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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Mar 25. 2022

노란 집

9)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 태기가 없는 윤희의 배는 홀쭉하니 안쓰럽다. 뒤 집에 결혼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는 새댁이 벌써 배가 불어 올라오는 것 같다고 시어머니는 오늘 아침에도 밥상을 물리는 윤희의 훌쭉한 배를 슬그머니 흘겨보면서 은근히 조여 온다.

부러움은 가끔 다른 색채를 칠한 감정으로 탈바꿈하여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해맑게 웃는 얼굴로 곱게 인사하면서 지나가는 뒤 집 새댁이 괜히 눈꼴사나웠다. 결혼한 지 2달도 안된 색시가 럭비공을 집어넣은 것 같은 배를 보란 듯이 더 내밀고 걸어가는 모습이 꼭 마치 알을 품은 오리가 뛰뚱거리는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억지로 웃음을 바르고 대하려고 하니 얼굴 근육이 제가끔 실룩거려서 꽁한 속내가 들켜버린 것 같아서 부끄럽다. 질투심으로 부글부글 괴는 속마음을 추스리기가 힘들어 괜히 발에 걸치는 나무 꼬챙이를 확 밟아서 꺾어버리고 (오늘은 들어오기만 해 봐. 가만 놔두나!)  요즘 부쩍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증오로 변해버려 윽 윽 벼르고 있었다. ( 분명 무슨 원인이 있을 거야. 아기가 나한테로 오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 병원에 가서 알아봐야 하는데 죽어도 병원은 안 간다고 우기는 남편이 한스럽다. 자기는 문제가 없으니 안 해가 문제라는 거다. 안 해에게 문제가 있어도 남편이라면 같이 동행해줄 수는 있지 않는가? 병원에 가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되는 꽉 막힌 저 인간에게 무엇을 더 바라야 하는지 이대로 그냥 포기하고 싶었지만 손주를 기다리는 시어머니의 눈치에 등골이 파삭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어머님께 말하기는 죽기보다 싫다.
 이렇게 건조한 시간이 흘러가고 노긋한 잠이 찾아드는 오후에 홍연이 전화를 받았다. 홍연이 엄마의 전화였다. 홍연이가 자꾸 나를 찾는 단다.
 “윤희야, 한 번 올라올 수 없어? 부탁할 게 있어.”
 “몸은 좀 어때? 오늘은 늦었으니 낼 갈게.”
 불임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윤희는 이 기회에 친정으로 가서 좀 머리도 쉴 겸 홍연이 상황도 좀 살펴보고 싶었다.
 홍연이의 임신 사실을 안 준희는 더 이상 배가 불어오는 홍연이와 있는 그 시간들을 견딜 수가 없어서 술로 몇 날 며칠 보내다가 끝내는 사라졌다고 했다. 더 있다 가는 둘 중 내가 죽던 너를 죽이든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 같아서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도저히 자기 머리로는 전혀 상상하기도 싫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는지 눈앞에 불거지는 몸을 버러지처럼 치렁거리는 홍연이를 더 이상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겠지. 어쩌면 이제 막 해산 달이 가까워오면 민준이의 자식을 볼 용기가 없었을 지도 더 이상 견디다가 어떤 광기가 그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밀려 도망쳤을 것이다.
 모든 것은 체념하고 오로지 뱃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에게만 정성을 다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홍연이는 의외로 얼굴이 뽀야니 살이 오른 것 같았다.
 “입덧도 없이 잘 먹는다. 떨구라고 그렇게 천덕 지게 굴어도 아예 귀를 자르고 솜을 틀어박았는지. 후유--”
 “내가 알아서 키울 거야! 걱정 마!”
 “아비 없는 애를 무슨 낯으로 키워? 남들의 혀가 그렇게 녹녹한 줄 알아?”
 모녀는 매일 같은 화재로 끝나지 않는 언쟁을 한다고 했다.
 혹독한 겨울날의 바람처럼 더 시리게 들려오는 엄마의 낙담을 들으면서도 홍연이는 10개월 꽉꽉 채워서 해산달까지 이를 악물고 버틸 작정인 같았다. 이제는 달수가 너무 많이 차서 그냥 홍연이가 원하는 대로 애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두려워! 곁에 있어주면 안 될 가?”
