병은 생각을 차단하는 습관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어제 내가 한 잘못을 아무리 머리가 쥐 나도록 생각을 해봤자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그것으로 매듭을 짓고 래일 일어날 부정적인 걱정은 일어날 확률이 거의 제로일 수 있으니 미리 당겨서 래일을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존하는 나 하나만도 버거운데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까지 지금 시간에 모셔놓고 지지고 볶는 삶에 치여 멍든 혈관들이 체액과 혈액의 흐름을 막아 나를 아프게 하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어리석음으로 채워진 내 머릿속을 비우면 명석함이 머릿속의 잡생각을 거두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 제동이 필요할 때는 쉬여갈 수 있는 공간과 현존하는 시간을 보다 넓고 여유롭게 틔워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숨 쉴 수 있게 하는 자연으로 내보내려고 여행 티켓을 구매하고 잠을 청해 본다. 잡티가 끼여있지 않는 잠을...




강희선








요즘은 자고 나면 꼭 어딘가 불편하다고 몸이 징징거리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불안하다.


나무도 나이 들면 속이 빈다고 이제 슬슬 나이가 들어서 몸 곳곳이 말썽인 게다. 전날에 멀쩡하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아픈 것이 자다가 생긴 병인지 졸다가 생긴 병인지 이렇게 갑자기 아플 때면 알 수 없는 원인 때문에 불안이 온몸을 엄습하여 아픈 몸은 더 불행해진다.


침착하자!  서둘지 말고. 별 거 아니겠지 하는 위로 비슷한 변명들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채근해본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서 아픈 증상과 원인을 알아보니 감기로 인한 거나 과로 때문에 면역이 떨어지면서 생긴 임파절염일 수 있다는 글들이 줄줄이 나온다.


감기?  요즘 감기 증상은 위험한 징조다. 재채기만 해도 주변 공기마저 긴장해지는 코로나 시대에 감기라니? 기침도 하지 않고 열도 없는데 감기는 아닌 것 같다. 세 번째 백신을 맞고 좌측 편두통이 오고 자고 일어나면 붓는 현상이 있었는데 백신의 부작용인가? 백신 후유증으로 여기저기서 불만과 증오에 가까운 호소들로 사회가 불안한데 그런 데까지 끼어들기는 싫으니 아니길 기도하면서 아픈 목을 만져보고 목도 좌우로 돌려보니 부은 목부분이 움직일 때마다 목 주변의 근육인지 신경인지 당기면서 통증을 유발한다. 마사지를 하면 좀 풀릴 것 같아 얼굴과 목에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목선을 따라 살살 문질렀다.  림 파선에 동글동글한 뭉침이 만져지고 손끝이 스칠 때마다 통증이 얼굴과 머리까지 퍼져나가 저절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렇게 이틀 정도 마사지를 해도 효염은 없고 통증만 더 심해져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병원이 지척에 있어도 멀리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건강하다는 근자감 때문인지 아니면 이 나이에 벌써 아파서 골골하는 몸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도 보여주는 것도 달갑지가 않아서인지 찌뿌둥한 얼굴로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긴 사람처럼 온 얼굴에 불만을 덫칠하고 간 병원에는 오늘도 아픈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아프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그런 풍경도 위로가 되기는커녕 불안만 커진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시간은 곤혹이다. 불쾌한 소독수 냄새, 아픔으로 찌들어진 환자들의 신음소리와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눈을 감고  내 이름 석자를 불러주기를 고대하면서 시간을 먹고 있을라니 몸의 기운은 점점 빠져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아픔의 모든 의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념에 가까워졌는지 호명하는 의사가 바로 저 문 뒤에서 내 아픔을 싹 가셔 줄 것 같은 희망 때문인지 조금씩 차분해졌다. 드디


여 익숙한 이름 석자가 귀속으로 들어오자 내 몸은 장동 장치가 붙은 로봇처럼 자동유리문쪽으 걸어 들어갔다.


선한 얼굴에 흰 가운을 입은 40대 초반의 남자 의사 선생님은 반갑게 맞아준다. 의사 선생님의 문진이 시작되고 나는 금세 풀이 죽어 고분고분한  어린애가 되어 고스란히 아픈 부위와 증상을 말하고는 애원의 눈빛으로 아픔을 멈추게 해달라고 의사 선생님의 그 선한 눈 속에서 일말의 대책을 찾아보려고 매달린다.


의사 선생님은 림 파선이 붓거나 뭉침이 생겼을 때 마사지하면 더 붓는다고 내가 마사지를 했다고 한 말에 일침을 가하더니 아픈 부위를 만져보면서 뭉침이 크지 않으니 약을 먹으면서 며칠 더 지켜보자고 한다.  과로 때문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으니 하는 일을 잠시 멈추고 쉬면 좋겠다고 하신다.


살면서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일도 별로 없는 내가 쉬어야 할 일도 거의 없다.


세 번째 백신을 맞고 편두통으로 좀 아팠어요~ 약을 먹고 좀 괜찮았는데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나는 잠을 거부했어요~ 정말 이것이 문제 일가요?  잠이 오면 잠을 끝없이 자야 할까요?


생각을 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잠이 약이라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시간이 썩어나가도록 잠이나 푹 자볼까? 집에 돌아와 약을 먹기 위해 밥을 욱여넣고는 한 숨 쉬고 나의 아픔을 가셔 줄 알약을 삼켰다. 이제는 괜찮겠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본다.  많은 것을 나와 격리시키고 잠시나마 아픈 몸을 가만히 놓아주기로 한다. 눈을 감으니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고  늘 하는 일 없이 종종거리던 내가 집구석 구석에서 아른거린다. 어쩌면 하는 일이 없어서 오는 걱정의 과잉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종양으로 변신하여 림 파선에 인입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니 허무했다. 몸이 편하면 마음 스스로가 귀차니즘을 찾아가는가? 그런데 쉬라고 한다.  어떻게 쉬는 것이 쉬는 걸까? 몸뚱이가 편해서 잡생각만 온몸에 무색 균처럼 퍼져서 만연되여가는데…


나는 병든 솔개같이 늘 무엇을 찾아  집안 구석구석에서 서성거린다.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나를 보는 것 같아 그것이 스스로도 안쓰럽다. 책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 여기저기에 책들이 널려있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 책들이 펼쳐진 채 찾고 싶은 거 찾았냐고 따지듯이 쳐다본다. 글을 몇 글자 끄적거리고는 무엇을 해낸  것처럼 안심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내가 침대에서 뒹굴다가 다시 또 책을 집어 들고 삼매경에 빠진다.


림 파선이 붓고 아픈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일 수 있지만 아픔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한 자가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어쩌면 불치의 병일 수도 있다. 흔히들 타인의 잘못이나 나쁜 습관은 잘 짚어내고 이러쿵저러쿵 어찌어찌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스스로의 행동과 습관을 고치기는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를 의심하는 모든 세포들이 살아나서 나를 공격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나는 늘 예민하게 나를 몰아세운다. 스트레스로 생긴 림 파선의 불균형은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역량이나 능력을 믿지 못한 자신감의 부족이었던 나의 부정적인 세포의 미심쩍은 눈초리가 가한 의심병 인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아픔은 의사님께서 지어준 약을 먹고 낳을 수도 있지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수만 가지의 들쑥날쑥한 심지가 빠진 생각들은 또다시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 늘 괜찮지 않은 것 같은 나를 안고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스트레스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몸의 기관들을 어떻게 하면 쉬게 할 수가 있을까?


고삼을 졸업하고도 편두통으로 아픈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의사는 머리를 쉬우고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스스로 떠오르는 생각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것이 그때 나의 관점이었고 그때부터 편두통과 두통약은 나의 절친으로 쭉 반평생을 살아왔다.


두 의사 선생님의 생각을 멈추라, 잠을 자라는 말씀이 메아리가 되어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며 나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기라도 하려는 듯 달려든다. 내가 생각하고 또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들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습관만이 나의 아픔을 멈출 수 있다고...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몇십 년을 내 몸에 붙어 있는 기관을 통제하고 있던 습관들을 당장 어떻게 뜯어고치기에는 수일에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는 늘 어제의 못났던 나를 버리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래일이 가져다줄 생기지도 않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오늘 걱정하는 일은 래일 일어날 확률이 거의 제로임에도 불구하고 늘 소심하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자신을 의심하고 의기소침해서 안절부절못한다.


이제는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괴롭힘을 당하여 아픈 내 몸을 잠시나마 놓아주기로 하자!


두 의사 선생님은 생각으로 인한 병은 생각을 차단하는 습관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어제 내가 한 잘못을 아무리 머리가 쥐 나도록 생각을 해봤자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그것으로 매듭을 짓고 래일 일어날 부정적인 걱정은 일어날 확률이 거의 제로일 수 있으니 미리 당겨서 래일을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존하는 나 하나만도 버거운데 어제의 나와 미래의 나까지 지금 시간에 모셔놓고 지지고 볶는 삶에 치여 멍든 혈관들이 체액과 혈액의 흐름을 막아 나를 아프게 하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어리석음으로 채워진 내 머릿속을 비우면 명석함이 머릿속의 잡생각을 거두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삶에 제동이 필요할 때는 쉬여갈 수 있는 공간과 현존하는 시간을 보다 넓고 여유롭게 틔워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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