 혼자 말처럼 중얼거리는 홍연이의 말소리가 귀속에 파고드는 벌레소리처럼 속을 긁고 있었다. 불거져 나온 아랫배가 간헐적으로 움직인다. 좀 전에 귓전에서 울리던 소리가 움직이는 태아의 소리가 되어 다시 귀 속을 긁고 있었다. 갑자기 잊은 듯 사라져 가던 민준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윤희야, 홍연이랑 우리 아기 부탁해!”
 민준의 목소리가 귀가에서 울려와서 화들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다. 홍연이 침대 옆에서 홍연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잠든 사이에 민준이가 꿈에 나타났던 것이다. (니들 둘은 왜 자꾸 꿈에 나타나서는 나를 현혹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전생에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였나? 왜 이렇게 사건이 있을 때마다 꿈속에 나타나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거야!?)
 과연 홍연이가 사람들의 잘근잘근 씹어 대는 악담에서 얼마큼 버텨낼지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니? 세상은 이렇게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부류들에 그렇게 너그럽지가 않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렇게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일들만 그들 속으로 스며들어 어울리게 되는  세상살이도 만만치 않는데 홍연이네 집에 앞으로 일어날 풍파와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참으로 암담하다. 안채에서 홍연이 부모님의 한숨소리가 가슴을 누르며 들려온다. 쌕쌕 거리 고 잠에 빠진 홍연이의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어려 있다. 꿈에 민준이가 왔나? 홍연이 하고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 가? 의자를 뒤로 빼는 소리에 홍연이는 눈을 떴다.
 “꿈을 꿨 어?”
 “꿈을 꿨 어!”
 둘은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소름이 돋는다. 무슨 인연 일가? 왜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 너무 서로를 좋아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많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건가? 둘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상대방을 응시하고 있다가
 “꿈에 민준이가 왔다 갔어.”
 표정만 보고 생각한 것이 그렇게 들어맞았다.
 “달수가 차오니 네가 걱정이 되어 그리워했나 봐. 내 꿈에도 나타났 어.”
 “자기는 그렇게 가버리고 나에게 널 지켜 달라고 벌써 두 번째야!”
 투덜거리는 윤희에게 홍연이는 나지막하게 고백하듯이 이 말을 뱉었다.
 “보고 싶어!”
 수도 없이 하고 싶어도 혀끝을 깨물며 피하였을 텐데 오늘은 그 말마저 피하기가 너무 어려웠던가? 둘은 오랜만에 부둥켜안고 울었다. 눈물을 잃어버린 듯 체념하고 살아왔던 시간만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만약에 잘못되면 우리 아기 좀 부탁해!”
 “너 또 무슨 미친 짓이라도 하려는 거야! 제발 농담이라도 이런 말로 사람 놀리지 말어. 내 간이 여러 개 라도 너네 둘 때문에 남아나겠어? 이젠 좀 조용히 애만 바라보면서 살자!”
 이불 끝을 끌어당겨서 얼굴을 가리는 홍연이의 어깨가 들먹이고 있었다.
 “아니, 제발 이젠 그런 말 입 밖에 내 지마!”
 홍연이가 무슨 나쁜 마음이라도 먹을 가봐 걱정이 태산이다. 그날은 그렇게 조용히 오랜만에 지금껏 피해왔던 옛이야기들을 하면서 거의 밤을 새웠다. 자정이 넘어서 둘은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남들은 저렇게 임신도 잘하는데 나는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거야?'

"후유..."

미혼모의  생활, 결코 쉽지는 않은 앞날, 그 험난한 기복이 펼쳐지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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